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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글킴 Jul 27. 2024

17. 마음 불편한 휴가

휴가를 간다.

아이는 남편이 보기로 했다.


임신 후 제대로 된 휴가는 정말 오랜만이다. 작년 이 맘때쯤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베트남 여행을 취소했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에다가 코로나로 제대로 된 신혼여행도 못갔던터라 재밌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찾아왔다. 출발을 사흘 남겨놓은 상황이라 그냥 갈까도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외여행을 취소하고 국내로 눈을 돌렸다. 작년 우리 여행은 사실상 입덧여행이었다. 처음 경험해보는 그 이상한 울렁거림에 종일 숙소 바닥에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게도 인스턴트 육개장만 먹을 수 있어서 강원도까지 가서 먹은 것은 인스턴트 육개장뿐이었다. 그나마 차에서 토하지 않았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태교여행도 간다든데, 그나마 편하다는 입신 중기에는 일이 너무 바빠 휴가를 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만삭 때 무거운 배를 부여잡고 자작나무숲이 있는 인제로 향했다. 예전부터 겨울에 자작나무숲을 너무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극P부부는 그저 가까운 숙소만 예약해두고 갔는데 하필 우리가 간 그 날은 자작나무숲 휴관이었다. 그리고 갔다하더라도 만삭이 가기에는 정말 무리인 곳이었다(이 또한 가서 알았다.). 그래도 딱 한 곳 열려있던 식당의 청국장과 산채비빔밥은 정말 맛있었다.


조리원 시절, 누구나 그렇듯 나도 너무 우울했다. 출산의 기쁨도 잠시 책임감에 어깨가 너무 무거웠다. 모자동실시간이면 조리원이 떠나가라 "응애! 응애!"우는 아이가 너무 무서웠다. 분명 밥도 먹었고 트름도 했고 이제 잘거라고 신생아실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그리고 분명 신생아실에서는 만족한 표정인 아이었는데 왜 내 방에만 데려오면 이렇게 우는걸까? 내가 너무 부족한 엄마라서 그런가보다 싶어 집에가서는 어떻게 키우지 하는 두려움이 정말 컸다. 이렇게 매일같이 우울해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휴가를 다녀오라고 했다. 2주간 주어지는 남편출산휴가기간에 여행을 다녀오라는거였다. 코로나 전에는 일년치 휴가를 몰아서 국내든 해외든 길게 여행을 다녔을만큼 여행을 정말 좋아했던 나기에 여행이 산후우울증에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나는 그 시기에 집을 떠날 수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싶었다. 브런치 글쓰기도 놓을만큼 무언가 생각할 에너지도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8월, 나는 드디어 휴가를 간다.

오랜 친구가 제주살이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친구와 함께 가게 됐다. 친구들과의 여행을 갈 수 있었던 건 원래 제주살이를 하고 있고 또 다른 친구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육아하는 중이기에 혹시나 변수가 있으면 전날이라도 여행을 취소해야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장치같은거였다. 육아를 시작하고부터 약속을 정할때는 취소될 수 있다는 말을 꼭 하게 된다.


한 번 여행을 가면 기본 2주이상을 잡던 나인데 호기롭게 잡은 그 짧은 2박 3일이 길게 느껴진다. 첫 날 오전에 출발해서 마지막날 오전에 도착하니 사실상 48시간인데도 이렇게 아이를 두고 가도 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보다 육아에 쿨하자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변하다니... 뿐만 아니다. 한 번은 오전에 나가 아이 잘 때 들어왔는데 잘만 자고 있는 아이가 뭔가 짠했다. 그리고 며칠간 독박육아를 할 남편도 마음이 쓰인다. 매일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단 이틀하는 건데도 말이다.


나와의 일상을 잘 보내는 것처럼 아빠와의 일상도 잘 보낼 것을 안다. 하지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몇 년 전  친구가 아이때문에 1박 2일 여행을 취소했다는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친구의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엄마가 된 지금 조금이나마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나는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떠나기로 했다. 간만에 주어진 휴가에도 아이 사진을 보고 수시로 전화하며 아이가 어떤지 물어보려나? 아니면 정말 출산한 적이 없는 것처럼 시간을 보낼까? 제주도에서도 아이에게 묶여있든 아니든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다. 더불어 남편과 아이의 48시간이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본다. 그저 별 일없이 예정대로 출발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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