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자(결혼식만 하고 혼인신고를 해주지 않았고, 그리고 버려졌기에 난 그냥 동거녀일 뿐이었다.)의 성매매를 처음 알게 된 날이었다. 친정으로 돌아와서 마음을 접고 고통스러워하며 뜬눈으로 눈물로 밤을 지새웠었다. 왜 그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나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미고 아이를 낳고 그저 평범하게 살기 원했던 나를 유린했을까. 그에게 아무리 물어도 그는 답해주지 않았다. 그저 몸만 즐겼던 것이라고. 자기가 미쳤었나 보다. 뛰어내려서 죽겠다는 등, 회사도 그만두고 사라지겠단다. 네가 너무 보고 싶으니 다시 돌아와 달란다. 하지만, 그건 그냥 자신의 성매매를 자신의 부모와 내 가족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그래도 창피했는지 그것이 자신의 회사에 알려질까 봐 겁을 먹고서 했던 행동들이었던 것이다. 가족과 친구들이 반대하는 결혼을 했고, 대화도 전혀 통하지 않고, 나를 전혀 배려조차 해주지 않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결혼한 내 탓이라 생각했다. 직장은 다니고 있는데, 티 내지 않고 일하며, 잠이라도 자고 이 관계를 정리해야 했기에 도저히 기도나 나의 눈물로는 불가항력적인 고통이 따라왔기에 죽을 것 같았다. 도저히 내과에서 처방받은 안정제로는 감당이 되지 않아 정신과를 찾아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모든 곳들이 예약이 꽉 차있어서 한 달이나 두 달 뒤에나 가능하고 여기저기 찾다 가장 허름한 곳을 찾아서 전화를 해봤더니 다행히 예약 없이 온 순서대로 진료를 한다고 했다. 나이 드신 남자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셨다. 내 얘기를 다 하니, 내게 해주신 위로의 말씀이 이거였다. " 어떤 분은 남편이 외도가 아니라 차라리 성매매이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니 결혼 전에 그런 행동을 한 것이니 이해를 해주는 것도 아니면 이대로 헤어지는 것도 너의 선택이다." 결혼직전까지 어떻게 보면 약혼기간이라 할 수 있는 기간에 그 여자를 찾아가 만나서 즐기고 온 것이었다. 결혼 전 한 번도 아니고, 지속적인 만남을 한 사람이었다. 그런 업소를 이용하면 단속에 걸리거나 사기가 많아서 익숙한 한 사람으로 계속 만났단다. 너보다 나이 들어 보였고, 성관계는 하지 않았고 유사 성행위만 했다고 그걸 터진 입이라고 내게 변명들을 해대었다. 처음에는 회사에 알리고, 성매매를 신고해서 그 인간의 인생을 밟아 주고 싶다가, 내 직장에서는 한창 신혼인 척 웃어야 하는 내 현실이 미칠 것 같았다. 티를 내지 않고 일을 하고 있으나 잠시 틈이 날 때마다 그 여자와 그의 행동이나 문자가 머릿속을 뒤집어 나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결국 안정제를 먹고도 잠도 잘 오지 않고, 나아지지 않아서 상담 센터를 찾다가 유튜브에서 운영하는 바람피운 사람들 증거를 찾아주는 흥신소 같은 잘못된 상담사와 잘못연결을 해서, 내 얘기를 했더니 둘 다 늦게 결혼했고, 바람난 것도 아니고 남편이 그렇게 비는 것을 보니 너도 사랑하는 것 같으니 그냥 한번 용서해 주고 살란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시키는 대로 깔아주는 앱도 있고, 사람을 붙여서 하는 것도 있고 등등의 방법을 제시해 준다. 즉, 흥신소 역할이지 정말 상담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두 달 만에 파투 난 것이 너무 수치스럽고 창피하고 누군가에게 말할 수도 없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래서 그를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그에게 돌아가겠다고 했다. 당연히 가족들은 내게 절연하겠다고 하였고, 내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안 엄마가 말리지 못하고 가라고 하셨다. 하지만, 결국 엄마가 나보다 더 아팠고, 정말 정신을 내려놓기 직전까지 갔었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갔지만 잘해주지 않았다. 자기도 공황장애, 우울증이 왔다며 회사에서는 그만둔다니 그동안 일이 많아서 그런 줄 알고서 휴가를 2주 줬다고 한다. 2주간 그는 내게 약속한 각서를 써주고, 경제권과 카드 명세서를 내게 다 주고, 구글 위치공유를 하기로 하고선, 위치 공유만 했다. 하지만 그 공유를 하면서도 자신은 팔다리가 잘리는 것이냐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래야 속이 시원하냐고. 오히려 내게 빌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미안함을 보여줘야 할 사람이 자기 팔다리를 잘라서 자기 속을 다 들여봐서 좋은 게 뭐가 있냐며, 자긴 어떻게 숨을 쉬며 사냐며 화를 내댔다. 겨우 구글 위치공유 하나만 해주고서 말이다. 울고 불고 빌더니 정작 돌아오니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지키라고 하니 천천히 해주겠다고 자신이 아프지 않냐고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이 크던 엄마의 상태가 너무 위중하여 가족들이 집 근처의 정신과로 모시고 갔고, 약을 드시면서 많은 차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동안 나는 화가 나고 눈물이 나도 내 얘기를 들어주고 유일한 친구였던 엄마와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엄마는 통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공황장애가 심하게 왔고, 내 생각만 하면 심장이 뜯어지듯이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하셨다. 항상 바르게만 키웠고, 보수적이고 바르게만 살던 내가 왜 이런 사람을 만나고, 또다시 살겠다고 돌아가니 정말 죽고 싶으셨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나도 얼마나 아프면 차라리 그 지옥이 반복될 텐데, 지옥이라도 좋다며 돌아간 내가 너무 불쌍하고, 엄마의 목숨을 내놓아서라도 내 아픔이 낫고, 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하셨다. 지금도 그 당시에 정신을 못 차리시고, 식음을 전폐한 엄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 신혼집 근처에 있던 정신과로 옮겼으나, 거기도 약이 똑같이 처방됐다.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큰 정신과였고, 첫날은 길게 상담이 가능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약만 처방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병원에서 예약 알림 같은 것이 없어 한 달 뒤에 오라는데, 내가 깜박 잊어버리면 다음 달까지 견뎌야 해서 너무 불편했다. 그 여자선생님은 내게 예를 들어주셨다. 자신의 여자선배가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던 남자친구와 같이 의대에 와서 같이 종합병원에서 일했단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선배의 남편이 결혼 전에 대학시절에도 엄청나게 바람을 피웠고, 지금 결혼하고도 같은 병원에 있는 간호사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다 알고 소문이 자자하지만 당사자만 몰랐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호텔에 다녀온 것을 들키고 자신의 남동생이 다녀온 것이라 발뺌을 하다가 그 여자선배는 이혼을 했다고 했다. 너무 고통스러워하며. 자식까지 있었다고 한다. 몇십 년을 속았다고. 그런 사람도 있는데 나는 결혼 두 달 만에 알았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으니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그와 같이 살고 있지만, 그의 반성 없는 태도에 나는 더 상처받고 있으니 잘 선택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 얘기했다. 처음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도 없고, 성매매는 사람을 돈을 주고 사는 상품으로 보는 것이기에 인간적이지 않은 사람이며, 공감성들이 떨어질 것이며 아이라도 낳으면 육아는 같이 해도 힘든데, 너의 남편의 행동을 보면 독박 육아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외롭지 않나? 아이와 네가 더 외로워질 것이라고 했다. 성매매도 중독이며 병이기에 치료를 하지 않으면 낫지 않을 것이며, 매일 소주 한 병에 맥주 2~3캔을 먹는 사람이었기에 알코올중독도 있고, 이성적 제어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인다며 잘 선택하라 하셨다. 하지만 나는 집착인지, 사랑인지, 아니면 내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그를 놓을 수가 없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나아짐이 없어서 여러 곳을 찾고, 상담소를 찾아가 몇백만 원 치 상담을 했으나, 민간 자격증인 엉터리 상담사였으며,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 같이 부부 상담을 받길 원했으나, 그는 같이 가길 거부했다. 나중에 분양받은 신혼집으로 가서 그곳에서 다니겠단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그는 전혀 노력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집착하는 것 같아서 무서워서 못살겠다고, 헤어지자 협박을 해대고 정말 형편없이 못되게 굴었다. 내가 떨어져 나가길 원했던 것 같다. 자기의 성매매를 아는 사람이 없어지면 다시 시작해도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게 알릴 가능성이 없어져서였을까? 내가 그를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 이젠 분석하려 하지 않으련다. 인천 쪽 정신과도 별로였기에 남편은 자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판정받고 약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성매매로 인한 얘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그 병원에서 운영하는 카운슬링센터를 다니려 하자 화를 내며 거부했고, 자신의 정신과에 같이 다니는 것도 거부했다. 결국 엄마가 조금 나아지시더니 엄마가 다니시는 담당선생님이 상담도 잘해주시고, 약 만지어주는 시스템도 아니고, 약도 부작용이 적은 약으로 처방해 주셔서 좋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쪽 병원으로 예약을 잡고 세 번째 정신과 선생님을 만났다. 남자 선생님이셨고, 남편의 얘기와 대학 때부터 pms(생리 전 증후군) 이 있었기에 한 달에 2주씩 우울했고, 이 성적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얘기했다. 그랬더니 우울증과 pms에 동시에 좋으며 부작용이 좋은 약들을 설명해 주시며 약을 처방해 주셨고, 매달 갈 때마다 상담을 해주시는데, 남편의 반성 없고, 오히려 더 못되게 구는 행동에 상처받고 더 심해지는 나를 보며 얘기하셨다. 대화를 해보면 충분히 많이 배우고, 뛰어난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 너무 똑똑해서 지극히 이성적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감성적인 부분에 기대어 머리로는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 감성으로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몇 달 동안 지금까지 나를 보았을 때 많이 안정되었지만 그것은 내가 나아지기 위해 일기를 쓰고, 취미로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고, 책을 읽거나 운동을 하는 등의 노력을 해서이지 남편과의 관계나, 남편 때문에 좋아진 것이 아니다. 아직도 더디게 회복돼 가는 것이 남편 때문이며, 떨어져서 있는 기간이 한 달밖에 안되고 너무 짧았다 하신다. 직장도 다니고 있으니 그 집에서 나와서 다시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떠냐 권하셨다. 나도 남편에 대한 화는 가라앉지 않았기에 그를 생각하면 정말 미칠 것 같고, 둘이 이 집에서 어떤 일들을 했을지 상상하게 되고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들이 화가 나고, 출퇴근을 하며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아 얼굴을 만지면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견딜 수가 없어서 차에서 노래를 크게 켜두고 달리며 미친 듯이 따라 불렀다. 그러면서도 쉬지 않고 울어댔다. 일을 하면서 설명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려도 다행히 코로나로 마스크를 써야 했기에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 그가 분양받은 신혼집으로 이사를 간다고 할 때 나는 갑자기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처럼 주말에 친정에 와서는 내가 하고 싶었던 필라테스를 등록하고 그에게 내 우울증과 공황장애상태가 안 좋아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하고 운동을 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하니 길길이 날뛰었다. 결국은 그의 날뜀에 내가 살기로 선택한 것이니 게다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새로운 동네로 가니 서로 더 의지하게 되지 않을까란 희망을 가지고 그와 계속 살기로 선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