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있어서 살고 싶어 하지 않는 고등학생이 있어서 위로를 해주고 계시지만, 아이의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래서 목사님의 과거 얘기를 해주셨었다고. 그 말을 듣고서는 나의 고통스러운 시절이 이러하였고, 그런데 신께서 나를 살리셔서 지금도 살고 있다. 당신도 살았으면 좋겠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누리지 못한 평안함도 누려보고, 뭐든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봐야 하지 않을까란 마음에서 말이다. 하지만, 사실 나도 성매매한 그 사람 때문에 성매매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거나, 그와 비슷한 외도에 관한 글을 브런치에서 읽었었다. 그런 글을 읽을 때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이 사람도 힘들었구나. 하는 위로도 있었지만, 사실은 다시 그 고통도 몰려왔었다. 그때의 기억들이 갑자기 물밀듯이 밀려오는데 정말 미칠 것 같고 눈물이 나서 울고 있었다. 너무 답답하고 아파서 가슴에서 퍽퍽 소리가 울리도록 가슴을 때렸다. 신께서 보고 계시냐고, 제가 무슨 잘못을 그렇게 했기에, 항상 피해자였고, 그래서 사는 것이 너무 힘겨웠었는데, 왜 이런 지옥까지 맛보게 하시냐고. 제게 원하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말이다. 무릎을 꿇고 울며 주먹으로 땅도 쳐보고, 소리도 질러봤다. 나 죽을 것 같다. 아니 죽고 싶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잘 때 편안히 데려가 달라고. 하지만 데려가 주시지 않았다. 새벽에 눈을 뜨면 문득 알레르기 약통을 보며 저걸 한입에 털어먹어도 죽지 않을까란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고통스럽겠지. 더 이상은 고통스럽고 싶지 않고 싶단 마음으로 실행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죽고 나서 장기기증 하는 것을 무서워했었다. 이미 죽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텐데, 혹시라도 뇌사판정을 받았는데 내 정신은 깨어있는데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면 얼마나 무서울까 하여서 말이다. 하지만, 목표를 바꿔서 다시 기도를 했었다. 잘 때 고통 없이 데려가 주시돼, 저의 육신은 장기 기증을 하여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려 달라고. 그리고 혹시나 장기기증 하시는 의사 선생님들이 나를 시체 취급하지 않고, 잘 정리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 말을 듣는 엄마의 가슴은 타들어 갔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잘 때 숨을 쉬고 있는지, 내가 방에 들어가 우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물론 엄마가 내게 한 말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통화할 때 들었다. 그 얘기를 듣는데 더 아파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엄마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그래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큐티를 한다고 글을 읽었는데 거기에 그런 글귀가 있었다.
네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너의 자만은 다른 사람을 돕는데 해가 되며, 점점 더 활력을 잃을 것이니, 너희 힘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니라. 더욱더 나를 의지하고 네가 나를 통해 모든 일을 할 수 있음을 더욱 확신하라.
과연 내가 누군가를 위로할 자격이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의 글들이 과연 위로가 될지 아니면 내가 느낀 것처럼 위로가 되는 동시에 그때의 기억들로 더 아파지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어쩌면 내가 위로를 하겠다고 쓴 글이 나의 자만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나의 고통들을 쓰는 게 맞는가. 오히려 이러한 중에도 그 틈에 기쁘고 즐거운 일들을 써서 이런 일 틈에도 이러한 일들이 있었다고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란 고민도 있었다. 어떤 게 맞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의도하던 과정으로 쓰던 글을 바꾸어 쓸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기막힌 아픈 기억은 그만 쓸까 , 막장 드라마를 쓰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확실히 내 글 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글은 사랑하지 않은 사람에게 버려진 글이었다. 그에 관한 글들은 소설로 써봐야겠다. 실은 에세이지만 말이다. 대사와 사건들이 정말 막장 드라마였으니 말이다. 일기로도 기록되어 있으니, 막장드라마 한 편은 나올 듯하다. 이것저것 끄적여 둔 것들이 있지만 잘 정리해 보아야겠다. 다만, 글을 쓰면서 지금 기분은 신께서 내게 주시는 조그마한 행복과 관심들로 가끔은 두근거리고 설레기도 하고, 행복하여서 이전의 아픔이 그나마 잊히고,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내일이 조금이나마 기다려진다. 다만, 이런 설렘이 깨지면 나의 상황이 불안정하기에 다시 더 고통스러워하지 않을까, 그게 무서울 뿐이다.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것도 무섭고, 직장에 복귀하는 것도 왜 그리 무서운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씩, 조금씩 해봐야 할 것이다. 누군가 내 인생을 다시 살아 주는 것도 아니고,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 말이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공황장애로 숨이 차고 떨린다. 하지만 글에 쓰듯이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 아직 내 자리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 다시 돌아가기 싫었던 직업의 과정들을 다시 해보니, 즐겁고, 잊힌 부분이 궁금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다. 조금은 나아진 것일까? 모르겠다. 카운슬러나 다음에 정신과에 방문하면 잘 적어두었다가 여쭤야 할 일인 것 같다. 아직도 하루하루 널뛰는 감정에 주체를 하지 못하겠다. 운동도 하고 있고, 약도 열심히 먹고 있는데 왜 아직도 삶이 무기력한 것인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