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후부터 7cn이하 구두는 취급해 본 적이 없었다. 운동화를 꼭 신어야 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늘 힐을 신고 다녔다. 키가 160cm이 겨우 될까 말까 했기에 힐은 내 자존심이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식당에선 까치발을 들고 들어갈 만큼 유난을 떨었던 나였다.
임신을 기점으로 신발장 속 신발들은 인사이동이 되었다. 메인 자리를 차지하던 쨍하고 쭉 뻗은 하이힐은 보조의자가 아니면 손도 닿지 않는 맨 위 칸으로 발령을 받았다. 손길은 그렇다 쳐도 눈길이라도 주면 될 것이지 하루아침에 찬밥신세가 되었다.
그 바람에 빛을 보게 된 것은 운동화였다. 디자인보다 발이 편한 게 우선이었다. 구두로 톤 앤 매너를 맞춰야 할 땐 플랫슈즈나 단화를 신었다. 내 돈 주고 처음 사본 굽 없는 구두였다. 하이힐만 신다 굽 없는 플랫슈즈를 신으니 걸을 때마다 땅 속으로 꺼지는 느낌이었지만 이내 신발장은 온통 운동화와 굽 없는 단화로 가득 찼다.
언니는 너희들을 버리지 아니하였단다. 언젠가 신겠노라 기다리랬던 하이힐들은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발장 어딘가에 처박혀 눈길도 손길도 받지 못한 채 반짝이고 있다.
둘째가 3개월 무렵이었다.
그 해 초겨울, 그날의 냄새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첫째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화장기 없는 얼굴은 맞지만 그렇게만 표현하면 안 된다. 퍼석하게 메마른 얼굴에 핏기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 허여멀건 입술이었다. 당연히 머리는 아침에 감았을 리 없다. 분명 전날 저녁에 감았을 텐데 말릴 새도 없이 기절했기에 대충 고무줄로 질끈 묶었을게 당연했다.
잠시 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문이 정말 천천히 열린 건지 내 눈에 슬로우가 걸린 건지 알 순 없지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문이 스르르 열렸다. 향수 냄새가 살짝 진했지만 상쾌한 향이 풍겼다. 까맣고 긴 생머리의 그녀가 걸어오더니 뒤돌아 내 앞에 멈춰 섰다.
백화점 1층에서 나는 냄새가 났다. 고급스럽고 우아한 냄새였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한쪽 어깨를 들어 내 옷 냄새를 맡았다. 분유 냄새가 났다. 아기옷에서 나는 섬유유연제 냄새도 났다. 포근하고 좋은 냄새였지만 백화점 1층 화장품코너에서의 향과는 어울리지 않은 냄새였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바깥바람에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살짝 날렸다. 샴푸 냄새 향수 냄새 화장품 냄새가 다 섞였는데 여하튼 고급스러운 냄새를 풍기며 걸어 나갔다.
또각또각 -
구두소리 내며
하필이면 맨발에 슬리퍼차림이었다. 찬 바람에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아이들은 중무장을 시켜놓고서는 정작 내 차림새는 겨울과 여름이 공존했다.
‘나 왜 이렇게 초라하냐'
코끝이 쟁하며 저렸다. 눈물이 흐르진 않았지만 울컥 차오르긴 했었다.
그녀의 어디가 부러웠을까? 좋은 냄새가?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아니었다. 출근하는 모습이, 화장을 하고 옷을 차려입고 구두를 신고 나갈 수 있는, 눈 뜨면 정해진 어딘가에 가는 평범했던 내 모습이 그리웠다.
아이를 키우면 고작 단어 몇 가지로 형언할 수 없는 벅찬 행복함과 감동적인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힘듦과 고단함도 있다. 내 시간이지만 내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시간과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어른 대화, 그렇게 점점 사회로부터 외톨이가 되어 가는 느낌이 낯설었다.
군대 동기의 전우애와는 농도부터 다르다던 조리원 동기 모임도 점차 그레이드가 나뉘게 되었다. 아기가 24개월 전 전에 비행기를 타야 공짜로 갈 수 있다며 가까운 일본이라도 간다는 엄마와 소박하게 제주도나 갔다 왔다는 엄마 사이에서 딱히 낄만한 얘기가 없게 되거나 침 튀겨가며 하던 남편 욕이 고스란히 내 얼굴에 묻었음을 알고서부터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너스레를 떨자면 둘째 키울 때는 산후우울증이 생길 틈조차 없었다. 평일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밤이고 낮이고 독박으로 아이 둘을 케어하니 숨만 쉬어도 버거웠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이제 둘째가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간다. 확실히 손이 덜 가니 한숨 돌릴만했다. 이제 좀 사람처럼 살겠다 싶었더니 불현듯 찾아왔다.
번아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