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듯이 울렁거리던 속도 좀 진정되고 남편이 급 휴가가 생겨서 제주도로 조금은 이른 태교여행을 떠났다. 자주 방문했던 공항인데도 이제 교통약자가 되어버린 나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짐도 붙이고 심사도 빨리 받을 수 있었다. 여행 내내 비가 올 수 있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나는 오랜만의 비행으로 들뜬 기분을 가라앉힐 순 없었다. 원래라면 해외여행을 갈까 했지만 지진, 날씨, 바이러스 등 여러 염려사항 때문에 제주도로 택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 선택이 정말 탁월했다.
해외여행 가는 게 취미였을 정도로 틈만 나면 항공권을 찾아보던 나였는데, 임신을 하니 여행하는 국가에도 많은 제약이 생겼다. 우선 오래 앉아있는 게 불편하니 미국이나 유럽처럼 10시간이 넘는 장거리여행은 가기 힘들어 보였고(아, 물론 왕복 비즈니스좌석이라면 갈 수도 있을 것 것 같다^^;;), 물갈이나 바이러스 이슈가 있는 동남아는 왠지 당기지 않고, 그렇다고 한국처럼 더운 7월의 일본, 대만, 중국 등 가까운 나라는 가고 싶지 않고.
이것 저거 재고 따지다 보니 결국 남은 건 우리 모두의 여행지 괌. 4시간 정도의 비교적 짧은 비행시간, 나름 해외느낌 물씬 나는 전경과 아름다운 해변 등. 근데 제주도도 해외 뺨치게 예쁜데, 아직 안정기 시작이라는 16주에는 접어들지 않았기에 혹시나 모를 상황들이 걱정도 되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다가 우선 제주도를 갔다가 가을쯤 컨디션 괜찮으면 해외로 가봐야지, 하는 생각에 제주도로 결정했다.
도착해서 매콤한 오리불고기도 점심으로 먹고 제주도의 명물 청귤주스와 우도땅콩 과자도 잔뜩 사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호텔로 향했다. 저녁에 수영도 하고 말끔히 샤워하고 누웠는데 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자다가 아픈 배를 부여잡고 인상을 쓰며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뭘 먹고 탈이 났던 건지, 나는 그렇게 한 시간 동안 화장실에 셀프감금되었고 배탈이 나고 말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밤에 잠도 안 오니 현재 머물고 있는 제주시와 이후 이동하게 될 서귀포시의 산부인과를 몽땅 검색해서 리뷰 좋은 곳으로 얼추 추리고 다시 겨우 잠에 들었다가 조식뷔페에 왔다. 원래의 나라면 배탈 났을 때 바로 슈퍼유산균, 진경제와 각종 장염약을 털어 넣고 만찬을 즐겼을 텐데, 약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니 음식으로만 조절해야 했다. 수많은 베이커리와 요구르트, 주스의 유혹을 물리치고 온 곳에 '매생이죽'이라는 표기가 왜 그렇게 반갑던지. (다음날은 무려 소고기뭇국!) 따뜻한 죽과 한식반찬들을 먹고 나니 속이 절로 편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점심도 제주도의 명물 전복죽, 저녁은 보말죽 같은 의도치 않게 로컬죽집들을 돌아다녔다. 내가 해외에 갔으면, 조식에서의 매생이죽과 호텔 5분 거리에 전복죽집은 꿈도 못 꿨겠지. 아픈 배를 부여잡고 치즈버거나 스테이크 같은 걸 울며 겨자 먹기로 먹으러 다녔을 생각 하니 제주도로 온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리고 배탈이 더 심화돼서 문제가 생기면 바로 산부인과로 달려가면 되니까, 이 얼마나 마음 편한가! 다음날 소고기뭇국까지 먹고 나니 배탈이 완전히 괜찮아졌다.
서귀포시로 이동한 호텔에서 수중이어폰을 끼고 클래식을 들으며 물에 둥둥 떠다니며 가끔 제주바다도 바라보고 하니, 잔잔한 기쁨이 밀려왔다. 시간이 잠깐 멈췄으면... 하고 생각도 했고, 태교여행의 참 의미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항간에 태교여행은 순 상술이라며 비웃는 사람들이 있다고도 하고 나도 태교여행은 태아를 위해 무언가 교육적이거나 문화적인 영감을 얻는다던가 하는 특정한 행동을 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 여행 와서 느껴보니 산모가 행복해지기 위한 여행이 100% 맞다. (그들 말에 따르면 '임신 핑계 대고 여자들이 신나게 놀고 싶어서 가는 여행'이라는데, 여자들이 신나게 놀면서 행복해지려고 가는 거 맞아! 잘 짚었어!) 결국 산모가 즐겁고 편안함을 느끼면 태아에게도 오롯이 전달되기에.
바쁜 일정에 지쳤던 예비아빠에게도 쉼표가, 초기의 각종 검사와 입덧을 이겨낸 예비엄마인 나에게도 큰 휴식이 되었던 이번 태교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달콤했다. 태교여행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해 준 이번 제주도 여행은 엄마가 웃고 쉬는 모습을 태아가 고스란히 느끼는 시간이었기에 이 여행은 분명 ‘태교’라 불릴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한 번 다짐했다. 앞으로도 나를 먼저 사랑하겠다고. 그게 가장 좋은 태교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