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만 왕성했을까, 27살의 새파란 새댁은 어김없이 그날도 한 손엔 족발을, 한 손에는 소주잔을 들고 신혼의 달콤한 야식을 즐기고 있었다. 남편과 나의 취미는 잘 맞았다. 좋아하는 음식도 대부분 비슷했기에 맛있는 안주와 더 맛있는 술은 우리의 관계를 더 끈끈하게 하는 유일한 취미였다.
다낭성낭종이 제법 심했던 난 임신이 잘 되지 않을 거란 한의사의 말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직 젊기도 했고 적어도 1년은 신혼을 즐기고 난 후에나 고민해 볼 심산이었지만 친정엄마는 혹여 출가한 딸이 애 못 낳아서 소박이라도 맞을까 임신에 좋다는 한약을 기어이 지어주셨다.
주 5일 규칙적으로 취미생활을 즐기던 어느 날이었다. 술술 들어가던 술을 자제하고 다음 날 임신테스트기를 산 건 지금 생각해 봐도 이유를 알 수 없다. 테스트기는 선명한 한 줄이었으나 나만 보이는 희미한 한 줄이 더 있었다. 성격 급한 난 기어이 산부인과를 찾아갔고 산부인과에서조차도 긴가민가하여 2주 뒤에 다시 테스트기를 해보란 말만 듣고 나왔다.
한약이 용한가 했더니 그 한약은 임신이 잘되게 하는 게 아니라 임신 전 자궁을 깨끗이 비워주는 한약이었다. 임신 시도를 할 때는 먹지 말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조상의 덕인지 우주의 기운인지 알 수 없으나 꾸준히 잘 먹던 한약을 몇 주 안 먹게 되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정확히 2주 뒤 테스트를 했다.
테스트기에 시약선이 퍼지면서 덜컥 임신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더 이상 취미생활을 하지 못하면 뭔 재미로 사나 싶은 아쉬움, 그렇다고 임신이 아니면 서운할 것 같은 문맥상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조합의 감정이 올라올 때쯤,
선명한 두줄이었다.
쿵쿵쿵
심장이 발바닥에서 뛰고 있었다. 벅차다고 해야 할까 몽환적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난생처음 느껴본 기분이었다.
결혼한 지 딱 6개월 만에 난,
엄마가 되었다.
첫 아이를 가진 다른 엄마들도 그랬을까?
묘한 특권 같은 게 생기기도 했는데 괜히 나 임산부요, 알리고 싶어 배도 나오기 전에 임부복을 입고 다녔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손목터널증후군으로 고생할 줄 알았다면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만든 DIY 배넷저고리 키트는 갖다 버리는 거였는데!
폭풍이 오기 전 하늘은 고요하다 했던가,
처음 해보는 임산부 생활은 그저 신기했고 행복했다.
곧 다가올 고난은 모른 채.
공기업을 다녔던 남편은 퇴직을 했고
욕심부려 확장한 사업은 24평 신혼집을 공중분해시키고선 끝이 났다.
28살에 엄마가 될 줄도 몰랐지만
파산 직전의 상황에서 아이를 키울 줄은, 정말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