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함이 지나고 난 뒤에 씁쓸함만 남았다.
단어를 잘못 들었다.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순간 확인했다면, 따져 물었다면 해명했을 것이고 그저 웃고 지나갈 해프닝으로 끝났을 테다.
그런데 그렇게 해결하지 않고 혼자 생각을 키우고 곱씹어 내린 결론을 그저 통보받았다.
가만히 있다가 당한 통보에 얼얼한 것도 잠시. 뒤늦은 해명을 하면서 생각했다. 이미 타이밍은 어긋났구나.
다행하게 나의 해명을 이해했다고, 오해했다고 사과를 받았는데
당혹감과 황당함이 크게 들어왔던 내 마음자리에 그만한 크기의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어쩌다 그런 오해를 했을까?
평소에 내가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은 아닐까?
단지 단어 하나로 이런 결론이 나올만한 상황인가?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씁쓸함으로 상쇄된 이 감정에서 다시금 평안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깊게 생각에 사로 잡히지 말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딱 그 선까지만 받아들이자.
더 깊은 씁쓸함으로 변하기 전에 해야 할 것들과 알게 된 것은
앞으로의 처신에 더 집중하기와 혹여 관계를 정리하고 싶어 진다면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지 않는 것으로 대신하기.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니 여지는 남겨둘 것.
당신이 느꼈을 배신감과 오해의 자리에는 어떤 감정이 대신 들어왔을지 궁금해하지 않기.
당신의 시간은 당신의 몫으로 내가 관여하려고 하지 않기. 정도이다.
직접 경험하게 된 인생의 격언.
발은 믿는 도끼에 찍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