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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Sep 15. 2024

열 시 넘을 것 같아.

 택배 배달하러 나간 남편에게 연락이 안 돼 언제쯤 끝날 예정이냐고 메시지를 남겼다. 시간 반이 지나서야 답신이 왔다. 열 시 넘을 것 같아. 점심도 안 먹고 나갔는데 오밤중에 들어온다니 짠하다. 결혼한 지 18년, 연애까지 합치면 거의 25년 이상을 봐 온 사람인데, 명절 연휴에 고향에 안 간 건 처음이다. 부모님 살날이 얼마나 남았겠냐며 왕복 열 시간 걸리는 고향에 한 달에 한 번은 가야 한다고 주장하던 사람이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안부전화를 하며 여기 저리 몸이 불편하고 아프다는 부모님의 하소연이라도 들은 날엔, 눈물까지 훔치며 딸과 나의 기분까지 푹 가라앉히던 사람. 둘째가라면 서러운 효자다. 그런 남편이 이번엔 귀향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자 그대로 갈 형편이 안 돼서다.

 남편과 결혼 전엔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극진하고 형편이 넉넉지 못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생활력 없어 생활력 강한 엄마에게 넝쿨식물처럼 들러붙어 사는 친가 식구들의 모습에 질린 터라 더 그랬을 거다. 대학 때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결혼은 여자가 온전히 손해 보는 짓이라 생각했다, 결혼하지 않고 친정 엄마에게 효도하며 살겠다고 결심하곤 했지만 결국 남편과 늦은 결혼을 했다.

 결혼하자마자 후회했던 것 같다, 효심이 지극한 남편은 일중독에 알코올 없이 살 수 없는 부류였다. 덕분에 효도는커녕 결혼해서까지 친정엄마에게 신세를 져야 했다. 유난히 잔병치례가 많았던 어린 딸을 키우며 일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은 남편에게 ‘새벽님’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일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던 터라 아빠가 늦게 들어와도, 심지어 아침에 안 보여도 딸은 전혀 아빠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서럽고 화가 나 고충을 토로하면 나이 많은 선배들은 말하곤 했다. 집에서 놀거나 바람피우고 도박하는 거 아니면 같이 사는 거라고.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굳이 그래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지만 나쁜 사람도 아니고 포기할 건 포기하며 서로 대강 맞춰가며 여느 부부처럼 살았다.

 남편은 자존감이 강한 사람이었다. 대체로 양보하는 사람이고 감정기복도 별로 없어 일중독, 높은 알코올 의존도를 제외하면 인품도 나쁘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그런 남편이 달라졌다. 사업을 시작한 후 고전을 면치 못하며 나도 모르는 부채가 쌓였고, 결국 나의 부채도 같이 불었다. 더 이상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는데도 이 상황을 타개할 의지도 용기도 없어 보였다. 감정 기복이 생겼고 알코올 의존도가 점점 높아졌다. 술이 들어가지 않으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부어도 반격할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점점 술과 드라마에 의존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게다 학교에 적응 못하고 방황하며 폭주하는 딸까지 가세한 형국이니. 밤늦게 동네를 돌아다니며 마음을 가라앉히지 않으면 안에서 솟구치는 화염에   죽을 것 같았다.

 가끔 친정엄마를 보며 엄마는 대체 그 모진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궁금했다. 엄마처럼 고생한 사람을 본 적 없다. 그럼에도 엄마처럼 지혜롭고 선한 사람을 본 적도 없다. 엄마가 겪은 고난에 비하면 지금 내가 겪는 시련은 시련 축에도 못 들겠지만 여하튼 생각지 못한 풍파에 오도 가도 못한 지경에 이르자 오히려 차분해지며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참는 게 아니라 내려놓는 법. 참은 시간은 내게 독이 됐지만 내려놓으니 나라는 사람을 되돌아보게 되고 남에 대한 원망이 나에 대한 반성으로 바뀌었다. 같이 사는 남편과 딸이 다 측은했다. 아마도 엄마는 진작 삶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고 그래서 사는 법 또한 배우지 않았나 싶다.

 집을 내놨다. 책장을 정리하며 그간 싸안고 있던 책도 당근에 내놨다. 남편에게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라고 했다. 폐인처럼 지내는 남편이 차라리 몸을 움직이면 예전처럼 자존감이 높아지고 목전에 닥친 문제들을 해결할 의지와 용기가 들어차지 않을까 싶었다. 남편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배달 한 건에 천 원 받는 아르바이트를 구해 어제 처음 시작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집 찾기도 수월치 않고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진 동네라 주차도 녹록지 않아 택배 마흔 개를 무려 아홉 시간 걸려 배달하고 새벽 한 시쯤 귀가했다. 담배도 못 태우고 배달했다는 말에 한 편으론 다행이다 싶었다. 스트레스가 많아 흡연량도 늘어 걱정이던 참이었다.

 아홉 시간에 사만 원. 가성비 떨어지는 노동이다. 몸 쓰는 일을 하지 않던 사람이라 엄마와 동생은 남편을 측은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죽지 못해 사는 듯 기운 없어 보이던 남편에게 미세한 생동감이 흘러 외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지극한 효자이자 이제 다시 생을 살아보고자 마음을 다지고 있는 나의 남편에게 신의 가호가 따르길 바란다. 더불어, 휘영청 떠오른 환한 달빛이 우리 가족이 지나고 있는 컴컴한 길을 밝혀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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