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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서 Sep 26. 2024

갱년기 아니고 사십춘기거든요?


산후우울증이 출산하고 7년 뒤에 올 수도 있나 싶을 만큼 갑작스러운 무기력과 널뛰는 감정기복은 원인미상이었다. 순식간에 쉬어 버린 흰머리를 욕실 거울에서 마주하게 된 그날부터였을까? 어제까지 스물아홉이었는데 오늘 아침 서른아홉이 된 기분이랄까? 매년 생일을 챙겨 먹었으면서 언제 이만큼 나이가 들었나 어색한 게 어색할 일이다.


마흔은 낯설고 두렵다. 열심히 살았지만 꾸준히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고 여전히 독박으로 아이들을 케어하고 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거란 별다른 기대 없는 삶, 파도가 치지도 바람이 불지도 않은 하루, 냉수 온수가 아닌 밍밍한 정수 같은 삶, 딱 그거였다.      


별 탈없이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배부른 소리 한다는 사람도 있다. 맞다. 어쩌면 내 고민은 배부른 고민이라 어디 털어놓기도 민망해서 나조차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불안한 감정들을 무시했고 이룬 게 없는 내 모습의 허무함을 에둘러 포장했다. 피가 나야만 상처가 생기는 것은 아닌데 안에서 올라오는 감정은 곪을 때까지 덮고 또 덮었나 보다.


가장이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무겁고 무서운 것인지 알기에 내 힘듦과 내 고민은 삼키기 바빴고 좋은 아내 현명한 엄마 싹싹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나'는 돌봄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 넷플릭스에 맥주 한잔으로 달려주면 되는 그런 쉬운 '나'였다.


나 말고는 다 행복한 인스타그램을 삭제하면서 더 이상 스스로를 초라한 모습으로 갉아먹지 않겠다며 냉장고 한 켠에 당차게 붙여 놓은 [ 누군가의 찰나의 행복을 내 삶과 비교하지 않을 것! ] 종이도 학교 안내문이나 가정 통신문 따위에 밀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내면에서 곪은 감정이 무너지기 시작하니 그 틈을 어찌 그렇게 잘 알았는지, 툭하면 들어와 비교질 하고 끝도 없이 자책을 하는지, 내 마음은 내 건데 내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정의되지 않은 불편하고 모난 감정에게 이제라도 관심을 기울여 보았다. 모든 것이 귀찮고 내 존재가 하찮고 한순간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이유가 대체 뭘까? 누구한테 물어봐야 할까? 


1년 내도록 현수막에 걸려있는 [방금 신내림 받았다]는 저 무당을 찾아가 볼까, 시간당 돈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는 심리상담센터를 찾아가 볼까 고민하다 그래, 책이다 싶었다. 


내가 모르는 분야를 접할 때 그 분야책을 적어도 10권 정도 보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이번에도 책을 보며 스스로 답을 찾기로 했다. 6개월 동안 하루 1-2권 정도 책을 읽었다. 보고 또 본 책도 있고 보다 덮은 책도 있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어림잡아 150권은 넘겼다. 


복잡하고 명확하지 않아 더 나를 괴롭혔던 원인, 드디어 알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근사하지 않은 이유이라 먹먹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그건 나에게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다.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래서 결국 어떤 사람으로 늙고 싶은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진로를 고민할 10대 20대 조차도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 목표였고 짜놓은 플랜대로 살아가기 바빴다. 좋아하는 일을 고민하는 것은 홀로 나를 키운 엄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흔을 앞두고서야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당연한 생각, 그러나 너무 늦게 한 생각. 

그러하지 못하고 있는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


하지만 외면할수록 이제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영영 후회할 것만 같았다. 몇 달을 고민하고 남편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 당신이 얼마나 가정을 위해 희생하고 힘든지 잘 알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기적이라 생각하겠지만 나 이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건 그만하고 싶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 일로 돈도 벌고 싶어 ”     


3초 정도 생각하고선 말했다.     


“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인간답게 살아야지,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해 봐 ”     


고마운 남편이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 덕에 마흔을 앞둔 나의 사십춘기,

각 잡고 제대로 흔들려보기로 했다.     




에필로그(Epilogue)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사색하는 좋아하는 편일까

함께 어울리는 걸 좋아하려나?

뭘 할 때 기분이 좋아질까

어떤 가치관이 있을까

어떨 때 마음이 편안해질까?


나 자신을 궁금해해 본 적, 있나요?


내 마음은 내 거지만 어디 내 마음대로 되던가요?

모나게 굴기 전에 좀,

들여다봐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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