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KE UP2

나 보다 더 간절한

by MAMA

출애굽기를 읽을 때마다 패역한 이스라엘이라 부르게 된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던 목이 곧은 백성.

그러나 그건 바로 나였다.


어제도 남편과의 대화에 불만이 가득했다. 심지어 어제는 큰 아이가 중간고사를 만점을 받아와 부모로서 아주 기쁜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홈쇼핑으로 번쩍거리는 냄비세트를 주문해주어서 택배로 받은 흥분된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관적이었다.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데 남편이 제안하기를 넌지시 대표님에게 연봉에 대해 동결인지 인상인지 사뭇 껄끄럽지만 당당하기도 하면서 부드러운 대화를 해보라는 말에 부담감이 생겼다. 20년 전, 미국에서 5시간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때의 월급을 받는 현, 대한민국 노동의 현실에 자조와 비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자리라도 나를 필요로하고 내가 회사에 제격이라는 칭찬에 감사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날이 선 비판에 남편은 피로를 느꼈다. 반짝거리는 냄비와 후라이팬을 넣어 놓고, 아이의 100점짜리 시험지도 넘겨 보았지만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기뻤지만, 내게 만족감을 주지 못함에 하루 온전히 꼬박을 일하는 가치가 정말 형편없이 취급받는다는 기분은 잠이 드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새벽녘 문득, 눈을 떴을 때 '내가 이스라엘이로구나'라는 혼잣말이 나왔다. 학교 급식 일을 할 때, 남편은 날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고 했다. 몸 상하지 않고 편한 일을 찾게 해달라고.... 내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남편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해서 지금의 3층 자재실 관리자리는 남편의 기도에 대한 꼭 맞춤 응답처럼 약간의 노동과 사무직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 지루하지 않을 만큼 바쁜 자리였다. 일각을 다투는 압축노동의 급식실 일과는 차원이 다른 호사스러운 일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직원들과 어울리고, 대표님들은 나의 성실을 인정해주고 있다. 모든 조건이 다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남편의 기도는 성취된 것이 맞다.


나는 그동안 감사를 잊고 살았다. 지금껏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내게 일어난 '나의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만이었다. 기도란 무릇 간절한 자의 기도에 대한 응답인 것인데 그것이 당사자일 수도 있고, 당사자를 위해 당사자보다도 더 간절하게 부르짖는 누군가의 기도에 대한 응답일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애굽에서 받는 핍박 속에 부르짖어 기도했던 이스라엘의 간절함보다도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탈출을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셨던 바에 대한 응답인것이다. 그 모든 바람이 주의 뜻이었으니 주의 뜻대로 되어야 마땅했다. 우리가 기도하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리이다'라는 말씀은 곧, 우리보다 더 간절하게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을 바라시고 원하시는 주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를 향한 내 뜻이 아무리 간절하다고 하여도 그것이 진정 나를 위한 길인가라는 의문에 우리는 확답을 할 수가 없다. 절대 주권을 지니시고 우리의 현재 과거 미래를 통찰하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만이 그 질문에 대한 확답을 하실 수가 있다.


결국, 더 간절한 쪽의 기도가 응답을 받을 것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함을 이길 수 있는 건 없다. 주의 뜻보다 더 큰 바람이 없다. 나의 그 어떠한 바람도 주님의 간절함을 이길 수 없다. 절대로.


그래서 우리는 '주의 뜻'대로 하소서라 기도하여야 한다. 그 기도가 순리다.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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