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낳으면 금메달, 아들 낳으면 목메달?

by 디어살랑

재채기하는 것도 조심하던 임신초기가 지나고 드디어 나도 임신 중기라고 불리는 16주에 진입했다. 16주의 가장 큰 이벤트는 아무래도 바로 '아기 성별 확인'이다. 임신 초기에는 초기의 증상들을 이겨내느라 딱히 성별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슬슬 16주가 다가올수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딸을 낳으면 해서 절에 가서 기도까지 했다던 엄마와, 나 닮은 예쁜(?) 공주였으면, 하는 마음을 은근히 비추신 시어머님. 그래서 은연중에 나도 딸이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하다.


산부인과 선생님이 성별을 1초 만에 확인하고 메모지에 적어서 봉투에 넣어주셨다. (일반적으로 성별을 빨리 확인할수록 남아 일 확률이 높다. 그것을 봤기 때문.. 딸인 경우 성별 확인에 더 신중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린다.) 나도 잠깐 초음파를 곁눈질하다가 그것을 보고 말았다 하하하. 궁금증을 못 참고 병원을 나오자마자 열어본 봉투에서는 아주 정확하고 큰 글자로 '남아'라고 적혀있었다. 아들만 가지면 의기양양해서 돌아다니던 엄마들이 존재했던 게 불과 몇십 년 전인데, 이제는 아들이라는 생각에 우울감에 짓눌린 내가 서있었다.


언제부터 바뀐 걸까? 아들 선호에서 딸 선호로.

그리고 무슨 이유로 어떤 특정 성별을 선호하게 되는 걸까?


우선 나부터가 왜 딸을 원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뭔가 내가 나이 들었을 때 아들보다 딸이 부모를 살뜰히 챙길 것 같고, 다정하게 안부 연락도 더 잘할 것 같고, 친구 같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던 것 같다. 주위에선 나중에 병원 입원하면 결국 살펴보러 오는 건 딸들이다,라고도 하고 여러 이유를 생각해 보니 결국 지극히 나를 위한 이유였다. 앞으로의 세상이 여자로 살기 더 좋을 것 같아서 같은 딸을 위한 게 아닌 효도나 관심을 더 줄 것 같은 대상이 아들보다 딸일 것만 같은 이유였다.


차분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봤다. 나는 딸이지만 다정과는 거리가 먼 무뚝뚝한 딸이고, 왜 이렇게 연락 안 하냐는 엄마의 말에 무소식의 희소식이라니까~라고 말하는, 엄마가 갱년기를 겪는 힘든 시간에도 전혀 눈치채지도 못한 둔한 딸이었다. 반대로 남편을 생각해 보면, 어머님과 매일같이 통화를 하고 안부를 묻고 살뜰히 챙긴다. 과연 딸이 아들보다 다정한 게 맞는 걸까?


그리고 왜 딸에게 아들보다 이런 다정함과 챙김을 요구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과거 시대적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엄마와 딸은 동성이기에 정서적인 측면에서 엄마가 딸에게 은연중에 의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엄마 본인 인생의 힘든 점을 딸에게 털어놓으며 감정적인 공감을, 때로는 수직으로 강요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던가 하는데 그러면 사실 엄마와 자신을 점점 동일시하게 되는 딸은 엄마가 가여워지며 정신적으로 힘들어진다. 그렇게 몹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더 엄마를 챙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 같다.


요즘에 와서야 다정하고 가사도 같이하며 가정적인 남편들이 꽤 늘었지만, 엄마 세대만 해도 가부장제 틀 속에서 아빠는 밖에서 열심히 돈벌지만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고 집에서 살림, 육아하고 있는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주기 어려웠다. (심지어 맞벌이라도!) 그러다 보니, 엄마의 깊은 대화와 친구 상대가 되어야 할 남편이 거의 무의미한 존재가 되면서 같은 여자인 딸에게 심적으로 더더욱 의지했으리라 싶다.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여아낙태가 사회적 문제였을 만큼 심각했는데 그때의 남아선호사상도 결국엔 아들로 하여금 집안을 일으킬 가능성이 생기거나, 경제적으로나 (특히나 농경사회에서는) 육체적으로 큰 힘이 될 수 있는 자식을 선호하다 보니 아들 선호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부모의 성별선호는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부모의 특정한 필요성에 의해 정해지는 듯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나는 자식을 양육하면서 딸이든 아들이든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크게 의지하고 싶지 않고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잘 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서, 이제는 성별 상관없이 건강한 마인드로 자립할 수 있는 한 '인간'을 잘 길러내는 것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에 이르렀다.


내 정서적 버팀목은 자식이 아니라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쭉 남편이 될 것이리라! ㅎㅎ


임신을 확인하면 제일 처음 바라는 것이 '건강만 해다오'이다.

임신테스트기를 확인했던 그날, 우리 부부에게 새로운 생명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뻤지 아들이냐 딸이냐에 기쁨이 달랐겠는가. 지금도 성별 상관없이 한 생명을 품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수많은 난임부부들을 위해서라도 이 뱃속에 있는 소중한 꼬물이를 축복으로, 처음에 바랐던 그 마음 그대로 사랑해 주기를 모든 예비출산부부에게 바라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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