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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B Apr 26. 2024

'영끌러의 탄생 비결'

30대 후반 외벌이 가장.. 일확천금을 꿈꾸다.





영끌러의 탄생 배경

2021년 우리의 삶은 큰 격변기를 거쳤다.

첫째는 코로나 시대, 둘째는 투자 열풍

코로나로 인해 일상만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주머니 사정까지 달라지게 되었다.

당시 주위 사람들과 지인들 친구들 모두 한 목소리로

“내 코인이 100배가 되었어, 1,000배가 되었어, 오늘 하루만 몇억을 벌었네”

“내 주식이 어제 하루사이에 50% P가 올랐어, 내일 까지 유지만 하면 수익률 300%다.”

“우리 아파트 호가가 하루아침에 1억이 올랐어, 담보대출 금액보다 호가가 더 올랐네.”

등의 이야기들로 투자로 인해 수익만 이야기할 뿐 손실에 대해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투자나 재테크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한편으론 배가 아프고 속이 쓰리면서 다들 하는 재테크를 왜 난 하지 않고 있었지?라는 생각과 한탄만 나올 뿐이었다.




재테크 공부 입문

2021년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나는 재테크에 눈을 뜨게 되었다.

수익을 봤다는 친구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고, 조용히 준비해서 내가 더 큰 성공을 이뤄야지 라는 생각으로 재테크에 대해 독학을 하게 되었다.

재테크 공부는 ‘부동산’으로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나는 자가를 갖고 있었으며 우리 집 또한 호가가 올라있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 관련 내용은 유튜브 영상으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부동산에 대한 각종 정보와 강력한 썸네일 그리고 관련 정보들이 난무했고

특히나, 유튜버들은 행동력을 강조하며 내가 선구자이자 이 분야에 대해 통달했다는 영상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지금이라도 해야 합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과녁에 화살을 먼저 쏘고 방향을 결정하세요.” 등등

그리고 10억을 달성했어요 등의 유투버 혹은 강사님들의 강의를 들은 수강생들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나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게 되었다.

경제적 자유에 조급해진 나로서는 꿀맛과 같은 달콤한 이야기들이었다.

달콤한 이야기들에 현혹되어 각종 재테크 서적과 유료 강의 또한 듣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는 강의비에 100만 원 이상을 지불한 ‘프로수강러’가 되어 있었다.




투자 결심의 순간

그러다 결심하게 되었다. 프로수강러에서 찐 투자자가 되야지라는 결심을!

프로수강러로써 공부는 어느 정도 되었다 싶었고 이제는 행동력만 있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제로 강사분들도 프로수강러가 되지 말고 찐 투자자가 돼야 합니다라고 적극성에 대해 언급도 있었다.

때는 2022년, 2021년 중순 재테크 공부를 시작한 지 대략 7~10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영끌러 탄생 전 나의 상황

당시 나의 제정상황은 고정금리 2.5%로 계약을 한 약 2억 원가량의 담보대출을 한 집 한 채와 다달이 할부가 나가는 새로 산 나름 하차감이 있는 대형 국산 SUV를 가진 상태였다.

그로 인해 약 월 100만 원 정도의 대출 상환액이 발생했었다.

그때가 나의 제정상황에 있어서는 제일 건전한 부채를 가진 시기였다.

앞으로 급변하게 될 금리와 하락한 집값에 맞서 싸우는 나의 모습은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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