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힘이 되어 주지 못해서 인 것 같습니다. '가족 모두 힘든 상황인데 나까지 힘들다 보태면 안 되니 절대 내색하지 말아야 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보다는 친한 친구에게 "나 사실 너무 힘들어"라고 토로하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가족 모두 저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인지 겉모습만 가족인 알맹이 없는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에서 저는 착한 딸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친척분들과 아버지의 지인분 등등 어른들이 저에게 항상 "집안일에 어머니 간병도 하고 착한 딸이네" 칭찬해 주시면서 "너밖에 할 사람이 없다", "자식으로서 잘해야 한다" 등등 당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가족 모두 힘든 상황이고 착한 딸이 되어야만 하고 잘해야 한다는 것을 당부해 주시지 않아도 너무 잘 알다 보니 힘든 내색 하지 않으려 겨우 버티고있던 때라 당부의 말씀조차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한계에 다다른 어느 날 저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사춘기 때문이라 이해하셨습니다. 차라리 잘 된 것 같았습니다. 사춘기라 그런 것으로 아시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 학생인 자식들을 위해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하다 느끼신 건지 여자친구분을 소개해주시면서 집안일을 도와주시기도 했는데 감사한 마음보다는 불편하고 괴로웠습니다. 아무리 아프신 어머니로 힘드시더라도 여자친구를 자식들에게 소개해 주신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상황을 친척분들과 아버지의 지인분들은 이해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께서는 당연히 모르시지만 어머니께서 이 사실을 아실 때 느끼실 고통을 제가 대신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다양한 가족형태와 고정된 역할이 아닌 유연한 역할이 가능한데 아버지의 시대에는 가부장 적인 환경에서 고정된 역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셔서이제는 왜 그러셨는지 짐작할 수 있지만.. 그래도 집안 공기마저 어둡고 답답했던 항상 부정적이던 그 시간들을 밖에서 각자 해소하기보다가족모두서로 힘이 되어 줄 수 있도록 솔직하게 힘듦을 토로하고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정신적으로 충분히 지지해 주었다면 덜 힘들지 않았을까..
저는 착한 딸이 되어야만 한다고 항상 자신을 엄격하게 몰아붙였습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어른들의 칭찬 때문이었을까요?.. 가족을 유지하려면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착한 딸이 되는 것 밖에 없어서였을까요?.. 학생 때 새로 사귀게 된 친구가 저의 얼굴을 몰래 장난으로 찍고는 제 표정이 억울해 보인다고 놀렸는데 그제야 제가 항상 억울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제 자신을 항상 몰아붙이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영케어러 분들은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정말 현명하신 분들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서로 힘듦을 공감하고 정보교류도 하면 집안 공기마저 어둡고 답답했던 항상 부정적이던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이제 착한 딸보다는 행복한 딸로 살고 싶습니다. 가족 구성원 모두 본인의 인생을 행복하게 즐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