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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서 Sep 10. 2024

마흔, 엄마로만 살래?

에필로그

“어떡해!!”

“미쳤나 봐!”     

마흔을 한 해 앞둔 어느 날 화장실 안 거울, 더 이상 족집게로는 뽑을 수 없는 양의 흰머리를 발견했다. 염색은 멋내기용으로만 써봤지 새치 커버 염색약을 살 줄이야. 늙어가고 있음을 두 눈으로 보니 초조함과 허무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누군가는 쫓을 꿈이 있었다지만 해내고 말 거라는 목표도, 하고 싶다는 열정도 없었다. 그저 맞닥뜨린 현실을 버겁고 무미건조하게 살아내고 있을 뿐


20대는 열렬히 사랑했던 첫사랑에게 기똥차게 차여 찌질한 인생을 살았다. 30대는 독박육아로 유체가 이탈하는 삶을 살다 마흔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나서야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흔을 앞둔 사람은 알 것이다. 29살 때의 호들갑과는 무게 자체가 다르다, 20대 끝자락엔 젊음은 갔지만 세련된 차도녀로 살겠다는 다짐이라도 있었다. 


30대 끝자락에 선 거울 속 여자를 보고 있자니 앞이 깜깜했다. 두피에서부터 돋아난 흰머리들, 점점 깊어지는 팔자 주름, 활짝 열려 있는 모공들, 시선을 점차 내리자, 한숨 대신 헛웃음이 나왔다.


경계를 알 수 없는 허리, 힘을 주어도 미동 없는 뱃살, 결혼하면 빠진다던 코끼리 다리까지. 답이 없다. 순간 남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까지 밀려왔다.


자책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전두엽은 더는 내 것이 아녔다. 겉모습은 그렇다치자, 40대에는 뭐 하고 살 건지, 이룬 것은 무엇인지, 이루고 싶은 건 있긴 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댄다. 진지하게 한번도 물어본적 없었다. 별 볼일 없이 사는 나를 직접 마주할 용기도 없어 대충 덮어 놓고 살았다.


의도치 않았던 기습질문에 머리는 멍했고 가슴엔 안개가 껴 뿌옇고 텁텁했다. 


마흔 정도 되면 '진짜' 어른이 될 줄 알았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단단하게 자리 잡힌 묵직한 어른 말이다. 살아오며 얻은 지혜와 경험으로 더 이상 흔들림이 없다 하여 불혹(不惑)이라던데 공자님 이건 좀 물리셔야 될것같은데요?


초조함이 불안감을 넘더니 기어이 무기력한 상태까지 가버렸다. 뭔가 하긴 해야겠는데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와중에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아이 학원비라도 벌어 볼 심산으로 시작한 부업이 직장인 평균 월급보다 많아지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귀찮았다. 돈돈 거리며 살아온 내가 돈마저 귀찮다니 심상찮았다.


그려지지 않는 마흔인데 예상되는 마흔은 끔찍했다. 두려웠다. 지금 뭔가를 바꾸지 않으면 초라하게 늙어갈 것이 분명했다. 무엇을 바꿔야 할까? 어떤 변화를 줘야 할까? 답을 찾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인간관계라곤 가족, 동네 언니들, 분기별로 보는 몇몇 친구들과 전부였다. 사회생활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게 집과 마트가 유일했다. 집에서 집안일하고 부업하고 마트 가서 장 보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그마저도 쿠팡 로켓프레시로 침대에서 장을 보는 날이 많아서 외출이라곤 아이 등하원때와 강아지 산책이 전부인 날이 거의 였다.


무기력함이 우울함을 달고 오는지 이러다 우울증에 걸리는 거 아닌가 두려웠다. 더 깊어 지기 전에 빠져나오고 싶었다. 그때부터였다.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댔다. 책으로 위로받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시기에 제일 많이 들어본 말이 "엄마 책 또 봐?" " 책 좀 그만 읽어" 였으니 세보진 않았지만 어림잡아 족히 100권은 넘었다. 6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였다.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좋아하는 일이 뭐냐 물으면 야밤에 맥주 먹기 말고는 떠오르지 않았던 내가, 잘하는 일이 뭐냐 물으면 맥주 먹다 말고 소주로 갈아타는 것 뿐이었던 내가, 잊고 있었던 꿈을 찾게 되었다. 


마흔을 고작 3개월 앞둔 나에게도 가슴 뛰는 장래 희망이 생겼단 말이다. 온통 뻣뻣하고 건조했던 내 삶에 촉촉하게 물기가 스며들었다. 


그것도 핑크빛 물감 한 방울 톡 떨어뜨린, 




이 책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로만 살다 비로소 내 이름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불안한 마흔보다 기대되는 마흔을 살고 싶은 엄마들과 함께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다.


지금 보톡스나 맞을 때가 아니다. 

다시 나에게 집중해서 멋진 마흔을 맞이할 최적의 타이밍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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