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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서 Sep 12. 2024

출산 후 늘어진 건 뱃살만이 아니다.

출산을 했다 하여 배가 자연스럽게 꺼지진 않는다. 터질 듯 부푼 풍선에 바람을 뺀다 하여 원래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듯이 말이다. TV 속 연예인들은 출산한 지 100일도 안 돼서 예전 몸매로 돌아왔다던데 역시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산후조리원에서의 2주는 그야말로 지상낙원이다. 초산인 엄마들은 산후조리원에서 하는 프로그램 참여도 활발하다. 


“산모님, 직수하러 오시겠어요?” 


때때마다 오는 콜에도 열심히다. 일주일정도가 지나면 슬슬 지루하다며 집에 가고 싶다는 산모들도 많다. 둘째나 셋째 엄마들은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그날부터 포스가 다르다. 직수는 최소한으로 하고 조리원 프로그램은 거들다 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산후조리원이 천국이란 사실을 알고 있다. 천국에서의 주어진 시간은 고작 2주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직 휴식과 산후마사지에 진심인 것이다. 


친한 언니는 셋째 출산을 하고 조리원에 도착하자마자 단유 마사지부터 받았다고 했다. 언니의 말을 빌리자면, 딱 초유만 먹이고 점포 뺐다고 했다. 역시 경력직은 포스가 남다르다.


나 역시도 첫째 때는 낮이고 새벽이고 ‘직수 콜’에 진심이었다. 나오기는 하는지 먹고는 있는 건지 알 길은 없으나 나도, 아이도 젖 먹는 힘까지 짜내며 고군분투했었다.


조리원 세계에서는 초록색 젖병 가득 유축한 젖을 내놓는 엄마들이 어깨가 당당한 곳이다. 자연분만으로 출산하고 젖의 양이 많으면 신분 상승한 것 마냥 걸음걸이부터가 당찼다. 아. 대신 참젖이어야 하는 조건부가 있다. 


여하튼간에, 그들만의 리그인 산후조리원을 퇴소하면 비로소 마주한 현실을 맞이한다. 다른 나라에도 헬육아라는 의미의 단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헬(Hell) 육아, 누가 만든 합성어인지 몰라도 찰떡같은 표현임은 분명하다. 


나는 젖이 많지도 적지도 않았는데 직수가 잘 안 돼서 2~3시간에 한 번씩 유축을 해서 먹였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유축을 해본 사람은 안다. 깜깜하고 고요한 밤 ‘스아압 찹, 스아압 찹, 조르르’ 젖 짜는 소리가 얼마나 고달픈지. 동트기 직전의 아침은 내가 소인지, 소가 나인지 정체성의 혼란이 생기기 딱 좋은 시간이다. 


탄력 없이 축 늘어난 배보다 나를 더 슬프게 하는 건 자꾸 저 아래를 향하고 있는 젖꼭지였다. 늘어진 배는 죽을 각오로 운동하면 다시 탄력이 생길 가능성이라도 있지, 탄력이라고는 있어 본 적 없는 것처럼 고개를 툭 떨군 가슴은 운동으로 어찌 수습할 길이 없어 보였다. 


의느님의 손길이 닿으면 모를까. 본디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야 할 아이가 자꾸 땅을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산후 우울증의 시작이구나 싶다. 


웃픈 이야기지만 지인이 젖이 흘러 뚝뚝 떨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젖꼭지가 아래를 보고 있으니 자꾸 바닥에 떨어질 수밖에. 닦아낼 새도 없이 강아지가 와서 핥아먹더란다. 사람새끼 키우면서 개새끼도 같이 키웠다며 넉살 좋게 말하는데 웃어야 될지 울어야 될지 난감했다.


출렁이는 뱃살을 보면 당장이라도 헬스장 PT를 끊고 싶지만 현실은 애를 봐줄 사람도, 돈도 없다는 것이다. 쪽잠 자는 걸 아껴가며 유튜브를 켰다. 산후 뱃살 빼는 운동이라고 쳤다. 수많은 동영상 중에 매운맛이라고 적혀있는 걸 선택했다. 시간이 많지 않기에 짧고 굵게 치고 빠지는 걸 선택해야 했다. 몇 번 따라 하니 이러다 산후풍 올게 분명했다. 자꾸 윗몸을 일으키라는데 일어나야 일으키지, 꼼짝도 안 하는데 별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역시 운동은 유튜브로는 한계가 있다며 쿨하게 껐다. 


젖 먹이는 엄마들은 알겠지만 한번 젖을 먹이고 나면 허기가 밀려온다.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은 욕심이다. 젖을 생산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먹는다. 먹는다는 표현 보단 입으로 연료를 때려 넣는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주 연료로는 소고기 미역국, 북어 미역국, 조갯살 미역국으로 로테이션된다.


반짝이는 금팔찌와 반지 대신 손목보호대와 파스가 붙여져 있다. 블링블링한 네일 대신 바짝 깎은 손톱이 단정하다. 굵고 탄력 넘치던 긴 웨이브 머리도 사치다. 빨리 감고 쉽게 말릴 수 있는 단발머리가 최고다. 그렇게 여자에서 엄마가 되어 간다. 그렇다 난 그렇게 엄마가 됐다.


내 젊음을 내어주고 아이가 커간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다. 첫니가 나는 순간, 남들은 아니라지만 분명 또렷하게 들렸던 ‘엄마’라는 첫 옹알이, 첫 발을 떼는 순간, 나를 향해 아장아장 걸어오는 순간, 그 모든 순간순간에도 나는 늙어가고 있었고 아이는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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