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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이치료사 윤쌤 Aug 14. 2024

안온한 날들의 마지막 : 항암치료 중단

   2023년 겨울부터 엄마의 컨디션이 조금씩 나빠지는 것이 느껴졌어요. 전보다 식사를 훨씬 잘 못하셨고, 걸음걸이도 엉금엉금해졌죠. 낮 시간에는 거의 누워서 잠을 청했어요. 그때는 그냥... 항암을 시작하고 벌써 두해가 바뀔 시점이 되었으니 운동을 하지 못해서 그러신가 보다 했는데요. 지나고 보니 마냥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고 싶었나 봐요.


   임상치료를 시작하며 엄마의 머리는 남김없이 떠나갔어요. 대표적인 부작용이었던 잦은 설사로 인해 탈수증상이 심해졌고, 덕분에 엄마가 앉았던 자리에는 피부에서 떨어지는 각질들이 수북했어요. 두건과 모자가 엄마의 곁에 늘 함께 했고, 현저히 늦은 보행과 엉거주춤한 자세, 핼쑥한 얼굴과 부자연스럽게 짙어진 눈썹과 속눈썹까지... 임상치료 몇 개월 만에 엄마의 외양은 영락없는 암 환자가 되었어요.


   3주에 한번 병원 가는 날이면 아빠가 주차를 하는 사이 엄마는 먼저 채혈실에서 피검사를 진행했는데요. 아빠가 주차를 마치고 엄마를 찾으러 임상치료 채혈실에 갔더니 엄마가 없었어요. 임상치료는 채혈실도 따로 있었는데 말이죠.


   아빠는 한참을 두리번거리다 엄마와 통화를 했고, 엄마가 일반 채혈실에서 피검사를 하고 있다고 했데요. 그 순간 아빠는 등골이 서늘해졌다고 합니다. "임상치료 대상자에서 탈락했구나" 감이 오셨다고 해요.


   엄마는 맥없는 얼굴로 "오늘은 여기서 하라고 하네"라고 대답했어요. 아빠는 엄마를 편한 의자에 앉혀두고 간호사들에게 왜 채혈실이 바뀌었는지 재차 물어보았지만, 담당 교수님이 설명해 주실 거라며 말을 아끼는 모습에 불길한 예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고 해요. 엄마에게는 내색할 수 없이 대기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드디어 담당 교수님과의 외래 시간이 되었어요.


   가만히 엄마의 검사 결과 지표를 살펴보던 담당 교수님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몸의 모든 수치가...

    더 이상 항암을 견디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맞았던 항암제들과

    먹어온 임상치료 약으로 인해

    간 수치가 많이 상승한 상태에요.

    암세포를 없애려면 약을 써야 하는데

    약이 간에 독이 되는 상황입니다.

    간에는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암세포만 없앨 수 있는 약이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저도 안타깝습니다만...

    이제 그만 내려놓으실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임상 항암치료 중단을 이야기 하던 교수님


   한 번도 엄마에게 3기, 4기, 여명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던 엄마의 주치의 교수님의 이야기에 엄마와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고 해요. 막연히 약이 안 맞으면, 다른 약을 찾으면 될 거라 생각했던 우리의 생각에 엄마의 몸이 견뎌줄 수 없는 상황은 없었더라고요.


   아빠와 통화로 이야기를 전해 듣는 저도 아무 이야기를 할 수 없었어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지... 얼마 간의 시간이 남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어요. 단 한 가지,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두려움과 긴박한 마음만 가득했죠. 엄마는 얼마나 놀라고 힘들었을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던, 한없이 이기적이었던 딸이었어요.


   태연한 척 아빠와는 통화를 마치고, 한참을 울었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상상해왔던 엄마의 마지막이, 엄마와의 이별이 이제 어렴풋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항암 임상치료를 중단하고 3주 후, 외래 진료에서 주치의 교수님은 모든 항암치료 중단을 선언했어요.


   그렇게 2024년 1월 2일, 폐암 4기 엄마는 항암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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