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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피쿠로스 Aug 16. 2024

6공화국의 시작과 88학번

6공화국의 시작과 88학번

6공화국의 시작과 88학번


우리는 일상의 대화에서나 아니면 미디어를 통해 종종 ‘쌍팔년도에나 있을 법한” 이란 문구를 자주 듣는다. 이 문구는 일반적으로 ‘아주 오래 전에나 있을 법 한’의 의미로 이해가 된다. 하지만 88학번으로 그 시대를 명징하게 기억하는 나는 그 해석을 좀 달리 한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선사시대와 역사시대로 나누고 있다. 문자로 무엇인가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 있는 시기부터가 역사시대고 그 이전인 구석기부터 철기까지의 시기는 역사 이전 이란 의미로 선사(先史)시대, Pre-historic 시대라고 분류하고 있다. 같은 기준으로 본다면 쌍팔년도는 역사시대의 기준으로 가장 먼 옛날이란 의미고 쌍팔년도 보다 더 이 전은 말 그대로 역사 이 전인 선사시대 같은, 어쩌면 현재의 기준으로는 전혀 다른 세상이란 의미로도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자. 먼 옛날을 기준으로 본다면 5공시대도 있고, 새마을 운동시대도 있고, 심지어는 한국전쟁 시기도 있다. 그럼에도 굳이 쌍팔년도를 ‘예전에 그랬었지’라는 대명사의 시대로 일컫는 것은 - 그 발음이 찰지게 입에 붙는다는 점을 떠나서라도- 현재 2024년 삶과의 유사성을 갖춘 시대를 한 덩어리로 놓고 봤을 때에 가장 앞에 있었던 시기라는 인식도 한 몫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에게 1988년은 서울올림픽의 해라는 상징적인 연도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의미는 바로 6공화국의 시작이란 점이다. 일본 정치인들은 물론 일본 중년남성들에게도 필시청 프로그램 중 이덕화 배우의 열연이 돋보이는 드라마 ‘제5공화국’이 있다. 국내에도 당연히 많은 애청자들이 있는데 2005년에 종영한 이 드라마 후속작으로 왜 제 6공화국이 안 나오냐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드라마 제6공화국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대한민국의 6공화국은 1988년에 시작되어 2024년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1948년 제1공화국 수립 이래 1987년 제5공화국 까지 공화국당 평균 존속기간은 8년이 었는데 지금 6공화국은 1988년부터 36년째 진행중이다. 그리고 이는 앞서 얘기한 올림픽을 10연패한 한국 여자양궁 단체와도 같은 엄청난 생존기간이기도 하다.


천만관객을 동원한 영화 1987 때문에 요즘 MZ세대들도 1987년의 엄청났던 민주화 운동의 열풍을 알고 있다. 동시대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비단 1987년 뿐 아니라 1980년 서울의 봄부터 시작해 5공화국 내내 계속된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의 장면 역시 기억한다. 그 시기를 중고등학생으로 보낸 나는 TV 뉴스속에 계속 등장하는 학생들의 ‘데모’하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게 학력고사 보고 대학교 간 저 형,누나 들은 왜 계속 데모만 할까 하는 점이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한 학년 위의 87학번 누나가 있었는데 누나의 신입생 시절은 거듭되는 데모의 연속으로 학교는 자주 휴강을 하곤 했었다. 당시 80년대 엄격한 가부장적 문화에서도 상위 5% 안에는 너끈히 들었을 법한 하드코어 K 꼰대였던 부친께서는 누나의 통금도 저녁 8시로 엄격히 통제하고 있었던 바, 데모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합격의 치트키였던 독서실 그녀와의 애틋한 사연은 모른 채 재수를 하지 않고 당당히 현역으로 입학했던 나에게 부친께서는 입학식날 다시 한 번 주의를 주셨다. “대학가서 데모를 하면 절대 안된다. 너희 누나는 여자라서 아빠말을 잘 따랐지만 넌 남자라 걱정이 된다. 데모는 절대 안되고 데모를 할 바엔 차라리 놀아라” 청개구리는 엄마 개구리가 죽어서야 엄마말을 들었다지만 당시 나는 부친이 50대 초반의 정정하실 때부터 말씀을 잘 듣는 효자가 되기로 결심했는지 당신의 당부에 충실했던 것 같다. 문제는 부친께서는 데모를 하지 말라는데 방점을 두고 하신 말씀이셨으나 나는 그 뒷말인 ‘놀아라’에 좀 더 충실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1988년 여름, 1학년 1학기 성적표를 받아 본 부친께서는 ‘이 놈에게 차라리 데모를 하라고 할걸’ 이라고 말하시며 통한의 한숨을 쉬셨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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