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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희 Oct 06. 2024

내가 사랑한 그림책) 삶이 불친절할 때

Margot Zemach의 < IT COULE BE WORSE>

 선배들은 종종 여자 나이 사십 대는 중세 암흑기라고 했다. 육아와 살림, 일을 병행하는 일은 정말이지 때때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란 걸 경험해 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다 그 긴 터널을 지나왔다는 안도감과 혼자 감당했던 외로움이 새삼 떠올라 옷소매에 눈물을 찍어 누를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독박육아에 애가 병치레가 잦고 예민하기까지 하면 ‘나’의 삶은 온데간데없이 휘발되건만, 그럴 때에도 사람들은 그 삶을 견디기 위해 보통은 희망을 갖는다. 그 시기만 지나면 삶이 좀 평온해지리라.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삶엔 우연한 불행이 연이어 겹치기도 한다는 걸. 암흑기가 끝나는가 싶더니 혹한기가 덮치고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끝나는가 싶던 터널 앞에 더 긴 터널이 다시 입을 벌리고 있어 그만 망연자실할 때 다시 펴보고 싶은 그림책이 있다.

 Margot Zemach의 <IT COULD ALWAYS BE WORSE> 언제든 더 나쁠 수 있다.

Once upon a time in a small village a poor unfortunate man lived with his mother, his wife, and his six children in a little one-room hut. 

옛날 옛적에 작은 마을에 가난하고 불운한 남자가 그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여섯 아이들과 단칸방 오두막에서 살았습니다.


가난하다 보니 부부싸움이 잦고, 집이 좁다 보니 우는 소리, 싸우는 소리에 귀가 먹을 것 같은 가난하고 불운한 남자. 그는 랍비를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The Rabbi thought and pulled on his beard. At last he said, “Tell me, my poor man, do you have any animals, perhaps a chicken or two?”

랍비는 생각을 하며 수염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말했습니다. “말해보시게, 가엾은 친구여. 혹시 닭 한 마리 혹은 두 마리 정도 동물을 기르고 있는가?”


 랍비는 가뜩이나 비좁은 단칸방에 동물들과 함께 지내라는 조언을 한다. 랍비의 말대로 닭이며 거위며 닥치는 대로 집안으로 들이지만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건 불보는 뻔한 법. 결국 가엾은 남자는 다시 랍비를 찾아간다.  이쯤 소개하면 이제 스토리 전개는 뻔하다. 하지만 가엾고 불운한 남자는 랍비의 조언에 따라 ‘더 나쁜’ 상황을 몇 차례 더 겪고서야 자신의 ‘현실’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


  얼마 전 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애 선생님은 이미 퇴근했을 시간이라 깜짝 놀랐다. 아이의 결석일수가 60일이 되어 앞으로 사나흘 더 결석을 하면 유예가 될 것이라는 통보였다. 학교는 다니고 싶어 하는 데 학교 가기가 힘들어 못 간다는 식의 답 없는 대화를 나누다, 그래도 부모가 포기하지 않으면 애가 언젠간 정신을 차린다는 선생님의 조언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60일. 그 숫자에 함축된 우리 가족의 절망과 고통을 어찌 형언할까. 통화 후 한숨을 푹푹 쉬다 남편과 밥상머리에 앉아 어쩌면 우리가 애와 같은 학창 시절을 보내지 않아 애를 이해할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고, 선생님 말대로 애가 언젠간 정상궤도로 돌아올 거라 서로를 위로했다. 애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을 때, 우리 부부는 당황스럽고 화가 났으며 좌절했다. 그 어떤 말도 질책도 아이에게 무용함을 깨달으며 더 나쁠 수 있는 상황에 놓이지 않은 걸 오히려 감사하는 법을 배웠다. 어떤 상황이건 더 최악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염두해 두고 살았다면 우리가 조금은 덜 불행하지 않았을까.


 가끔 험한 산에 올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도 그렇다고 계속 오를 수도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머리와 마음의 모든 버튼을 끈 채 한 치 앞만 보며 걸음을 옮기던 순간들. 당시엔 감사함을 몰랐지만 그래도 발을 들어 올릴 수 있었기에 보기 드문 신비로운 산 풍경이 이어지는 길을 눈과 가슴에 담으며 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삶은 산을 오르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길이 있으니 산을 오르듯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아 내는 것일 뿐. 그래도 같은 궤도를 돌고 있는 가족들이 서로의 중력을 느끼며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언제든 뿔뿔이 흩어져 서로 다른 궤도로 진입할 가능성이 충분했으므로.


 책에 나오는 그 가엾은 남자는 마침내 ‘깨달음’을 얻고 외친다.


“Holy Rabbi, you made life sweet for me.”

존경하는 랍비님, 당신은 제 삶을 달콤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아직 삶이 달콤한 경지에까진 이르지 못했지만, 언제든 더 나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기면 삶이 주는 기쁨의 달콤한 참맛을 음미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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