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임신확인서를 받고 거주지 보건소에 가면 임산부 배지라는 분홍색의 동그란 배지를 받는다. 이 배지를 가방에 매고 다니면, '저 임산부예요.'라고 간접적으로 말하고 다니는 거라 버스나 지하철에서 운이 좋으면 자리 양보를 받기도 하고 밖에서 불시의 사고가 나서 내가 기절하더라도 임산부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는 장점들이 있다. 나도 이 임산부 배지를 받았는데, 가방 깊숙이 넣어두고는 그때그때 꺼냈다 뺐다 한다. 나는 이 임산부 배지가 왜 이렇게 낯간지럽고 민망한지 모르겠다. 배가 많이 불러서 임산부임이 티 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내가 임산부라는 걸 몰랐으면 하는데, 이 배지로 인해 공개하고 싶지 않은 내 개인정보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거 같달까.
암이나 불치병에 걸리든, 공황장애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든 그 사람의 입을 통해 그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는 겉으로 보기엔 전혀 티 나지 않는다. 근데 왜 임산부는 본인이 임산부란 사실을 이 동그란 배지를 통해 드러내고 다녀야 할까. (나도 안다! 임신은 질병이 아니라는 것을!) 임신을 포함한 나의 어떤 몸의 상태에 대해 미리 불특정다수에게 알리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썩 유쾌하지 않다.
사람들이 생각하길 임산부는 배불러야 힘든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만삭을 제외하고는 임신 초기가 가장 힘들 때다. 입덧으로 속은 안 좋고 미열로 식은땀도 나고 현기증도 나는, 겉보기엔 그냥 건강한 일반여성이지만 속은 아주 만신창이다. 나도 평소에는 천국의 계단도 가뿐히 탈 정도로 열심히 운동했던 사람인데 임신 후 지하철의 끝도 없는 높은 계단을 볼 때면 마치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기 전 사람처럼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 천천히 올라야 한다. 이런 겉으론 티도 안나는 임신초기에 가장 유용한 것이 임산부 배지긴 하다.
속이 안 좋아 너무 힘든 임신 10주 무렵,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동여매며 지하철을 기다렸다. 꼭 자리에 앉겠노라 다짐하며 일부러 임산부석이 있는 지하철 칸에 올랐다. 분홍빛이 가득한 임산부석에는 아니나 다를까 한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혹시나 배지가 안보일까 최대한 잘 보이게 세팅하고 앞에 서있었는데 결국 끝까지 자리를 양보받지 못했다. 순간 내가 뭐 하는 건가, 싶어서 기분이 가라앉았다. 입덧으로 뒤틀린 속보다, 비참함에 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차라리 내가 임산부라는 걸 사람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배려받지 않았다면 당연히 아무렇지도 않았을 텐데, 임산부가 임산부석에 앉기 위해서도 이렇게 발버둥 쳐야 하다니 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임산부 배지를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그렇다. 나는, 양보의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었던 것이다. 몇 번 내 모습을 회피하고 양보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상처를 받았고, 차라리 임산부가 아닌 척하는 게 덜 아플 것 같아서, 아예 배지를 보여주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내가 먼저 내 감정을 보호하려고, 기대도, 부탁도 접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인식을 바꾸려고 노력하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외면당하는 게 나의 잘못은 아니라는 걸. 도움을 요청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그때 그 사람들의 침묵보다, 내가 나 스스로의 상태를 부정하고 지우려 했던 시간이 더 아팠다는 걸. 이제는 스스로를 감추지 않는 연습을 하려 한다.
모두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지금도 이 순간순간을 잘 살아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