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아 Nov 09. 2024

제16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할머니께! 

그동안 하늘나라에서 편안하셨는지요? 

할머니가 안 계신 이곳은 코로나 이후 일상이 많이 변해버렸고 사람들은 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계절은 바뀌었지만 가을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기후도 이상해요. 그래도 우리는 할머니 덕분에 온 가족이 건강하게 자기 맡은 바 일을 하며 잘 지내고 있어요. 

다음 주 토요일에 할머니 산소에 상석을 놓는다고 해요. 대소가 어른들과 후손들이 모여서 할머니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날이 될 거예요.   

  

할머니! 

지금도 하늘나라에서도 새벽마다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지요?

지나고 보니 제일 아쉬운 것은 우리 집에 오시고 할머니랑 한 번도 여행을 간 적이 없었어요. 

할머니께서 오랫동안 간병해 주셨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고향 봉화에 홀로 계셨던 할머니!     


할머니! 

언제 우리 집에 오셨는지 생각나나요? 

어느 날부터 전화 통화를 하는데 차츰 말씀을 어눌하게 하시고, 대소가의 생신이며 제삿날이며 그렇게 좋던 총기가 사라지고, 상황에 안 맞는 말씀을 하실 무렵 우리 집에 오시게 되었지요. 

대화를 하는데 “아유 저거, 저거~”라고 계속 말씀은 하고 싶어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고, 막내가 “할머니 이거 찾는 거야? 아니면 저것, 아~ 저기 있는 것?” 갖가지 물건을 앞에 가져다주어도 아니라고 하시고, 당신은 얼마나 답답하실까? 

도저히 생각하다가 안 되어서 할머니 성함부터 우리 집 주소, 전화번호, 좋아하는 음식, 물건 등을 단어로 써서 가르치게 되었지요. 우리 아이들이 증조할머니 기억력이 자꾸 사라진다며 스케치북에 빨간 글씨로 글자를 크게 써서 매일 몇 단어씩 가르쳐 드리니, 그나마 단어를 넘기며 할머니께 원하시는 것을 확인드리니 의사소통이 되었지요. 

할머니께서 제일 좋아하는 단어는 ‘아침마당’, ‘6시 내 고향’과 '아이들 이름'이었어요. 

약 2년 6개월 정도 서로에게 차츰 익숙해지며 아이들과 재미있게 생활했는데, 어느 날 시누이랑 벚꽃 구경을 갔다가 계단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쇄골이 부러져서 입원하시게 되었지요. 그 길로 할머니께서는 결국 5년 동안 병원에 계시다가 몇 해 전 추석 며칠 앞두고, 우연이겠지만 할머니 생신날에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할머니!

어린 세 아이 키우며 직장 다니느라 퇴근해서는 그저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종알종알 대는 이야기 듣고 집안일에 마음이 바빴지요. 

할머니께서 시골 계시다가 새로운 환경에 아는 사람도 없는 아파트에서 하루 종일 우리를 기다리며 창밖을 보며 얼마나 지루하시고 힘드셨을까? 

그때는 제가 철이 없어 미처 생각을 못 했어요.

처음에는 밥솥에 밥과 냉장고의 반찬을 꺼내 드셨는데, 나중에 밥솥에 밥을 꺼내는 것도 힘들어하셔서 식탁에 미리 밥과 반찬을 덜어 놓고 가면 분명 차가웠을 텐데... 직장 다닌다는 핑계로 반찬도 변변히 못해 놓고 상위에 반찬 몇 개만 달랑 놓고 훌쩍 출근해 버리면 점심을 달게 맛있게 드셨다며 “난 좋데이! 난 괜찮데이” “맛있게 잘 먹었데이!” 그 말씀만 하셨지요.

걱정하지 말라며 일부러 따뜻한 말씀해 주신 사랑이 깊으신 분...

할머니의 인자한 미소와 할머니께서 하시는 유일한 세 말씀

 “고맙다”, “맛있다”, “사랑해”

 하시며 넉넉한 인품으로 우리들을 감싸주시고 격려해 주셨지요.      


할머니! 세월이 지나고 날이 지날수록 할머니 사랑을 더 깨달아요. 할머니께서 계셨던 남쪽 방과 곳곳에 할머니의 흔적이 오랫동안 우리 집에 남아있어요. 남쪽 베란다 창밖의 풍경을 정신없이 쳐다볼 때 “할머니 무엇을 그렇게 보세요?”라고 물으면 수줍은 아가씨같이 살며시 미소 짓는 모습, 쇄골이 부러져서 아프실 때도, 입원해서 대상포진으로 그렇게 고통이 심해도 절대로 한 번도 아프다고 말씀 안 하시던 할머니! 

매주 두세 번 남편이랑 할머니 병문안을 가면 그렇게 해맑게 웃어주시던 고우신 할머니! 간호사들이 모두 좋아하고 “옥매할매는 천사 같은 분”이라고 하셨어요.     


할머니! 

결혼하기 전부터 어머님 이야기 보다 할머니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손자인 남편이 군에 가 있을 그 기간 동안, 어머님도 바쁘셔서 못해 주셨다는데

삼시 세끼 한 번도 잊지 않고 따뜻한 밥을 떠 놓고 기도해 주시던 할머니!

한밤중에라도 먹고 싶은 것 해 주셨고, 시댁 가족들이 봉화를 떠나 영주에 살 때 매 주말마다 갖가지 반찬에 나물을 가지고 집으로 날라 주시던 정 많고 고마운 할머니이셨지요. 

정말로 할머니는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나무 같은 분이셨어요. 

젊으셨을 때부터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도 원망이나 불평 한마디 없이 넉넉한 사랑을 주셨고 미소를 보여주며 인내하고 사시며 무언의 행동으로 나를 가르쳐 주셨어요. 할아버지 병간호도 홀로 오랫동안 하시며 이부자리며 모든 공간을 유리알처럼 깨끗하게 하셨어요. 

주말이나 설날, 추석 때 시골 가면 제일 먼저 일어나서 궂은일 미리 다 해 놓으시고 더 자라며 손짓하시던 모습. 내 마음속으로 ‘나도 할머니처럼 저렇게 고운 마음씨를 지니며 늙어야지...’ 다짐하게 만들며 내 삶의 모델이 되어 주신 분이셨어요.     


할머니!

장례식이 끝난 몇 주 후 고향에 가보니, 사람 마음이란 참 이상해서 병원에 계셔도 할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는 고향집에 가면 마음이 따뜻했는데, 얼마 전에 가 본 고향 집은 정말로 이상하게 쓸쓸했어요. 

할머니께서 가꾸시던 앞마당의 골담초, 이팝나무, 주목, 모란은 그 자리에 그대로 아름답게 말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작년 식목일 날 앞마당에 할머니의 고운 성품을 닮은 매화나무와 배롱나무를 새로 심었지요. 몇 년의 세월이 지나면 앞마당 남쪽에는 그 나무들이 자라서 할머니처럼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겠지요.     


할머니!

다음 주 토요일 모두 할머니 산소에 모이니까 할머니께서도 하늘나라에서 우리들 모습을 보시고 손 흔들어 주시고, 편안히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할머니! 

미안하고,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철없던 손부 드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