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학번의 인생을 특이하게 만든 첫 번째 변곡점은 그들의 청소년기 시작인 중학교 1학년 때 찾아온 교복자율화와 두발자유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두발자유화는 82년 바로 실시되었으나 교복자율화는 교복업자들의 생계를 고려해 1년의 유예기간을 두어 83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88학번들이 중학교 1학년 때엔 마치 일본만화에 나오는 청소년처럼 깜장 옛날 교복에 머리는 기른 특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교복자율화는 단순히 교복을 입고 안 입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조다쉬와 나이키로 대표 되어지는 이른바 유명 메이커의 세례를 처음으로 이 세대들에게 주었다는데에 있다.
물론 이들이 국민학교 시절 김민제 아동복, 엘덴 아동복 같은 고가의 아동복 시장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당시 정말 부자집 엄마들의 취향에 의해 입혀진 옷이지 아직 열살 안팍의 어린이가 자발적인 패션감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국민학교 시절 고급 아동복을 입었더라도 중학교 진학부터 6년동안의 청소년기에 검정교복을 입고 다닌다면 그들의 패션감각은 퇴화할 수 밖에 없다. 한창 이성에 눈뜨기 시작하고 외모에 관심을 가져야 할 골든타임을 암흑기로 보냈기 때문이다. 70년대 인기영화인 고교얄개에서 이승현과 강주희가 주말에 사복차림으로 만나는 장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사복이지만 교복과 큰 차이가 없는 획일화된 모습이 영화를 통해 보여진다. 하지만 88학번들은 달랐다. 그들의 질풍노도의 시기에 교복자율화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외적인 변화도 있었다. 제2 베이비붐 세대 정점의 시기에 한 해 100만명 이상 출생한 세대가 바로 이 세대다. 그러다 보니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대도시 아파트촌엔 신생 중학교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기존의 남중, 여중이 아닌 남녀공학 중학교가 급격히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본격화되는 사춘기 시절 남녀공학 중학교를 다닌 첫 세대가 바로 이 세대였다. 아쉽게 합반은 아니고 남녀 분반이었지만 그래도 중학교에서도 이성친구와의 접점을 유지한다는 것만으로도 남학생 여학생 모두에게 외모에 신경 쓸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국민학교 때 존재감이 없던 여학생이 중학교 진학 이 후 2차성징이 시작되며 갑자기 미모가 만개 한다던가, 꼬찔찔 흘리며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1년에 키가 10센티 이상 커서 중학교 2학면이 돼서 봤더니 미소년으로 바뀌고 있더란 사실들은 이 시기가 얼마나 한 인간의 일생에서 외모적으로 중요한 시점이란 것을 보여주는 사실들이다.
1982년을 기점으로 대기업 의류회사들도 청소년 브랜드를 본격 출시하기 시작했다. 삼성물산 에스에스패션의 챌린저, 빼빼로네, 제일모직의 그린에이지, 코오롱 패션의 저스트가 대표적인 브랜드들이고 청바지는 써지오바렌테가 조다쉬와 더불어 투탑을 이루며 리바이스, Lee, 나중에 GUESS가 평정하기 전까지 인기를 끌었다. 운동화는 나이키의 독주에 국내브랜드인 프로스펙스가 도전장을 내밀었고 아식스, 아디다스 등도 틈새시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다. 1982년 기준 조다쉬 청바지는 24,000원 나이키 운동화는 22,0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른 브랜드의 옷과 운동화들도 대략 이 가격을 기준점으로 프라이싱 전략을 취했던 것 같다. 교복자율화 이전 보통 청소년들의 운동화와 옷들이 5,000원도 안 했던걸 감안하면 엄청난 가격상승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교복처럼 한 벌만 있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벌이 있어야 하고 그것도 계절별로 달리 장착되어야 해서 40 여년 전 학부모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국민학교때는 자신의 선택보다는 엄마가 입혀 주신 옷이라 꼭 유명브랜드가 아니어도 친구와 비교를 심하게 하거나 그것에 크게 가치를 두지 않았지만 한창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달랐다. 60명 한 반에 한 두 명이면 모르지만 조다쉬와 나이키는 한 반에 7,8명은 물론 지역에 따라 열 명이 넘어가는 빈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어서 80년대 청소년기엔 진정한 머스트해브아이템이 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대한민국 경제력 대비 청소년 의복비용이 가계소비에서 급격히 증가하는 것을 그래도 어느정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물론 중산층 이상에 한 해서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교복,두발 자유화와 같은 시기에 시행된 과외금지가 아닐까 한다. 당시 중고등학교때 부터 본격적으로 입시과외를 하는 집들이 많았는데 이를 전두환 신군부가 금지하는 바람에 가계소비 중 사교육비가 감소하여 이를 의복비용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 같기도 하다. 과외금지 조치는 1980년에 실시되어 1991년 완전 허용에 까지 10년 이상 이루어졌는데 그 기간 대학생들의 불법과외는 관계기관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느슨한 단속으로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위험수당을 포함하여 과외단가는 꽤 많이 상승했고 이는 80년대 대학생들의 호주머니를 넉넉하게 해주는 효과도 발휘했다. 복 받은 88학번들은 끝물이긴 하나 이 같은 과외단가 인플레를 맛볼 수 있었고 X세대의 선봉장으로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적지 않은 문화비용(유흥비에 좀 더 수렴하는) 지출을 감당할 수도 있었다.
청소년기에 교복자율화를 경험한 첫 세대인 88학번은 세월이 지나면서 옷을 보온이나 편리함 같은 기능으로만 보지 않고 패션으로도 보기 시작한 첫 번째 중년아재들이 된다. 여성들이야 원래 패션에 관심이 많아 꼭 교복자율화 세대가 아니어도 성인이 되면 옷에 민감할 수 밖에 없지만 패션테러리스트가 다수 분포하는 K 아저씨들은 그렇지 않다. 미디어나 SNS에는 유럽 중년들의 멋진 패션이나 바로 옆 일본만 봐도 수염을 멋지게 기른 패셔너블한 중년,노년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들을 부러워 하는 젊은 층들이 댓글들도 많이 본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이미 눈에 띄기 시작하는 50대 이상 아저씨들의 멋진 패션들은 한국에게도 그런 모습들의 중년 아저씨들이 많아 지리란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더 이상 등산복 아웃도어 하나로 캐쥬얼 출근과 주말 등산을 병행하지 않고 TPO에 맞는 패션을 보여줄 수 있는 첫 세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40 여년 전인 1982년 교복자율화로 인해 비롯 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