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음하는 젊음을 위해
네팔은 18세기 왕정시대를 거쳐 2008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공화정시대로 이어지고 있다. 프리트비 나라얀 샤가 네팔왕국을 세웠고 1951년 세습 총리 통치가 무너지고 국왕이 실권을 잡았다. 그러나 1990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입헌군주제로 전환되었으나, 1996년에서 2006년 공산당 마오이스트가 무장투쟁을 시작하면서 내전이 발발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사회적 혼란이 심화되었다. 그리하여 2008년 네팔 왕정이 공식적으로 페지되고 연방민주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2015년 헌법이 제정되었으나 잦은 정권 교체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경제적 어려움 또한 지속되고 있다.
최근까지 여러 좌파 정당이 번갈아가면서 정권을 잡는 회전문 인사가 반복된 결과로 정치 혼란이 가중되자 네팔 청년층의 분개를 사게 되었다. 특히, 고위 관료, 정치인 자녀들의 호화로운 생활이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시위에 불을 짚혔는데 이에 네팔 정부는 소셜미디어 접속을 차단했고 이러한 강압 조치가 젋은 층을 상대로 분노를 촉발시켰다. 곧, SNS 차단이 아니라 부패를 척결하라는 목숨을 건 사투가 시작되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반정부 시위에 폭력적인 공권력 행사는 유혈사태로 번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또한 정치인의 부패를 지켜보던 Z세대들의 분노가 거세지고 있고 이들은 길거리러 뛰쳐 나오고 있다. 도화선은 지난 3년동안 13조원의 홍수 예방 사업이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2조원의 손실이 발생했다는 것인데 이 손실액은 정치인, 공무원, 건설업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는 사건때문이다. 이뿐만아니라 국회의원들에게 월 400만원이 넘는 주택수당이 지급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위는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거기에 고위관리직 정치인들의 자녀의 사치스러운 삶이 국가의 세금으로 충당된 것에 혐오를 느끼면서 허탈해진 젊은 이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분노의 폭발은 겉잡을 수 없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 7월 졸업장을 쓰레기통에 처박고 학사모를 쓴 채 누워 있는 졸업사진이 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경제대국 2위이지만 오랜 공산정권의 부정부패와 억압으로 지칠대로 지친 젊은층들의 조용한 시위가SNS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경제 불안으로 인해 중국 청년층은 ‘탕핑: 평평하게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바이란 : 썩게 내버려 두다’, ‘란웨이와 : 대학교육까지 시켰으나 구직에 실패해 마지막 단계에서 망친 아이’ 라는 자조적 표현들로 자신들의 형편을 표현하며 좌절하고 있다. 경제 불안으로 인한 구직난과 공산 정권에 맞선 자유를 향한 갈망, 정치부정부패로 인한 비관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들은 지난 20년 전의 우리 때와는 다르다. 2000년대 초,우리나라에 hanmail이 탄생했다. 이후, 사회는 급격하게 변했다. 빠르게 인터넷이 보급되었고, SNS로 일상생활을 공개하는 문화는 국경을 초월하게 되었다. YOUTUBE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중앙으로 집중 되었던 정보는 탈 중앙화를 통해 수평적 관계가 되었다. 탈중앙화는 정보 습득의 방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 예술, 방송, 교양, 지식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아니, 이미 일어난 현상이다. 이들은 이를 자유롭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누리고 이용하고 습득하고 있다.
이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의 MZ세대들이다. 이들에게는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평등한 세대를 살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절대적 우위가 없는 정보를 빠른 시간 내에 누리게 되었다. 그러한 이들에게 억압이란 태생의 본질과 맞지 않는 형식이다.
정부의 어떠한 부정 부패의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가 도화선이 되어 연쇄적으로 퍼지고 있지만, 자유와 정의를 갈망하는 젊은 영혼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네팔의 것만도 인도네시아의 것만도 중국의 것만도 아니다.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목마른 청년들의 외침이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하는 것보다 실업급여를 받는 것이 낫다 여기는 실업률에 허덕이 청년들, 아이를 낳지 않는 곧 사라질 대한민국,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부동산 가격,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파벌의 인신공격을 일삼는 색깔논리로 질척대는 정치. 우리 청년들은 어떤 목적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주를 믿는 청년들은 바람에 나는 겨가 아니다. 이리 저리 뿌리 없이 날아가 버리는 겨가 아니다.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주님께 뿌리를 내린 시냇가에 심은 나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목적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 시대 방황하는 청년들을 향한 긍휼과 안타까움에 신음 하시는 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주의 진리 안에 자유하는 영혼들의 기쁨의 외침을 듣고 싶다. 그들의 울부짖음과 폭발하는 분노와 방황의 슬픔과 절망의 자조에 우리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다. 우리들이 모두가 가는 그 곳으로 가고 그들도 가겠지만 이 땅에서 반드시 목적을 갖고 살아가길, 반드시 자유하며 살아가길, 반드시 기쁨으로 다음 세대들에게 시대의 사명과 유산을 물려주길 바라고 소망하고 행해야 한다.
신음하는 젊은 영혼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