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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서 Oct 01. 2024

82년생 김지영 씨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소설보다 영화로 먼저 봤다. 가슴이 간질거리는 로맨스가 있는 것도, 침을 꿀꺽 삼킬 만큼 긴장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팝콘 하나를 입에 넣지도 못할 만큼 꼼짝없이 빨려 들어가 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영화인지 인간극장인지 헷갈릴 만큼 대부분의 80년대생 엄마들과 닮아있었다. 작가가 내 삶을 모티브로 가져다 썼나 싶을 만큼 공감이 되었다. 다만,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래도 김지영 씨는 남편이 퇴근 후에 아이도 씻기고 분리수거도 해줘서 좋겠다. 너만 아이 키우는 줄 아냐 다들 이렇게 산다. 싫으면 나가서 나만큼 돈 벌어와라 내가 살림하면 이것보다 낫다 막말 퍼붓지 않아서 좋겠다 했다. 게다가 남편이 공유인데 산후우울증이 올 것까진 없지 않았나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영화 속 김지영 씨는 가족의 돌봄과 적극적인 치료 덕분에 다시 생기를 되찾고 자신이 좋아했던 글쓰기를 시작하며 김지영의 삶을 찾아가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사실 원작 소설 속의 김지영 씨는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조금씩 좋아지기도 했다가 한 번씩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며 끝이 난다.      



주변의 김지영 그리고 나     


유난히 우리 아파트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많다. 단지 내 어린이집이 있는데 등원시간이나 하원시간이 되면 놀이터에는 아이들과 엄마들로 가득 찬다. 쫓아다니며 아이 입에 간식을 넣어주는 엄마, 넘어져 울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가 조심하랬지 혼내면서도 팔(八) 자 눈썹이 되어 살펴보는 엄마, 엄마 이것 봐 신기하지 엄마 이거 봐봐 애타게 불러도 휴대폰에 눈을 꽂은 채 어 그러네 대답하는 엄마.


그날은 둘째 유치원 하원 후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엄마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일부로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바글바글한 놀이터에 앉을자리가 넉넉지 않아 바로 내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 통에 나 말고도 여럿이 다 같이 듣게 되었다.    

 

"어린이집 보내고 4시간 정도라도 알바를 하고 싶은데 이 시간에 뽑는 알바는 식당 서빙뿐이더라"     


"그러게, 10시부터 2시까지 일하고 애들 하원하기 전에 청소 좀 해놓고 저녁 해놓으면 딱인데 말이야. 그렇게 해서 한 달에 3,40만 원 벌면 그게 어디야"


"이러려고 대학원까지 나온 게 아닌데 말이야... 진짜, 애 낳고 정신없이 키우다가 이제 좀 커서 다시 일 시작할까 하다가 접었어. 친정엄마나 시어른 도움 없이 일하는 건 도저히 무리다 싶어서. 몰라, 초등학교 들어가면 그때나 하려나, 근데 그때 되면 누가 나를 써주겠니? 경력은 단절됐지, 나이는 많지, 애는 있지... "


"언니, 유치원은 종일반이라도 있죠. 초등학생은 1시에 집에 와요. 아주 미쳐요 그냥. 일하는 엄마들 보니까 1시부터 6시까지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다가 결국엔 많이들 그만두더라고요"


현실이 이러니 내 꿈은 어디 갔냐고, 내 삶은 어디서 찾냐고 감히 물을 것도 없지만 어쩌다 생각나는 날엔 깊은 날숨을 내뱉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나 역시 정신없이 아이 둘을 독박으로 키웠고 그 가운데 뒤처지지 않으려 그 좁은 틈을 기어이 벌려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땄고 재택근무가 가능한 온라인 스토어도 운영하며 돈도 벌었다. 물론 집안일 역시 모두 내 몫으로 말이다. 아, 순서가 바뀐 듯하다. 아이와 집안일 모두 케어하려면 재택근무와 유연한 근무시간이 가능한 온라인 스토어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가 제대로 된 순서겠다.     


제 키보다 더 큰 짐보따리 몇 개를 둘러메고 다니면서도 솜보따리라 괜찮다고 말하며 다녔다. 나보다 더 무거운 짐보따리를 메고 있을 남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대체로 고마워했고 안쓰러워했지만 가끔 욱하는 DNA는 어쩔 수 없더라. 솜보따리에 물을 가득 퍼붓는 날도 있었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솔찮게 벌던 돈도 다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은행 어플 속에 있는 잔액은 그저 숫자일 뿐이오, 30만 원이 입금될 때나 500만 원이 입금될 때나 기쁨의 크기는 다르지 않았고 딱히 기쁘지도 않았다. 그저 들어왔구나, 나갔구나, 남아있구나가 다였다. 10만 원을 벌더라도 내가 설레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일, 그걸 찾고 싶어졌다.           


나보다 4살 많은 82년생 김지영 씨는 2024년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 속 결말처럼 김지영을 되찾아 좋아하는 일로 새로운 꿈을 꾸며 살고 있을까? 원작 속 열려있는 결말은 내게 넌 어떻게 살 꺼니 묻는 것 같았다.      

애들 좀 더 크면, 남편 사업이 잘되면, 수많은 일들의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나를 찾아 나서다간 영영 나를 잃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영화 속 82년생 김지영 씨가 그랬던 것처럼 86년생 김지영이 나를 찾아가고 90년 김지영이 저를 찾아가는 지극히 당연한 일에 용기와 눈치가 필요했다.     

 

부디 14년생 김지영과 18년생 김지영은 지극히 당연한 일을 너무도 당연하게 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해선 결혼 자체를 하지 말라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지 말라는 극단적인 말 대신 엄마의 삶만큼 내 삶도 중요하다고, 그래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해서 ‘나’의 이름을 잃지 말라는 것을 몸소 보여 주려 한다.           


               

사진출처- https://bit.ly/3BzhN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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