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나이가 많다 할지라도!
어느 날은 아가씨라는 소리를 듣기도, 또 어느 날은 아줌마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나는 이제 확실히 아줌마라고 불리울 수 있는 나이가 맞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아줌마로 부르면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웃기다. 아니 벌써 내가 아줌마라고 불릴 수 있는 나이라고? ㅋㅋㅋㅋ 웃음이 나며 남편에게 웃긴 상황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어디서 보니 아줌마라는 말에 화가 나기보다는 웃음이 나오면 아직은 아줌마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 난 아직 아줌마가 아닌가?
난 결혼도 했고, 나이도 이제 앞자리가 4가 되었으며, 아이도 있다. 가끔씩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그래도 시력이 좋은 사람이 보면 이제 주름도, 새치도 보이는 40대 여자다.
조건은 정말 아줌마다.
그러나 아줌마가 주는 어감? 그런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은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좀 편안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제쳐두고 하는 행동들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외모도 좀 관리하는 편이다(이 말에 남편은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노산엄마이기에 주변에 젊은 엄마들이 많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만 너무 나이 들어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깔끔하게 하고 다니려 하고, 여러 가지로 공부하며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게 구차하게 말을 이어가는 이유는, 난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아줌마는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그 단어를 듣고 웃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아줌마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이다. 왜 낮추어 부르는가. 확실히 아이가 아닌 이상,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의도는 대부분 부정적이다. 그렇기에 그 한마디 말을 듣는 당사자는 기분이 좋을 리 만무하다.
모든 사람은 상황적 문제들과는 별개로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작은 실수 하나에 날카롭게 비수를 꽂기보다는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는 관용을 베풀면 어떨까. 아이가 있는 엄마라는 이유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봐줄 수 있지는 않을까.
어린아이가 있는 엄마들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에 내가 다치는 것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시야가 더 좁아지고, 예민해지는 경우가 많다. 나도 아이가 날뛰면 아이가 넘어질까 봐 걱정되어 연신 죄송합니다만 외치며 아이를 따라 뛰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아이와 부딪혀 불편하거나 바로 앞에서 넘어진 아이의 모습에 당황스러울 텐데도 미소 지어주며 아이에게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분들을 만날 때면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어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한다. 아이에게 배려심이 넘치는 좋은 사회라며 이야기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말이 있듯이 서로 조금씩은 배려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실수를 한다 하여 다짜고짜 말로 상처를 주며, 하나의 행동으로 그 사람을 비난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좀 더 이해해 주고 미소 지어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배려를 받은 사람 역시 그 배려심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히 여긴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날씨가 더워 불쾌지수가 높으니 작은 일에도 모두 날카로워지는 시기다. 하지만 내가 먼저 한 걸음 물러나 미소 짓는 사람이 된다면 누군가에게도 좀 더 나은 오늘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35도가 육박하지만, 좀 더 미소 지으며 밝은 하루를 지내보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