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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이치료사 윤쌤 Aug 12. 2024

폐암 4기 엄마의 비급여 항암치료와 임상 항암치료

   폐암 4기 엄마는 유전자 변이도 없었고, 비흡연자였기 때문에 맞는 항암제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다행히 회당 400만 원이 넘는 비급여 항암제가 효과가 좋았지만, 12번을 맞을 때쯤 좋아지던 엄마의 모든 수치가 멈췄고 반등하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이번 검사 결과를 보고 2번 놀랐습니다.

    항암치료만으로 이렇게 좋아질 수가 있구나!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나빠질 수가 있구나!" 


   비급여 항암제의 효과가 좋았다고 알려주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의료진들도 놀라웠던 건지... 그 당시에는 저렇게 말하는 의사가 야속하다 못해 얄미울 지경이었어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거든요. 이렇게 갑자기 나빠질 수가 있구나 할 정도로 엄마의 몸에 멈추었던 암세포들이 다시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니까요. 가족들 모두 답답한 심정이었지만, 이대로 완치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던 엄마가 가장 낙심했어요. 다른 좋은 약을 찾아보자고 엄마를 다독였죠.


   새로운 약을 찾는 데까지도 한두 달의 시간이 흘렀어요. 그동안은 신기하게도 항암을 하지 않았지만, 그간 맞았던 약효가 남아있어서 암세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았고, 엄마의 컨디션도 좋으셨어요. 생각해 보니 이때 엄마와 가족여행을 다녀왔어야 했던 것 같아요.


   주치의가 새롭게 추천하는 약은 임상치료였어요. 돌아보면 국내 몇 명 하지 않는 임상치료의 기회가 온 것은 정말 천운이었어요. 하지만, 임상치료는 개발 단계의 있는 약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그 부작용을 예측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어요. 그래서 걱정이 많은 엄마는 임상치료 말고 다른 치료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기도 하셨죠.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엄마를 설득해 임상치료에 임하기로 하고, 준비에 들어갔어요.


   나중에 친한 의사 선생님이 얘기해 주시기로는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된 폐암 4기 환자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엇이든 가능성이 있다면 그게 아주 낮은 확률이더라도 치료를 했어야 하는 거였어요. 그렇게 절박하고 위험한 상태라는 거죠.


   임상치료의 준비 단계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지 저도 처음 알았어요. 검사비와 교통비, 식사비가 제공되기는 했지만, 엄마는 한 달 동안 정말 수많은 검사를 받았어요. 임상치료에서 치료 효과로 입증하고 싶어 하는 그 지표 외에는 모두 다 원하는 기본값으로 세팅되어야 하는 단서가 있어서요. 덕분에 엄마는 시력이 아주 나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 기회에 안경도 새로 하셨고, 안구 건조를 진단받아 안약도 처방받으셨어요.


   그렇게 한 달 남짓 검사와 준비를 거쳐, 거의 두 달이 접어들 때가 되어서야 임상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저도 엄마가 서울 A 병원에서 임상 치료를 하며 알게 된 것들이 있었어요. 치료가 시작되면서 임상 전문 간호사가 부모님을 따로 주의사항들을 알려주셨는데요. 언제든 임상 치료라는 부담감을 갖지 말고, 환자분 본인의 컨디션과 치료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당부였어요.


   "언제든 힘드시거나

    그만하고 싶으시면 얘기해 주세요.

    환자분에게는 약효가 잘 맞지만,

    다른 분들에게 약효가 없어,

    임상실험 후 폐기되는 약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약효가 잘 맞는 환자분에게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약을 끝까지 제공해 드리도록 되어있습니다.

    우리 병원에는 지금 10년째 임상 치료 약을 복용하며

    외래를 다니시는 환자분이 계십니다." 


   임상 치료에 대해서 뉴스와 미디어에서만 보았지,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몰랐어요. 그래서 혹시나 엄마가 안 하고 싶거나, 효과가 없어도 무조건 끝까지 먹어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을 하실 때도 "그건 아니겠지" 하고 다독여드리기만 했죠.


   언제든 중단할 수 있고, 잘 맞으면 약이 출시되지 않아도 끝까지 치료할 수 있게 해 준다니, 임상 전문 간호사님과 상담을 하고 부모님도 저도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임상 치료 약은 복용법도 복잡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1차 약을 먹고, 2시간 뒤에 식사를 해야 하고, 저녁에도 식사를 하고, 1시간 뒤에 약을 먹고, 자기 전에 먹어야 하는 약이 있었어요. 약 바구니가 늘 엄마 곁에 있기 시작한 시기였죠.


   그렇지만, 저는 임상 전문 간호사의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어요.


   "엄마 임상 치료 약도 잘 맞으면 오래오래 먹으면서 치료할 수 있다니까, 잘 치료해 보자!" 


   이렇게 엄마를 매일매일 응원했죠. 10년이나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요.


   가족들 사이에서도 임상 항암 치료에 대한 이야기는 찬반이 나뉘어요. 임상 치료를 하며 암수치의 경과는 아주 좋았지만, 이때부터 엄마에게 본격적인 항암치료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엄마의 외양과 컨디션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어졌거든요.


   그럼에도... 임상 항암 치료를 통해 엄마와 1년 가까이 더 함께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치료에 대한 선택이 늘 어려운 거겠죠. 


   그때 임상 치료를 안 했으면, 더 후회했을 테니까요. 엄마도 가족들도 임상치료가 아주 효과적이기를, 그래서 내년, 후년에도 꽃을 좋아하는 엄마와 봄나들이를 갈 수 있기를 바라던 2023년의 봄날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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