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경계를 잠식하는 울음에 관한 단상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공기의 응결체였다. 낮의 정점에서 쏟아지는 태양 광선을 맞아 증발한 대지의 숨결이, 얇은 막으로 둘러싸인 공명실 속에서 ‘쓰르르르릉’이라는 기묘한 기하학으로 응고되는 순간. 매미의 울음은 단순한 생물학적 신호를 초월하여, 우주의 진동을 닮은 소리라는 이름의 조각상이었다. 낮의 포화 상태를 찢어발기며, 밤의 침묵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인간은 이를 ‘소음’이라 부르며 귀를 틀어막는다. 아, 편협한 청각의 포로들! 그대들은 과연 무엇을 듣고자 하는가? 매미는 시간의 해부학자다. 단단한 외피 아래 숨은 날카로운 흡관(吸管)으로 계절의 정맥을 찔러, 여름이라는 액체를 빨아올린다. 그 에너지의 변환식이 바로 그 지독한 울음이다. ‘미미미미…’ 하는 소리는 탄식이 아니라, 생명의 핵융합을 알리는 고에너지 입자의 폭발이다. 그 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고대의 땅속 유년기를 거쳐 단 며칠의 빛 속으로 폭발한 존재의, 시간에 대한 복수가 깃들어 있음을.
밤이면 더욱 치밀해진다. 그 울음은 암흑 속에서 빛의 유령을 부르는 주문이다. 인공조명에 길들여진 인간의 시계는 ‘자정’을 고집하나, 매미의 생체시계는 오로지 태양의 잔영과 달의 중력에 맞춰진다. 그들의 울음소리는 낮과 밤의 경계를 녹여내는 산성이다. ‘밤’이라는 인간의 편리한 분류는,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르는 검은 날개 앞에 무너진다. 그것은 어둠 속의 광명 선언이요, 침묵에 대한 폭력적 침략이다. “여기, 빛의 기억이 살아 숨 쉰다!”라고 외치는, 존재의 증명.
그 소리는 언어의 유희장이다. ‘쓰이이익-’은 공기의 마찰이 낳은 추상화요, ‘지이이잉-’은 날개 진동의 미적분학이다. 한 마리의 솔로가 이끄는 ‘쯔르르르륵-’은 즉흥 재즈의 변주처럼 퍼지다가, 갑자기 수백 마리의 코러스가 합류하여 ‘와아아아앙-’이라는 거대한 소리의 지진을 일으킨다. 그 소음의 파도는 인간의 뇌리를 때리며, 질서와 무질서, 조화와 불협화음의 경계가 허구임을 일깨운다. 그것은 자연의 카오스 오케스트라, 생명의 원초적 교향악이다.
그러나 그 열정의 이면에는 숙명적 단상(短喪)이 깔렸다. 땅속에서 수년을 기다린 끝에 피울 수 있는, 고작 며칠 혹은 몇 주의 노래. 매미의 울음은 그 자체로 시간에 대한 처절한 항변이다. ‘울음’(鳴)이 곧 ‘운명’(運命)인 존재의 비애. 그들은 알고 있는가? 자신들의 포효가 인간에게는 단지 ‘시끄러움’으로 각인된다는 것을.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생의 모든 것을 압축하여, 공기를 진동시키는 일이 곧 존재의 전부이기에.
그러니 다음번 그 소리가 창문을 두드릴 때, 귀를 막지 말라. 잠깐 멈춰 서서, 그 공기의 칼날이 시간의 허리를 가르는 소리를 들어 보라. 그것은 단순한 곤충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지구가 내뱉는 생명력의 원초적 포효다. 밤을 낮으로, 침묵을 소음으로 뒤집는 그 파괴적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조용히, 얼마나 조심스럽게 시간의 가장자리를 기어가는지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매미는 울부짖는다. 자신의 존재를, 그리고 우리의 망각을 향해. 그것은 자연의 냉소이자, 가장 격렬한 생의 찬가다.
그들은 결코 조용해지지 않을 것이다. 태양이 떠오르든, 달이 중천에 걸리든, 자신들의 시간이 흐르는 한. 그 울음은 곧 그들의 숨결이요, 그 숨결은 곧 그들의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시간이 얼마나 조용히 스며들어가는지 깨닫는다. 매미의 울음은 경고다. 울어라, 존재여. 울지 못할 때가 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