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여름 May 11. 2024

어느 동쪽의 해변에서

모르는 술을 먹은 기억

맞지도 않는 옷을 입은 기억

읊조린 적 없는 글을 내뱉은 기억


내 사유가

글이 되어 흐르는 것이라면

흐르게 두고 싶지 않다

고이다 못해 썩게 두고 싶다


선악이 무엇이 중요하랴

양초가 촛불이 되어 촛농과 재를 남기는 일에

선악을 부여할 수 있을까

사유란 것은 존재하는 것인가

휘발되지 않았는가?


선착장에 묶여있는 밧줄을 밟고 다닌 나에게

어느 어부가 묻길

왜 여기 있습니까?

바다가 있어서요

그리고 사유할 것이 없어서요

흐르게 두지 못하고 잡아 두지도 못할 것만이 남아

나를 괴롭히기에

스스로 밧줄에 묶이길 원했다고


말을 한 적이 없다

한 사람의 사유란 것은

쓰거나 읽거나 인식하기 이전에

선악을 부여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문제이기에

나는,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뇌이며 도망친 길이 겨우 이런 바다라니


밧줄엔 바다 내음이

그리고 나는 꺼내어지고


작가의 이전글 구멍 구멍 구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