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자동차는 남색 갤로퍼였다. 제주 32 거 3015. 32 거가 맞는지 정확하진 않다. 갤로퍼는 그 골목 어귀에 주차되어 있었다. 사거리 문구점에서 갤로퍼 스페어타이어가 얼핏 보이면 하아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빠는 왜 그토록 집에만 있었을까.
나는 멀미를 잘했다. 갤로퍼는 지프여서 승차감이 멀미를 일으키기 일쑤였다. 뒷좌석에 타면 한결같이 멀미를 해서 멀리 갈 일이 있을 때 구박을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구입한 아빠 차 갤로퍼는 내가 20대가 되어서도 그 자리에 세워져 있었다. 출시됐을 때 히트를 쳤던 갤로퍼가 어느새 아빠처럼 연식이 흘렀다. 그쯤에는 문구점 사거리에서 스페어타이어가 보여도 긴장을 하진 않았다.
오늘 오랜만에 갤로퍼를 만났다. 아빠의 남색 갤로퍼였다면 짙은 감성에 젖었을 텐데, 다행히 회색에 지붕도 높았다. 갤로퍼는 요즘 희귀 자동차라 도로에서 볼일이 없다.
연식이 족히 30년은 돼 보이는 어르신 갤로퍼가 느긋느긋 앞서간다. 여유 있게 출발하니 다행이지 시간이 촉박했더라면 미간을 찌푸렸을 거다. 조용히 뒤따른다. 가다가 멈칫 멈칫하는 갤로퍼는 세상 급한 일이 없어 보였다. 나도 꽤나 천천히 가는 슬로 드라이버인데 저분은 한수 위다.
맞은편에 새빤직한 하얀색 테슬라가 세련되게 달려온다. 아주 부드럽고 고요하게, 그러나 빠르게 갤로퍼와 나를 지나쳤다.
테슬라와 갤로퍼가 스치는 그 순간, 기분이오묘했다. 신, 구의 자동차가 그렇게 지나치니 현재와 과거가 겹쳐지는 착시현상처럼 다가왔다.
갤로퍼 어르신의 운전자가 궁금했지만 좁은 도로 끝에서 우린 갈라졌다. 누군지 알길없는 운전자에게 잠시나마 친밀감을 느꼈다. 낡았지만 도도한 갤로퍼 어르신과 그를 이끄는 운전자가 어딘가에서 잘 지내길 바란다.
그리고,
갤로퍼 운전자였던
나의 아빠가
저 하늘 어딘가에서
잘 지내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