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밥상
2025년 10월 6일. 쌀쌀한 찬바람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추석 아침이다. 눈을 떠 가족마다 씻은 다음 둘러 앉아 성경책을 폈다. 형식도 그리 갖추어지지 않은 예배를 소박한 마음으로 드렸다. 나보다도 더 그리스도인인 어머님의 소탈하심에 사치도 없고 액세서리도 없는 예배였다. 있는 거라고는 진심어린 마음뿐인 예배였다. 어머님이 먼저 떠나보낸 아버님과 큰 딸을 그리워하며 눈시울이 붉어졌고, 손녀들을 보며 부모말에 순종하고 천국을 가야한다면서 말씀을 전해주셨다. 아주 짧은 예배였지만 어머님의 ‘예수 사랑하심’을 부르시는 구성진 목소리는 여운을 남겼다.
며느리라면 시댁에서 명절에 맞이하는 아침이 괴로울 법하지만 난 전혀 그렇지 않다. 특별한 차림도 특별한 음식도 없기 때문이다. 일상보다 아주 조금만 더 얹어진 설렘이라는 감정 외에 그 어떠한 것도 가미되지 않았다. 어머님은 평생을 고되게 보내셨다. 아버님의 직업이 변변찮았고, 생활력 또한 그다지 강하지 않아 어머님은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셔야만 했다. 어머님께서 차린 명절 아침 식탁은 검소했다. 이번 명절에는 슴슴하게 무친 콩나물, 들기름 맛이 청초한 시금치, 그리고 싱싱한 더덕무침. 거기에 얹어진 조금의 특별함은 장에서 사 오신 떡갈비였다. 어머님이 차려주신 식탁 반찬은 그게 다 였으나, 부담이 없었고 가짓수가 많지 않은 대신 고소함과 달콤함 짭쪼름함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밥상이어서 밥을 양껏 먹었다. 덕분에 설거지도 많이 나오지 않아 반찬 그릇 몇 개와 놋 밥그릇 몇 개만 씻으면 되었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 방영을 끝낸 드라마가 생각이 났다. 미식가로 소문났던 폭군 연희군과 그의 음식을 담당했던 미래에서 온 요리사와의 사랑이야기였는데 아주 재미가 있었다. 실제 이 이야기가 연산군을 모티브로 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야기 전반에서 그런 듯 했다.
연산군은 사치와 향락을 즐겼고, 탐닉에 절제가 불가능했던 왕이었다. 신선하고 진귀한 제철과일을 귀한 얼음에 담아오라는 왕명을 내렸을 정도였다. 그가 즐겼던 음식은 무척 다양했다.
전복도 종류별로 심지어 바다거북도 먹었고 소라등 신선한 생 것들을 즐겼다. 중국 간 사신들에게 군것질 거리라며 구하기 힘든 디저트와 수박등의 과일을 중국에서 사오라고 시켰다. 희귀하고 맛난 것이면 널리 구해서 바치라는 왕명에 전국에서 온갖 것들이 궁중으로 들어왔는데 특히, 사슴꼬리를 막대기에 돌돌 말아 말린 것을 좋아했고, 비싸고 귀한 식재료 소의 태반 즐겼다고 했다. 소의 태반은 신하들이 덕을 손상시키는 음식이라 말할 정도였는데 이는 새끼를 벤 소를 잡아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산군은 부드러운 육질을 즐겼고, 소의 특수 부위를 선호해서 하루에 소를 열 마리 잡았을 정도였다고 했다. 또한 말고기 중에 백마 고기만 먹었다고 한다.
이러한 연산군이 음식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는데 그건 꿩이었다. 진귀한 음식을 바치라는 왕의 명에 전국에서 궁궐 주방으로 수도 없이 들어온 재료가 꿩이었다. 궁궐 주방에 4만-5만마리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했다.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꿩을 궁에서 다 소화할 수 없게 되자 신하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이 역시 공짜는 아니었다고 한다. 왕이 꿩을 주면 답례를 해야했는데 꿩 값에 해당하는 왕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걸 바쳐야 했다고 한다.
야사에 따르면 연산군이 폐위된 이후, 연산군의 여덟살 된 아들이 제 자신이 폐세자가 된 줄 모르고 궁궐에 꿩 고기가 없자 왜 꿩 고기가 없냐 궁녀에게 물었고 궁녀들이 그의 암담하고 불쌍한 미래를 걱정해 슬퍼했다고 했다. 연산군의 아들은 네 명이었는데 연산군 폐위 후 모두 귀향 보내졌고 폐주의 아들들을 살려 둘 수 없어 중종이 사약을 내려 한 날 한 시에 죽였다. 열 두살 이하의 아들은 죽이면 안 되는 법이 있었으나 정치의 후 폭풍에 휩싸여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 연산군은 자신이 준 술잔을 엎어 술방울이 얼굴에 튀었다고 이세자라는 신하와 그 일가를 죽였다고도 하니 연산군과 연산군의 아들들의 죽음을 당시 슬퍼했던 이가 있었을까. 그가 어머니의 죽음에 괴로워하며 절망과 슬픔으로 자신을 망가뜨림도 불쌍한 역사이나 그의 죽음과 그 일가의 몰살에도 긍휼을 받지 못했음이 더 참담하다.
폭군이 폐위 된 후, 그 자취를 답습하지 않으려 했던 역사의 흔적은 오래 남았다. 왕들은 이후 연산군을 닮을 수 있다면서 취미생활은 할 수 없었다. 이 금기를 깬 광해군이 나오기 전까지 말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피난을 갔던 때의 배고픔을 겪어서 그런지 식탐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광해군의 신하 중에 잡채 상서와 김치 상서가 있었을 정도로 식탐이 있어 맛있는 걸 바치는 자들에게 벼슬을 내릴 정도였다.
탐닉이 없던 왕은 역대 임금 중에 가장 오래 살았던 영조였다. 영조의 장수 비결을 놓고 어머니 숙빈최씨가 하녀였고 체력이 좋아 영조가 이를 물려 받아 오래 살았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이는 물려 받은 게 아니라 영조의 관리때문이었던 것이라 할 수 있는 게 영조는 노론과 소론 사이에 몇 번 목숨이 왔다갔다 했을 만큼 정치의 위태로움이 있었다. 재위 기간이 길었고, 영조는 백성을 생각하며 반찬을 줄이는 소식을 많이 했다. 왕은 하루 다섯 번 수라를 받는데 영조는 세 번만 받았다.
영조의 장수비결로 꼽을 수 있는 음식은 고추장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들어왔고, 순창 조씨 조종부라는 신하가 고추장을 만들어 바친 이후, 그는 고추장을 즐겼다. 사실, 조종부는 영조의 탕평책을 반대했으나 그 집 고추장을 좋아했고 조종부가 죽은 다음에도 그 집 고추장을 계속 그리워했다고 전한다. 승정원 일기에 쓰여진 영조의 일상은 아침에 어이들이 들어가 왕의 건강을 체크하는데 입맛이 없어지자 그 중에도 고추장과 사슴꼬리가 왕의 입맛을 돋우웠다고 기록이 되었으니 영조의 고추장에 대한 사랑이 진심이었다고 보여진다.
영조가 죽기 전까지 선호 했던 네 가지 음식이 있는데 그건 송이버섯, 생전복, 새끼 꿩고기, 고추장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영조처럼 저속노화의 임금이라해도 송이버섯이나 생전복은 호사스런 반찬임에는 변함이 없다.
대한제국의 초대황제 고종황제는 먹는 걸 좋아했다. 야식을 좋아했고 냉면을 무척 즐겼다. 냉면은 고려부터 기록이 있는데 배를 많이 넣고 시원하게 그리고 달큰하게 만든 동치미로 만든 냉면육수를 무척 선호했다고 한다.
고종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바로 커피 즉, 가베다. 고종은 서양문화에 흥미를 많이 가졌다. 와플을 구워 먹고 롤스로이스를 구입할 정도로 서양 문화를 사랑했다. 그런 고종의 취향을 신하들은 좋지 않게 여겼는데 한 번은 아편커피 때문에 독살 당할 뻔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러시아 통역사 김홍륙에게 1898년 9월 12일, 순종과 커피를 마시다가 죽음의 문턱에 갔다 왔다. 김홍륙의 무리는 중독을 넘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치사량을 훨씬 넘어선 아편 덩어리를 커피에 넣었었다. 야사에 따르면 커피를 워낙 즐기던 고종은 한 모금만 마시고 본인이 원래 먹던 커피 맛이 아님에 이상을 느껴 멈추었고, 그와는 달리 평상시 커피 맛을 모르던 아들 순종은 그대로 다 마셨다가 피를 토했다고 했다.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은 늘 건강이 안 좋았는데 이 때 마신 독 커피 때문에 계속 건강이 안좋았다는 설이 있다.
연산군, 광해군, 영조, 고종에 대한 기록뿐아니라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조선에는 진찬의례라고해서 어떤 사람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자세히 기록을 해 두었는데 정조는 어머님 혜경궁 홍씨 회갑연에서 화려한 밥상을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아버지 사도세자 성묘를 가서 어머님의 밥상에 전복포, 붕어알젓, 홍어알젓, 배김치, 유자김치, 생강순 김치등 화려한 음식을 다섯 번 바쳤는데 화성행궁이 당시 아주 먼 길이었던 것을 떠올린다면 정조가 어머님께 올린 밥상은 아버지 사도세자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위상을 올리는 정치적 메시지가 있는 밥상이었다.
조선의 왕들이 자신의 탐닉을 위해 먹던 밥상이었던 건강을 위해 먹던 밥상이었던 정치적 위상을 위해 먹던 밥상이었던 그 밥상은 화려했다. 그 밥상에는 가족을 위한 애정이 없었고, 밥상을 위해 수고한 이들의 정성에 대한 감사도 부족했다. 식구란 둘러 앉아 같이 밥 수저를 먹는 구성원이다. 그러나 외롭고 힘든 정치 풍파에 홀로 앉아 12첩 반상을 받아야 했던 왕들이 즐길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눈으로 보아 혀로 느낀 맛 뿐이었다.
아무리 용포를 입었다고 하여도 부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아닐까. 오늘 추석 명절. 가족들이 둘러 앉은 밥상에서 하나님께서 빛으로 바람으로 물로 길러내심과 땀과 수고로 작물을 길러내고 거둔 자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기쁨을 나누는 우리는 용포를 입은 왕보다 더 행복하다.
고사리와 시금치, 콩나물에 사슴 꼬리가 아닌 돼지고기를 다진 떡갈비 몇 조각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밥상에는 가족이 있고, 나눔이 있다. 명절에 감사 할 방향을 잃어버린 허례허식뿐인 밥상에 슬퍼하거나 고되하지 말고 단촐해도 목적있는 밥상에서 웃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