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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진 Sep 23. 2024

남편의 외도를 알아버렸다.

지금의 남편을 25살에 처음 만났고 내게 있어 정식으로 사귄 사람도 남편이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남편은 내 인생의 첫 남자이자 마지막 남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남편의 직업을 존중하다 못해 항상 존경해 왔다. 그래서 그가 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마다 영업을 하다보면 스트레스가 크고 실적으로 인한 압박감이 클 것이라고 생각해서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걱정이 많고 예민한 성격이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찬찬한 성격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긍정적인 성격이어서 나와 다른 모습에 반했던 것이다.

 물론 신혼 초에 갈등도 있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점점 친구 같은 아내와 남편으로서 서로에게 편안한 존재가 되고 있었다.

 제일 불만이었던 가사 일을 도와주지 않는 것도 밖에서는 을이 되어 굽실거려야 하고 회사에서는 실적 압박을 받아야 하며 때로는 주말도 없이 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까 싶어서 더 이상 불만을 갖지 않으려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영업사원은 접대를 해야 하기에 유흥 쪽으로 빠져서 바람을 핀다며 여자 문제가 없는지 항상 조심하라고 조언해 주시는 분들이 있으셨다.

 하지만 난 추호도 이 남자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것을 아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상상조차도 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믿음이 매우 강했다. 

 그냥 그런 얘기를 들을 때 마다 사람들이 영업사원에 대한 편견이 있구나 라는 생각으로 넘겨 버렸다.


 그는 대기업 제약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나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매우 바쁠 때 였는데 어느 날부터 남편은 매일 접대가 잡혀 있어서 나보다 더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그리고 인천지사에서 근무했는데 회사 옆 건물에 생산직 직원을 위한 기숙사가 있다며 그 중 한방이 비워 있는데 술을 많이 마신 날은 기숙사 빈방에서 자고 바로 앞 건물로 출근하면 편하다고 하면서 나에게 외박 허락을 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새벽 3시에 만취가 되어 들어온 날 남편이 울면서

 ‘힘들어. 너무 힘들어. 힘들어’ 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우는데 나도 눈물이 났다.

 그 사람의 슈트와 양말을 벗기고 침대에 눕히고는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연봉을 많이 받는 만큼 자신의 실적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압박 관념과 상사 및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칠까 봐 매달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야 하는 남편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단 한 번도 내게 힘들다는 말과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울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내가 더 많이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애써 대리 불러서 우리 집에 들어왔다가 2~3시간 자고 다시 출근하는 것 보다는 기숙사에서 자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러라고 한 것이다.

 정말 남편을 백프로 신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너무 많은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언제부터 인가 집에 핸드폰을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다.

 왜 가져 오지 않냐고 물어 보니까 하도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고 전화벨만 울리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집에서 만큼은 회사와 관련된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아서 지하 주차장 차에 두고 왔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왜냐하면 나와 같이 있는 주말에도 약국에서 약이 떨어졌다고 전화가 오는 등 벨이 울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전화가 오면 나도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였다.

 어느 일요일이었는데 컴퓨터를 하던 남편이 갑자기 차에 갔다 오겠다고 해서 나갔고 얼마 있다가 집에 다시 들어오는데 남편의 바지에 핸드폰이 있는 것을 보고 오래 간만에 당신 핸드폰을 보자고 했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서 나도 모르게

 ‘혹시 당신 바람 펴?’ 라고 물었더니


 그 사람이 집 밖으로 급하게 나가더니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 같았고 나는 뒤를 쫒아갔다.

 일단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고 우리는 마주 앉아 있었다.

 통화한 사람의 전화번호를 데라고 했더니 순순히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난 그 번호에 계속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화가 너무 난 나머지 계속 전화를 받지 않고 있는 내연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내가 당신에 대해 낱낱이 조사하기 전에 이 전화를 꼭 받아’ 라고 보냈고


드디어 연결이 되었다.

 ‘여보세요?’

 ‘언니, 안녕하세요. 저 선배 대학 동아리 후배 누구에요. 그 때 뵙고 같이 밥 먹었었는데 기억하세요?’ 라고 하는 동시에

 ‘너니? 아니...너 내 결혼식에 왔었지?

 ‘네’

 ‘근데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어떻게 이 사람하고 바람을 피울 수 있냐고!’ 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전화 속 여자 후배가 눈물을 터뜨렸고 갑자기 이 여자 후배의 어머니가 전화를 낚아채서 나에게 

 ‘너 누구야? 누군데 결혼도 안한 아가씨한테 감히 바람을 폈다고 하는 거야! 너네 고소할거야!’ 라고 이성을 잃은 채 고성을 질러댔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자기 딸이 유부남하고 바람을 피웠는데 누가 누구를 고소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더니 눈물을 흘리던 여자 후배가 엄마하고 싸우는 소리가 들렸고 엄마가 가지고 있는 자기 핸드폰을 다시 받아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언니, 사실은요. 방금 전에 오빠가 전화를 해서 나랑 동아리 선, 후배 관계로 몇 번 밥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해 달라고 했어요.

 저는 그 오빠를 결혼식 이후로 한번도 보지 못했고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언니가 전화해도 받지 않았어요. 그런데 언니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보고 전화를 받은 거에요. 꼭 믿어주세요’

 순간 쓰러질 뻔 했다.

 이 남자가 나를 완전히 기만하고 농락하고 있었다.


 ‘알았어. 믿을게, 난 저 사람이 너의 전화번호를 주길래 바람 피는 여자 상대방인 줄 알았어. 그리고 부모님께는 좋게 말씀 드려죠. 일단 끊자’

 난 바람 핀 여자가 누구인지 솔직히 말하라고 했다.

 그 사람은 

 ‘너도 아는 여자야’

 ‘아는 여자 누구?’

 ‘그 때 문자 보낸 여자’

 ‘문자?’

 순간 생각이 났다.


 결혼 준비 중인 남자한테 문자로 ‘선글라스 사러 백화점에 가니까 같이 가줘’ 라고 보냈던 여자.

 초등학교 교사면서 남편과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인데 자기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다며 설명한 그 여자였다.

 난 분명 그 초등학교 동창생이자 여사친인 그 여자한테 이런 연락이 오지 않게 똑바로 행동하라고 했고 남편은 더 이상 전화하지 말라고 하겠다고 약속해서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겼었다.


 그만큼 남편을 신뢰했다.

 그런데 그 여자라니...

 말이 안 나왔다.

 그 여자가 일방적으로 좋아했던 게 아니라 이 남자도 그 여자를 좋아했구나.

 생각해 보니 내가 너무 바보였다.

 그런 문자를 보낼 정도면 이 남자도 어느 정도 틈을 보였으니까 결혼 준비 하는 남자에게 서슴없이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나에게 신혼 초기에 별 이유 없이 결혼반지를 안 끼면 안 되냐고 물었고 그 사람의 자동차에 우리 둘이 찍은 액자가 사라진 것이구나.

 나는 왜 유부남이 대놓고 결혼반지를 끼지 않겠다는 말에 동의한 것이고 우리 커플 사진이 사라진 것을 알고도 별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갔을까?

 바보같이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해도 다 믿어준 것이다. 

 이 사람은 그 때 결혼 전부터 이 여자와 쭉 바람을 폈던 것이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쓰러질 것 같은 내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었다.

 이 사람은 영업사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을 살려 나를 속이고 접대한다는 시간에 외도를 한 것이다.

 신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몇 십년 동안 아빠로부터 갖은 학대를 받아 온 내게 선물이었던 남편은 나를 부정한 것이다.

 연애는 5년 결혼생활도 4년 차인데 약 10년 동안의 세월을 부정 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접대가 있어 늦게 들어 온 날은 사실 이 여자와 만나서 늦게 들어온 것이고 기숙사에서 자고 출근한다는 날은 이 여자와 밤을 보내고 호텔에서 출근한 것이다.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 사람을 백프로 신뢰하고 있었고 그 사람의 직업을 존중해 주었기 때문에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이다.

 너무 충격을 받았다.


 내 인생에서 그 사람은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이 결혼 전부터 바람을 폈고 결혼 생활 내내 그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미칠 것 같았다.

 지금도 느껴지는 그 때의 그 감정을 평생 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점점 분노가 너무 가득해져서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거미줄처럼 나를 휘감고 있었다.

 이 남자는 내 운명의 남자도 아니었고 힘든 삶을 감싸주는 소중한 선물도 아닌 뻔뻔하고 지저분한 남자였던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그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물었다.

 ‘너하고 비슷해’

 ‘그래서 비슷해서 매력이 똑같아서 바람핀거야?’

 이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남자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일단 진정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둘이 마주 앉아 솔직히 얘기해 보자고 했다.

 ‘그 여자 사랑해?’

 ‘...............’

 몇 번을 물으니까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말했다.

 기가 막혔던 나는

 ‘그럼 이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라고 물었고 남편은

 ‘아니. 사랑해’ 라는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그럼, 뭐야? 너네 둘이 사랑하는 사이면 불륜 따위 하지 말고 이혼해서 너희들끼리 사랑하면서 살면 되잖아!

 설레였지? 그 여자와의 만남도 설렜겠지만 나를 속이면서 은밀히 만나는 너희들 관계가 더욱더 애틋해서 더 설레였을거야. 얼마나 재밌었을까?’


 그리고 그래서 요즘 따라 매일 접대가 있다며 늦게 들어온 이유가 의사를 만난 게 아니라 그 여자를 만났던 거야?’

 ‘어’

 ‘집에 데려다 주고?’

 ‘어’

 ‘그럼 그 여자한테 사랑한다고 했니?’

 ‘직접적으로 말할 수 없는 사이니까 이모티콘으로 보내기는 했어’

 ‘그 여자하고 자주 통화 했겠네?’


 ‘어’

 ‘도대체 나를 몇 년 동안 속인거야?’

 ‘몇 개월 전부터 다시 그 여자애한테 전화가 온 거야. 이제부터 연락하지 말라고 할게’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웃었다.

 ‘나 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너 결혼하기 몇 년 전에 나한테 얘기한 것과 똑같잖아!

 그 여자한테서 먼저 전화가 온 거라고 하면 너는 너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 하는 거 같은데 그 전화에 넘어간 너가 더 나쁜 자식이야!“

 ‘그 여자 전화번호 내놔’

 ‘안 돼’


 난 그의 손 안에 있는 핸드폰을 뺏으려고 했고 이 남자는 뺏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그 사람이 한 말로 나는 모든 것을 멈추었다.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끝났지만 이 여자애는 지켜줘야지’

 난 끝내자고 말을 한 적이 없다. 이혼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근데 끝난 사이라고?

 끝내도 내가 끝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여자애는 지켜주고 사랑하는데 그럼 난 뭐야?

 ‘나는 너 팬티나 빨아주고 너 셔츠 다려주고 니가 쳐 먹은 거 설거지 해 주고 화장실 청소해 주는 가사도우미였네!’

 아직도 맴돈다.

 ‘우리는 끝났지만 이 여자애는 지켜줘야지’

 마치 부부의 세계에서 불륜을 저지른 남자가


 ‘사랑에 빠진게 죄는 아니잖아’ 라고 당당하게 내뱉은 그 말 보다 더 심한 말이었다.

 가장 용서할 수 없는 말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우선 안방에 걸려 있는 웨딩사진을 부셔버렸다.

 그리고 남편이 컴퓨터에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을 날짜별로 폴더를 만들어 놓은 것도 다 삭제시켰다.

 이 사람은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했지만 이미 난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힘과 떨리는 손으로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신혼여행가서 찍은 ‘스킨 스쿠버 영상 CD’, ‘패러 글라이딩 영상 CD’ 등을 가위로 다 잘라버렸고 혼인 서약서도 찢어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흥신소에 의뢰해서 그 여자의 전화번호와 근무하는 초등학교와 집 주소와 남편의 직장 모든 것을 알아내서 다 부셔버리고 싶었다.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냥 넘어갔을까 싶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불륜녀인 그 여자에게 복수 하고 싶다.

 나는 몇 번이고 쓰러질 것 같았지만 간신히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마치 쓰러지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난 일단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남편은 컴퓨터를 잘하는 남동생에게 지금 어떻게 하다 보니 모든 사진들이 삭제되었는데 원격으로 복구가 가능하냐고 묻는 것 같았다.


 안방으로 들어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 사람 때문에 그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참아왔던 시댁과의 갈등이 떠올랐다.

 이 사실을 시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거실 쪽으로 나와서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했다.

 시어머니가 전화를 받자마자

 ‘어머니 이 사람 바람 폈어요’ 라고 말했더니

 그게 무슨 소리냐며 아예 믿지를 않는 것이다.


 하기는 워낙 당신의 아들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했기 때문에 아들은 항상 옳다 라고 생각하는 시댁이었다.

 이 사람이 멀쩡한 후배한테 진실을 덮으려고 전화해서 도움을 청했는데 그 집에서 이 사람을 고소할거라고 하니까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고소? 왜? 진짜 고소하면 어떻게?’

 이제야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뭘 어떻게 해요. 법대로 처벌 받겠죠’

 나보고 일단 전화를 끊고 아들과 통화를 해 보겠다고 했다.


 효자인 이 남자가 얼마나 창피할까? 얼마나 난감할까? 라는 생각으로 둘의 전화통화 내용을 들었는데 나한테 했던 말과는 다르게 그냥 친구 사이고 몇 번 저녁 먹은 것이 다라며 바람폈다는 것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참으로 비겁한 사람이었다.

 바로 옆에 와이프가 있는데 와이프한테 한 말과는 달리 자신은 결백하다고 말하는 그가 참 뻔뻔스러웠다.

 어머니는 내게 다시 전화를 걸어 너가 지금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당신의 아들이 그럴만한 성격이 안 된다고 계속 두둔했다. 

 나도 모르게 그만 폭발해 버렸다.


 ‘어머니 저 사람이 나한테 우리는 끝난 사이지만 저 여자는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어요. 하긴 그 어떤 자식이 부모님 앞에서 저 바람폈습니다 라고 하겠어요? 불효를 저지른 것이니 부인하지 않겠어요?’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참아왔던 일들에 대해 속 시원히 털어났다.

 ‘어머님 아들이 끝난 사이라고 하니까 끝난 마당에 저도 말할 것은 말해야 될 것 같네요. 저번에 3년 만에 대출금 5500만원을 다 갚았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니가 ’우리 아들이 잘 벌어서 갚을 수 있었지‘ 라고 하셨을 때 제가 비록 말을 안하고 넘어갔지만 저도 신혼 때 딱 1년 쉬고 그 이후 부터는 맞벌이를 했고 매일 가계부를 써 가면서 돈을 아끼고 모으며 살림했기 때문에 갚을 수 있었던 거에요. 그 흔한 명품백 하나도 사지 않았어요‘


 이 말에 반박할 수 없었던 건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저번에 시댁 큰어머니 생신 때 시댁의 큰 며느리와 딸 2명이 이미 생일상을 차려 놓았죠? 다 같이 앉아 밥을 먹으려고 나도 딱 젓가락을 들었더니 어머니가 ’현진이 너는 주방에서 도와줘야지‘ 라고 하셨죠?’

 여기는 무슨 무조건 큰 집, 큰 집 하면서 강조를 하는데 저도 그날따라 너무 배가 고팠고 큰집 큰어머니 생신 잔치에 저도 손님으로 온 것인데 어머니는 큰집 눈치 보느냐고 엄연히 그쪽 며느리와 두 딸이 음식을 하는데 굳이 작은 집 며느리인 저를 주방에 보내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냐고 물었다.

 이 말에 발끈한 시어머니는


 ‘그럼 너가 며느리로 들어왔으니까 당연히 주방에서 여자들이 하는 일을 도와줘야지. 먹고 앉아 있는 건 예의가 아니야’ 라고 하셨다.

 그럼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며느리가 마음에 걸리지도 않았어요?‘

 주방에서 있다가 거실에 차려진 밥상 앞에 가니까 모든 음식을 거의 다 먹은 상태여서 너무 섭섭하고 서러웠다고 말했다.

 큰집 며느리와 두 딸은 우리는 음식하면서 많이 집어 먹어서 배부른데 현진이는 먹은 게 없어서 어떻게 하냐며 걱정해 주시는데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고 있었다. 그날 내가 얼마나 서러웠는지 제 심정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셨냐고 해도 끝까지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라는 사람도 그저 자기 엄마 옆에서 이것저것 먹기 바빴던 모지리였다고 거침없이 내뱉었다.

 실제로 이 사람은 제사나 무슨 행사가 있을 때 마다 내가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단 한번도 내게 와서 힘들지 않냐는 따뜻한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도와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명절이 끝났을 때 수고했다는 말도 전혀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문제로 인해 다투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내 생일날 선물로 현금으로 10만원 주시다가 이번 선물에 언제 받았는지 모를 정도로 구깃구깃하고 색이 바랜 현대 백화점 10만원 상품권을 주면서 내가 신세계 백화점만 다녀서 여기 갈 일이 없어서 못 쓴 건데 너가 쓸래? 라고 말하며 주는데 나를 너무 홀대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계속해서 전화를 끊기 전까지 끝까지 아들은 바람 편 적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만약에 내가 시어머니라면 며느리 마음을 헤아려주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아들과 자세히 얘기를 해 볼 테니 힘들겠지만 조금 기다려 달라는 식으로 얘기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일단은 내 말을 믿어주고 남편을 채근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머니가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시니까 남편이 부모님 뒤에 숨어 있는 셈이었다.

 그 다음날 남편은 출근을 했고 집에 혼자 남은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고 태어나서 그렇게 짐승처럼 운 것은 처음이었다.

 이건 겪어본 자만 아는 고통이다.

 이 사실을 엄마가 알게 된다면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라는 생각으로 알리지도 못했었다.


 엄마는 사위가 오면 ‘우리 사위’ 라고 하면서 반겨주시고는 하는데 사위가 딸을 놔두고 몇 년이든 몇 개월이든 바람을 폈다는 사실을 알면 크게 충격을 받으실 것이 뻔했다.

 철저하게 배신당한 나는 지독히도 혼자였다. 어떻게 자신의 부인 앞에서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며 말할 수 있고 그러면서 나를 어떻게 똑바로 볼 수 있었는지 날 속인 시간들이 괘씸했다.

 도저히 남은 인생을 이 사람과 산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난 그 사람에게 전화 했다.

 ‘우리 이혼하자’ 하고 전화 하자 남편은 

 남편은 ‘이미 회사 부장님께 이혼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했어’ 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예전에 만약 남편이 바람피면 사무실로 찾아가 이 사람이 바람 폈다며 직장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는 했는데 이 남자는 이 말을 기억하고 회사에 미리 귀띔을 해 논 것이다.

 그의 철두철미한 행동에 기가 찼다. 

 솔직히 나는 미안하다고 내게 용서를 빌 줄 알았다. 그리고 우리 그러지 말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러니까 내가 ‘우리 이혼하자’ 라고 말한 나의 속마음은 이 사람이 어떻게 나오는지 반응을 보고 싶었고 나를 달래주며 매달리기를 바랬다. 아니 그렇게 할 것이라고 그 때 까지도 믿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단호하게 알겠다고 대답한 그가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냉혈한 인간 같았다.

 이 사람에게 이혼은 쉬운가 보다.

 아니 이미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도저히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들었다.

 그래서 냉장고를 보니 먹다 남은 소주와 맥주가 있길래 대학교 1학년 때 먹고 그 이후로 술을 못 먹어서 거의 안 마셨는데 맥주에 독한 소주를 타서 넘겼다.


 왜 사람들이 괴로울 때 술을 마시는지 알았다. 독한 소주가 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상처로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 같았다.

 그렇게 연속으로 들이키고 나서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가 싶었다.

 나에게 있어 남편은 내 상처를 치유해 주는 구원자였다. 그랬던 그가 왜 변했을까.

 그리고 난 왜 바보같이 결혼 전에 그런 문자를 보고도 그냥 무심하게 넘겼을까?

 몇 개월 전부터 시작된 건지 아니면 결혼 전 그 때 부터였던 건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부부가 되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너무 쉽게 맹세를 다짐했던 이 남자의 본성이 더럽게 느껴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정 떨어진다는 말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최고로 행복할 때 찾아온 시련은 더 아프게 느껴졌고 집에 혼자 남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아...하느님은 내게 아무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구나.

 난 크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이렇게 내 인생은 보통 사람들처럼 흘러가지 않고 힘들게 버티며 살아야 되는 삶인가 싶었다.

 그래서 더 이상 버티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난 칼을 꺼내들고 내 왼손 손목을 보고 있었다.

 파란색 혈관으로 서슬 퍼런 피가 흐르고 있었다. 


 순간 차가워 보이는 파란색 혈관이 보기 싫어졌다.

 이제 더 이상 내 의지로 버텨왔던 삶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왼쪽 손목에 칼을 대고 자해를 했다. 살이 베이고 피가 흐르는데도 아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우리 딸랑구~ 하며’ 시집 간 딸이 매일 보고 싶어서 매일 한번이나 두 번 씩 전화하는 우리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때 내 왼쪽 손목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는데 내가 이렇게 가 버리면 불쌍한 우리 엄마는 어떻게 하지?

 못 먹는 술이 퍼지면서 몽롱해져 갔고 눈이 감겼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고 싶었다.

 사랑이 없어진 자리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그 사람은 싸우고 나면 전화기를 아예 꺼 버리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음성 메세지를 남겼다.

 ‘만약에 내가 간다면 날 화장시켜서 파도가 크게 부는 바다에 나를 뿌려줘’ 라고 남기고 정신을 잃은 것 같다.

 살아있는 동안 너무 답답한 환경에서 숨을 쉬는 게 힘들었기 때문에 어디에 묻히거나 어디에 갇히지 않고 훨훨 자연스럽게 퍼져서 날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파도가 부는 바닷가에 나를 뿌려 달라는 말을 음성 메시지에 남겼던 것이다.

 남편은 꺼져 있는 전화기를 다시 켰는데 내게 음성 메시지가 온 것을 듣자

마자 신호도 지키지 않고 다급하게 왔다고 한다.

 들어오면서 쓰러져 누워 있는 나를 보고 제발 살아 있기를 바라며 내 심장이 뛰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손목에 자해를 한 것을 보고 그제야 나에 대한 미안함으로 눈물이 터졌다고 했다.

 거실에 누워 있던 나를 침대로 옮기고 나서 생명에 지장이 없고 그리 깊지 않지만 선명하게 그어진 곳에 연고를 발라주었다고 한다.

 나는 아침에 술을 먹었는데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고 나서야 눈을 떴다.

 손목이 매우 시렸다. 손목을 보니 선명하게 여러 개의 줄이 그어져 있었다.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이 보였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계속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남편이 나를 보며

 ‘미안해. 정말 미안해.’ 라고 하는 것이다.

 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는 왜 죽지 못하고 살아 있을까 싶었다. 왜 나는 살아서 이 남자가 준 상처를 또 얼마나 견뎌야 할까 생각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을 사람들이 많이 한다.

 그렇다. 언젠가는 지나간다.


 그러나 어떻게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지나가는지 그리고 얼마만의 시간을 보내야 지나가는지는 생략되어 있다. 

 누군가는 한달 만에, 또 누군가는 일년 만에,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평생 동안 고통을 받아야 한다.

 많은 시간 동안 아파해야 한다.

 그래서 이 사람이 준 상처가 나를 얼마 동안이나 괴롭히다가 지나갈지 생각해봤다.

 그날 밤 그 사람은 자해 한 손목을 부여잡고 내 곁에서 밤을 지새웠다. 


 ‘나는 괜찮으니까 그냥 자’ 라는 말을 했지만 그냥 그 자리에 계속 있는 모습을 보고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 그 사람을 용서해 주기로 했다.

 아니 용서는 아니고 그냥 없었던 일로 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떻게 용서 할 수 있겠는가?

 배우자의 외도는 용서를 하든 안하든 평생 잊지 못하는 큰 아픔이자 슬픔이다.

 나는 상처 치료를 위해 응급실을 찾았고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냥 없었던 일로 마음 먹은 후 부터 그 여자에 대해 두 번 다시 물어보지 않기로 결심했다.

 물론 모든 것을 빼앗아 버리고 싶고 머리채를 흔들고 뺨을 때리며 욕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나와 혼인 서약을 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와 혼인 서약을 한 사람은 남편이다. 그러니까 잘못은 혼인서약을 지키지 않고 어겨버린 남편에게 죄가 있는 것이다. 물론 도덕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그 여자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나를 배신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난 이 사람을 다시 받아 주며 그 여자에 대해 죽을 때 까지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며 둘이 언제부터 사랑했는지 어디까지 갔는지에 대해서 전혀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나만 바라보는 엄마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나는 행복한 내 딸이었다.

 혼돈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에 대한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다시 받아준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이 남자가 너무 미웠다. 그리고 자동적으로 이 남자를 보면 그 여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감정이었다. 


 남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사실 자기는 아직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너가 결혼하자고 해서 결혼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남자가 정말 나를 사랑해서 결혼했을까?

 이 남자는 5년 동안 이어진 연애에서 벗어나 새로운 여자와 설레며 다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니까 나를 아끼는 마음이 없으니 작고 마른 내가 끙끙 거리며 집안 살림 할 때 본인은 축구를 보거나 게임을 했을 것이다.


 아마 미안함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내가 아내가 아닌 마치 자기 엄마가 집안일을 하는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는 나를 보고도 그대로 방치했다.  

 사랑은 믿음으로부터 출발한다.

 믿음이 깨지면 사랑도 깨지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을 예전처럼 사랑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부부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살아갔다.

 겉으로 보이는 우리의 부부 모습은 이상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며 부럽다고 말했다.

 우리는 허상을 보면서 때로는 우상을 만들 때가 있다.

 그 때의 나는 그 사람이 그리고 이 상황이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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