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보고 싶은 선생님!
그동안 편안하셨는지요?
지난 주말은 우리 모교에서 개교 50주년 기념식과 총동창회 체육대회가 있었어요.
교련을 가르치신 김 00 선생님, 생물을 가르치신 허 00 선생님 등 그분들을 보니 그때 같이 근무하신 선생님이 더 생각났어요. 선생님도 살아계셨더라면 우리 동기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갑자기 울컥했어요.
얼마 전 ‘About time’이란 영화를 우리 반 학생들과 함께 보았어요. 시간 여행을 해서 자신이 되돌리고 싶은 시간대로 다시 돌아가서 새로운 인생을 잠깐씩 사는 것인데, 제가 인생을 다시 되돌리고 싶다면 고3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인연은 또 다른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이 또다시 돌아서 저에게로 온다.’라는 사실 선생님은 예전부터 아셨지요?
며칠 전에는 초임 때 제자가 명퇴했다며 물어물어 전화도 왔고, 해마다 스승의 날과 연말쯤이면 연락 오는 제자들의 전화를 받으면 불현듯 선생님이 더 생각납니다. 제가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선생님이 되었고, 제가 가르친 제자 중에서 세 명이 저랑 같은 과목의 선생님이 되어 교단에 있어요. 그중에서도 숙희는 담임도 안 했는데 저를 무척 따르고 다른 곳으로 진학해서도 종종 편지를 보내주더니 나중에 선생님이 되었는데, 외고에 간 저의 둘째를 가르쳐 주었으니, 이 인연은 선생님 – 나 – 숙희 - 우리 딸 4 세대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정말로 아름다운 인연인 것 같아요.
선생님!
나의 삶에 가장 영향을 주신 분은 살아오시면서 보여주셨던 삶, 인생 자체가 교훈이셨던 벌써 오래 전 하늘나라로 가신 친정아버님, 그리고 불꽃같은 정열의 화신으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 년 동안 온 마음으로 쏟아부어 주시고 젊으신 나이에 하늘나라로 가신 선생님이십니다.
우리 81학번은 격변기의 시간을 보낸 세대이지요.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예비고사, 본 고사 폐지되고 처음으로 학력고사가 등장했고, 학력고사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정원제가 실시된 첫 세대이지요. 어수선한 시절 선생님과의 첫 만남은 오래도록 제 뇌리에 기억되어 있지요.
처음 조례 때 선생님이 하신 첫 말씀.
"내 나라가, 국적이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나라에 이민 가서 살 수 있고 국적도 바꿀 수 있지만, 모교는 바꿀 수 없고 나의 19세 시절 고3은 영원히 다시 채색할 수도 없고 되돌아오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해 주셨지요. 시간의 소중함. 특히 지금 이 순간이 모여 나를 만든다며 강조해 주셨지요. 우리 집 화장실 안쪽 문에 코팅된 글귀가 있어요. 항상 조종례 시간에 수도 없이 선생님께서 강조해 주신 말씀이지요.
‘기차가 굴속을 지나간다고 해서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패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 실패를 경험 삼아 발전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며 절망한다.’
-영원한 스승 고3 담임 故 박운학 선생님 말씀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며 세월, 인생의 소중함, 성실과 열정, 절망하지 않는 용기를 우리에게 심어 주신 말씀이지요.
선생님!
무엇보다도 가장 생각나는 것은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열강 하시던 모습이지요. 앞자리의 아이들은 연신 침을 닦아가며 선생님을 쳐다보며 필기하기 바빴지요. 윤리를 가르쳐 주셨는데 해박하고 체계적인 수업으로 우리를 매료시켰지요. 덕분에 고 3이었지만 니체, 릴케, 루 사로메, 전혜린의 책을 읽는 것이 우리 반에 유행처럼 열병처럼 번져갔지요.
특히 천재적인 열정과 광기에 가까운 치열함이 있는 전혜린은 저를 사로잡았지요. 그녀가 번역한 책 ‘생의 한가운데 ’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편소설이 되었고, 그녀의 수필집 제가 아끼는 조그만 손 때 묻은 문고판 책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는 두고두고 읽었지요. 또한 정치 경제는 얼마나 쉽게 예를 들어가며 재미있게 가르쳐 주셨는지요.
선생님!
생각나세요? 선생님께서는 저녁 야간 자습시간마다 어려운 환경의 마리스타 야간 학교 학생들을 가르치시고 오토바이 소리와 함께 나타나시면 우리는 “쉿! 조용! 하마 떴다.(몸집이 크셨음)” 하며 소란스럽게 떠들다가도 선생님의 등장에 맞추어 쥐 죽은 듯이 조용한 척했지요. 선생님은 여름 방학 합숙, 자율 학습은 물론 공휴일, 비 오는 추석날에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실에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신 열정 그 자체였지요.
여름방학 마치고 제가 갑자기 다리가 아파서 정형외과와 다른 병원을 다니다가 나중에 피부과 의원에서 찾아낸 대상포진, 신경을 따라오는 다리 통증을 참을 수 없어서 입원도 하고 결국 4주간 결석을 했었지요.
결석 후 처음 등교한 날 야간 자습을 마치고 선생님께서는 집까지 오토바이로 태워다 주셨지요. 제가 선생님 등 뒤에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갈 때, 얼마나 많은 질투와 선망의 시선을 느꼈는지 선생님은 짐작도 못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때 제 기분은 어떠했을지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에요.
그렇게 열정의 일 년을 보내고 우리가 대학생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께서 갑자기 투병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또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어요. 장례식 날 장지에 갔을 때 너무 젊으신 선생님께서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이제 제법 배가 부른 젊으신 사모님의 모습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아서 친구들과 더 서럽게 울었는지 몰라요. 어쩌면 선생님께서 일찍 하늘나라로 가시기 때문에 그렇게 열정적으로 서둘러 우리들에게 선생님의 영혼을 마구마구 온통 불어넣어 주셨는지도 모른다고 친구들과 이야기했지요.
시간이 흘러 저는 어느덧 40년 차 교사가 되었고 많은 제자들 속에 선생님이 된 제자도 있고 그 인연은 세월과 함께 이어졌지요. 마음속에 항상 부담이 되면서도 저를 일깨워주시는 선생님의 말씀들. 저의 멘토이신 선생님을 닮아가려고 노력해 보지만 선생님의 그늘도 못 따라가는 것 같아 부끄럽지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고 알게 된 것은 ‘선생님이 내게 베풀어 주신 사랑 이상으로 나도 내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하나하나 베풀어주어야겠다. 그것이 선생님께서 바라시는 일이고 또한 선생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란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선생님!
하늘나라에서도 혹시 철학 강의를 하시지 않을까요? 워낙 재미있고 인기 있는 강의라서 구름처럼 사람들이 모였을 것 같아요.
선생님!
이 글이 선생님께 전해진다면 다시 한번 성실과 열정을 몸소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두서없는 글 이만 줄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하루 엮어 가시길 기원드립니다.
2024년 10월 20일
1981년 2월에 졸업한 3-4반 제자 壬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