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
맛집 거리 한편, 노란 간판의 저가 커피점이 있었다. 크지 않은 매장이지만 늘 손님이 많았다. 오늘도 점심을 마친 네모와 세모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세모가 당당하게 주문했다.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세모가 말했다. "네모야, 너 혹시 디카페인 커피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 얼마 전에 기사에서 읽었는데 말이야. 커피 원두에서 카페인을 제거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
네모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들었다. 세모는 흥이 오른 듯 말을 이어갔다.
"보통 이산화탄소나 물을 이용해서 고압 처리하는 방식이 많대. 특히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이용하면 카페인을 아주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지. 고압으로 액체 상태와 기체 상태를 오가는 이산화탄소를 활용해서 말이야. 기계적 원리를 잘 활용한 거지."
네모는 미소를 지었다. "흥미롭네. 그런데 네가 모르는 것도 있어. 사실 디카페인 공정은 기계적 원리뿐만 아니라 화학적으로도 아주 섬세한 과정이야." 세모는 눈을 반짝였다. "그래? 뭐가 있는데?"
네모는 천천히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가 용매 추출법이야. 메틸렌 클로라이드나 에틸아세테이트 같은 유기용매를 사용해서 카페인을 선택적으로 녹여 제거하는 방식이지. 화학적 친화성을 활용해서 카페인만 골라내는 거야." 세모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그건 좀 위험하지 않아? 유기용매라니, 몸에 해로운 거 아냐?" 네모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모든 공정이 엄격하게 관리돼. 용매는 마지막에 완전히 제거되고, 남지 않도록 정제 과정이 여러 번 거쳐지지. 그리고 사실 물을 이용하는 ‘스위스 워터 프로세스’도 있는데, 여기는 활성탄 필터를 이용해서 카페인을 걸러내. 이건 순전히 물과 화학적 친화성 원리로 작동하는 거지."
세모는 당황한 듯 컵을 만지작거렸다. 네모는 한숨을 쉬며 웃었다. "내가 화학을 전공했잖아, 세모야. 네가 기계적 원리를 말할 때부터 알고 있었어. 그냥 재미있게 듣고 있었지."
세모는 민망한 듯 고개를 긁적였다. 손에 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왠지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뜨거운 커피를 들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네모가 덧붙였다. "뭐, 아는 걸 나누는 건 좋은 일이야. 하지만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는 말라고. 세상엔 늘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있거든." 세모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다음엔 그냥 궁금한 걸 물어보는 걸로 할게."
두 사람은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여전히 차가웠다. 다만 세모의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을 뿐이었다.
작가의 생각: 어제 점심 후 마신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디카페인이었어요. 가격이 좀 더 비싼 것에 의문이 생겨 얘기를 나누었죠. 잠시 후 우리의 얘기는 어느새 소머리국밥으로 흘러가더군요. 곤지암 소머리국밥이 최고다. 아니다 마장동이 최고다. 여자 못지 않게 남자들의 수다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꽤나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