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서의 삶도 내 삶이야.
작고 작은 육아휴직 급여 대부분을 아기 물건, 책에 투자하는 친구가 있었다. 평소 그다지 본인 물건을 사는 친구가 아니기에 의아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말했다.
"얼마 나오지도 않는데 아기 책 그만 사고 너 써!"
친구가 말했다.
"아기 물건사고 책 사는 게 아기를 위한 게 아니라 내 만족이라 나를 위해 사는 거야."
이제 아기 물건의 친구의 만족이 되는 것일까? 이렇게 내 이름이 지워지고 '엄마'의 삶이 되는 건가 싶어 안타까웠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친구가 말한 '내 만족'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처음 **이 엄마라고 불리던 그 낯설고 이상했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내가 엄마라니. 뭔가 오글오글 거리는 느낌이었다. 다른 친구는 어린이집에 처음 연락을 할 때 "**이 엄마입니다."라고 본인을 지칭했을 때 기분이 참 묘했다고 한다. 임신 전에는 한 여자의 이름이 누구 엄마로 불리는 게 조금은 부정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매체에서 이런 내용을 많이 다뤄서인지 본인의 이름이 지워지고 '엄마'로만 남는 것 같아서였다. 임신 중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이 엄마로 불리면 내 삶이 지워지는 걸까? 우리 엄마, 아빠도 내 친구들도 직장에서는 계속 내 이름을 부를 테니 내 삶은 그대로이고 하나의 역할, 호칭이 추가되는 게 아닐까? 물론 모든 사람이 **이 엄마라고만 부르면 싫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아이를 낳고 많은 부모가 그러하듯 나도 프로필에 아이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는 연락을 받았다.
"어떡해. 우리 **이 프사도 이제 아기가 다 차지한다ㅜㅜㅜㅜ" 네가 지워지고 아이로 가득 차는구나 하는 안타까움의 표현으로 느껴졌다. 또 누군가는 다른 친구이야기를 하며 SNS에 아이 사진만 잔뜩이라며 엄마로서의 삶만 있는 것 같다는 안타까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한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교사는 학생을 위해.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다른 사람들만을 위해 사는 의사, 변호사, 교사로서의 삶만 있는 안타까운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아이돌이나 캐릭터, 운동선수들의 열렬한 팬 소위 덕질 역시 타인으로 가득한 삶이지만 안타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도 비슷하다. 내 아이가 너무 귀여워 프로필이며 SNS에 많이 올리고 내 시간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엄마로서의 삶은 안타까운 게 아니라 열심히 육아하는 멋진 삶이다. 아이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는 것은 나의 시간과 물질을 빼앗긴 게 아니라 정말 행복하게 투자하는 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비혼, 딩크가 점차 익숙해지면서 엄마, 아빠가 되기보다 아이 없는 삶을 사는 게 소위 ‘쿨’하고 ‘힙’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로 살고 싶어 결혼과 아이를 선택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엄마, 아빠가 된다는 건 ‘나’를 포기하는 삶일까?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임신 전에는 소위 '나'로 살고 싶어 아이 낳는 것이 망설여졌다.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이 참 편안했고, 나를 위해 돈을 쓰는 게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역시 행복하고 세 식구가 함께하는 공간이 참 편안하다. 나 또한 친구처럼 아이 물건을 사고 책을 고르는 게 재밌다. (물론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 공간도 너무 행복하고 소중합니다 :). 물론 힘들 때도 많다. 글을 쓰는 지금도 잠시 아이가 허용해 준 시간이다. 처음에는 노예의 삶인가 싶었지만 작지만 누구보다 나의 삶에 큰 권력을 차지하는 모습조차 너무 사랑스럽다. 이렇게 나의 딸 덕질이 시작됐다. 나는 곧 복직을 앞두고 있다. 일도 하고 육아도 해야 하기에 '나 홀로'의 시간이 아마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복직을 앞둔 지금 내 시간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퇴근하고 와서의 아이와의 시간, 주말 동안의 아이와의 시간이 설레고 기대된다
물론 모든 것에 그러하듯 적당함과 균형이 제일 필요하다. 아이돌 덕질도 지나치면 안 되는 것처럼 자녀에게‘만’ 올인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삶에 엄마의 역할이 추가되고 점점 그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 낯설지만 행복하다. 엄마로서의 삶도 나의 삶이다. 그러니 ‘엄마’라는 역할을 너무 불쌍하게만 봐주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