결혼, 출산 이후에도 일을 쉬지 않았던 저는 엄마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사는 곳과 직장, 어린이집은 차로 5~10분 거리로 아주 가까웠지만, 친정집은 1시간 거리로 먼 거리였죠. 먼 거리가 무색하게 엄마는 정말 틈틈이 오셔서 아이의 하원을 도와주셨고, 올 때마다 양손 가득한 반찬은 물론,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해 주시고는 야근이 많은 날은 아이를 아예 친정으로 데리고 가주셨어요.
하지만 엄마도 도와줄 수 없었던 워킹맘의 출퇴근, 아침 일찍 자는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9시 출근하고 6시에 퇴근길에 아이를 하원하는 일상은 정말 매일매일이 전쟁이었어요.
그럼에도 딸아이 낳기를 잘했구나 했던 순간들은 아이를 보면 봄 볕에 눈 녹듯 무장해제되던 엄마와 아빠의 미소를 볼 때였어요.
"엄마 아빠 얼굴에 저렇게 해맑고 천진난만한 미소가 있었구나"를 매번 새롭게 깨달았어요. 이렇게 손녀를 예뻐하고 행복해하실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육아의 동지가 엄마 아빠라는 것은 늘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는 뜻이었어요. 어린이집을 등원할 수 없는 감기와 수족구 등 각종 계절성 전염병 치레(이렇게 종류가 많은지도 몰랐네요ㅜ) 중에도 출근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엄마 아빠 덕분이었죠. 일이 조금이라도 바쁘면 엄마가 먼저 "우리가 갈까?" 물어봐주셨으니까요.
엄마 아빠는 그때 이제 막 환갑을 전후한 나이, 딸 결혼시키고 두 분이 여행 다니고 편하게 지내셨어도 될 텐데, 손녀 때문에 딸이 일 그만두게 될까 봐 그런 여유도 반납하셨던 것 같아요. "오가는 게 멀어서 그렇지 손녀 보는 건 하나도 안 힘들다." 며 저를 오히려 안심시키셨죠.
그러던 엄마가 2021년 12월부터 감기 몸살이 심하다며, 몸이 너무 힘들다며 침대에 누워계시는 시간이 눈에 띄게 많아졌어요.
지나고 보니 이때 엄마를 어떻게든 끌고 병원에 갔어야 했던 것 같아 정말 후회스러워요. 당시에는 바로 몇 달 전, 2021년 여름 엄마가 서울 A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대대적으로 했었기 때문에 엄마 본인도 다른 가족들도 엄마에게 무언가 다른 이상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겨울이 거의 끝나갈 2022년 2월... 엄마는 너무 몸이 아파 걸을 수 조차 없을 정도의 통증을 호소했고, 아빠와 친정집 근처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어요. 병원 추천으로 3월 2일 서울 A 병원 예약을 잡았어요. 서울 A 병원의 예약 까지는 한 달 정도 대기가 필요했고, 그마저도 아주 빠른 케이스라고 했죠.
엄마는 서울 A 병원 예약일이 3월 2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딸아이 입학식에도 못 가게 생겼다며, 속상해하셨어요. 저는 아무 일 없으면, 오후에 우리 집으로 와서 맛있는 저녁을 먹자고 엄마를 안심시켰어요.
딸아이의 육아를 엄마, 아빠와 늘 함께 했던 저는 그날 처음으로 남편과 딸아이의 부모로 홀로서기를 했던 기분이에요. 그래서 그날의 공기와 기분, 느낌이 모두 다 기억에 남아있어요. 그리고 보통의 일상이었다면 엄마 아빠와 딸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설레고 기뻤을 그날...
"간암 입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에 엄마, 아빠는 그대로 땅이 꺼지는 기분이었다고 해요. 얼마나 오랜 시간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있었는지... 가족들에게 연락이 오는지도 모르고, 간호사가 엄마 이름을 부르는 것도 모른 체 한참을 두 분이 멍하니 앉아있었다고 하네요.
2022년 3월 2일...
엄마는 암 환자가, 저는 초등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암 환자의 가족이 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