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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아 Oct 24. 2024

제14화. 나는 왜 전과를 하였나?

  85년 경북 일번지 학교에 첫 발령을 받고 내가 꿈꾸던 능력 있고 멋있고 사랑이 많은 영어 교사로서 다짐을 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아직도 3월 2일 J중학교 조례대에서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떨며 인사말을 한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월요일마다 전체 조례대에 악대 부원들이 단복을 입고 관악기 연주를 ‘빰빠라밤 빰빠밤~ 빰빠라밤 빰빠밤~ ’하면 교장 선생님이 등장하셨다. 

  서울대를 나온 권위적인 교장 선생님은 학력을 무척 강조해서 아침 방송 수업에다가 정규 수업 외에 보충 수업 그리고 밤 10시까지 중학생들에게 모두 야간자습을 시켰다. 학생들은 중간고사 기말고사 외에 월례고사, 주초고사도 쳤고, 소풍 가서도 영어 단어장을 들고 가도록 했다. 그 당시 학생들은 68명 정도가 한 반이었고, 매 시험 후 뒤편 환경 게시판에 석차가 적힌 일람표가 붙었다. 요즘 같으면 인권 침해에 개인 정보에 난리가 날 만한 일이었다.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잠이 깨어서 오늘 수업할 교재를 보고 또 보았다. 국립대이지만 나는 영어교육학과 2기여서 선배도 거의 없었고 교장 선생님은 새내기가 어떻게 경북 1번지 학교에 올 수 있냐며 수석 졸업 증명서를 떼어 오라고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학과장님은 그런 증명서는 없다며 대신 우리 학과 1번부터 52번까지 석차가 나열된 전체 성적 일람표를 떼어 주셔서, 내 이름에 줄을 그어서 교장 선생님께 제출했다. 

  그 당시 교육 악법에 내가 서명을 했는데 교장 선생님께서 친정아버지와 주례하신 교수님께 수시로 전화를 해서 강압적인 태도로 괴롭혔다. 학력을 워낙 강조하다 보니 무조건 열심히 가르치는 것만 연구하고, 본의 아니게 앞반 선생님이 가르치던 반과 영어 성적이 너무 차이 나기도 했다. 처음에는 영어 성적이 뛰어나고 외모가 준수한 학생이 눈에 빨리 들어왔는데 담임을 하다 보니 성실하고 착한 학생이 제일 좋았다.      

  

  2004년 9월 교직 20년, 결혼 17년 차 운 좋게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4주간 여러 가지 교육 방법과 스피킹 훈련을 했지만 나의 한계도 느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시골 학교에서 수업은, 나의 의욕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입시 위주의 교육 현장에서 내가 느낀 답답함과 부조리는 내 혼자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체념도 하며 점점 그런 것에 무디어졌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장애를 지닌 큰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종교적인 집안 환경도 있지만 독서를 하면 할수록 특수교육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특수교육대학원에 입학하여 6번의 방학을 반납하며 배운 특수교사 자격증을 받고서, 2003년부터 전과를 계속 신청했다. 영어 교사도 모자라서 특수 교사로 전과가 되지 않다가 2006년 마음을 비우고 있는데 갑자기 특수교사로 전과가 되었다. 


  특수교사는 내가 하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무한정으로 많다. 가정방문도 많이 가게 되고 본의 아니게 오지랖 넓게 집안 사정도 알게 되니 가족 복지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특수학급은 작은 학교라고 생각된다. 정규 수업 외에 체험학습, 직업교육, 체육활동, 가족지원 등 하려고 하면 끝이 없다. 

  제일 기억나는 일은 신설 특수 학급이라 수학여행 가는 것을 학교에서 반대했을 때 여러 과로 흩어져 있는 학생 6명을 식품과에 모아서 한 곳으로 데려간 일이다. 그때 태어나서 집을 처음으로 떠나 며칠을 보낸 학생도 있었다. 

  어떤 학생 집에 가정 방문을 몇 번 가보니, 생활하기가 너무 불편하게 되어있어 아버님을 설득하여 계단 대신 경사로를 만들고 화장실에 안전바를 설치했다. 노트북을 사 주고 세상과 소통하도록 하고, 물 먹기도 힘들어 정수기를 설치해 주기도 했다.     


  처음 발령받아 간 특수학급이 내가 나올 때 세 학급이 되었다. 운이 좋은지 일 복이 많은지 신설이나 증설 특수학급을 여섯 번이나 하게 되었고, 학급도 새로 꾸미기를 여러 번 하였다. 영어 교사는 나이가 많아지면 아무래도 최신 교수법이나 발음도 서툴러지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은 다른 곳에서도 영어를 다양한 방법으로 배울 수 있다. 

  하지만 특수교사는 연륜이 묻어날수록 자신감도 생기고 그 아이에게 맞는 나만의 교수법을 적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매일 조금씩 자라는 것을 보면 희열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성장할 때 나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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