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KE UP2

여인

by MAMA

긴 추석연휴였다. 설악산 등반과 시댁, 친정방문까지 꽉 찬 일정을 소화했다. 그 일정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남동생의 둘째 소식이었다. 언니가 첫 아이를 낳은 이후로 언니네 네 딸과 나의 두 딸, 남동생의 첫 딸까지 모두 일곱 명의 손녀를 가진 아버지는 남동생네 둘째 소식에 기대를 많이 하셨다. 그래도 여덟 번째는 아들이 한 명 정도는 나와주길 바랐는데 역시 딸이었다.



친정을 방문했던 날, 식사 후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커피 많이 주는 노란 커피집에 마실을 나갔다. 깔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마침, 남동생네 둘째의 성별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나는 사내아이일 것이라는 편에 섰고, 나의 두 딸과 엄마는 딸 일 것이라는 편에 서서 내기를 하기로 했다. 엄마는 두 손녀딸과 손가락을 걸면서 배신하기 없기라는 말을 하고 나서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난 아들일 것 같다’고 손녀들과 서약을 단숨에 깨버리셨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두 손녀들이 장난 삼아 나무라고 우리는 엄마의 손바닥 뒤집듯 한 변심에 배를 잡고 웃어댔다. 그런데 그 순간, 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남동생이었다.


“어! 아들!”

“엄마! 공주님이야.”



수화기 너머로 애써 더 씩씩한 듯 말하는 동생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찰나에 아버지 얼굴색은 하얗게 창백해지셨다. 우스개로 웃으며 한 이야기였지만 어르신들의 기대가 사뭇 진지한 진심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아버지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전화를 들고 일어서서 가게 밖으로 나갔다가 오셨고, 엄마가 다시 돌아와 자리에 풀썩 앉았을 때는 엄마의 표정도 썩 좋지는 않았다. 애써 웃으려 하다가 속이 상하신지 눈물도 보이셨는데 다행히도 언제나 하하 호호인 우리 가족이 있어서 그런 기가 막힌 타이밍을 웃어넘길 수 있었다.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자조나 비난은 아니더라도 부모 된 입장에 딸도 아들도 다 있었으면 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 아들이 일곱에 여덟이 되는 상황이어도 딸을 간절히 바랐을 심정은 같았을 것이다. 여든이 넘으셨어도 부엌 문턱 넘는 것을 즐겨하시고 빨래며 청소며 엄마 대신 집안일을 다 해주시는 아버지라 해도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들을 못 낳는 여자라든가 아들이 있어야 집이 든든하다는 식의 저변에 깔려 있는 남존여비, 남아선호라는 구시대적 사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했다.



2025년 테일러 스위프트와 풋볼 선수 트래비스 켈시는 약혼을 했다. 켈시의 자산은 약 1251억 원, 스위프트는 2조 2400억 원을 가진 억만장자다. 자유와 기회의 땅 미국이라고 하나 내가 살아보고 겪어 보았던 미국 역시 여자가 남자를 뛰어넘을 수 있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여자와 아이, 그리고 노인을 중시하는 나라이지만 이 모티브는 남자에게 크나 큰 경제력과 권력이 있다는 가정하에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의무가 남성에게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적 배려이다. 여자가 귀히 대접을 받지 못했던 우리나라 여성이 보기에 판타스틱한 곳이었지만 결국, 우리들이 부러운 것은 여자를 극진히 대접해 주는 남성의 그늘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미국 사회도 남편의 경제력과 동등하거나 더 우월한 아내의 경제력을 가진 가정들이 증가하고 있다. 물론, 스위프트 커플은 둘도 없을 상징적 사례이기는 하나 여성이 가정 경제에 기여하는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는 ‘뉴 노멀’이 되어가고 있다는 현실은 우려와 갈등, 새로운 변화를 낳는다. 2023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70년 아내가 남편보다 돈을 더 잘 버는 부부의 비율은 3%에 불과했으나 2013년 23%, 2023년 29%로 증가했다. 가정의 의사 결정은 주로 경제력이 있는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여성이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러나 이는 전통적인 가정 내에서의 성 역할에 우려와 갈등, 충돌을 발생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사실, 남녀 경제력의 차이로 인한 이혼 발생률도 여성이 더 높은 수입이 있는 경우 높았다.



그 높은 이혼율은 사람들의 인식 변화의 속도가 격변하는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아무리 여성의 경제력이 높아진다 해도 출산, 육아, 집안일에 대한 책임의 몫은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는 바로, 내게 매일 벌어지고 있는 사정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출근을 바로 하는 남편과 달리, 난 청소며 빨래며 아이들 밥을 챙기는 과정들을 모두 소화한 후 출근을 한다. 퇴근 후에는 또 어떤가. 야근을 일삼아 할 수밖에 없는 남편 덕에 독박육아를 한 지 십수 년이다. 이러한 여성의 경제활동이 개인과 가정에 미치는 요인은 그다지 좋은 점만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테일러 스위프트 정도는 되어야 상승한 경제력에 맞춘 육아와 집안일에서 벗어나는 신분상승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우리네 모든 가정이 불안요소를 떠안고 살지는 않는다. 남존여비니 남아선호니가 아니더라도 어머니로 아내로 사회인으로 일반 가정의 여인네들은 독보적인 자기 자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 역할에 대해 무슨 지저분한 미사여구나 형용사로 꾸며지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욕 안 먹으려고 최선을 다해 사회인으로 살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집안이 내 뜻과 구미에 맞게 깔끔하기를 바랄 뿐인 것이다.



사회학자니 연구자니 하는 학교 담장 안에서 책과 종이 뭉텅이를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이들이 이러한 우리들의 일상을 통계로 만들어 굳이 안 해도 될 일들을 하면서 심리적 불안을 더 가증시키기는 하지만 우리 여인네들이 그렇게 그 통계의 결과처럼 불행한 것은 아니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살아간다. 애써서 일하고 당당히 성취한 대가로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남편과 사랑하면서 때로는 다투기도 하면서 우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건 남편이라는 한 남성이 겪는 모든 일과 다르지 않다.



잠언 31장 10절 이후에는 현숙한 아내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 아내가 해야 할 일은 다음과 같다.

살아 있는 동안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고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먼 데서 양식을 가져오고 밤이 새기 전에 일어나 집 사람에게 식물을 나누어주고 여종에게 일을 맡겨야 한다. 밭을 간품하여 사고 그 손으로 번 것을 가지고 포도원을 심으며 힘으로 허리를 묶고 그 팔을 강하게 하고 자기의 무역하는 것이 이로운 줄을 깨닫고 밤에 등불을 끄지 아니한다.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고 간곤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해 손을 내민다. 눈이 와도 두려워하지 아니할 홍색 옷을 집 사람들에게 다 입히고 자기는 아름다운 방석과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어야 하고 남편은 사람의 아는 바가 되게 하고 능력과 존귀로 옷을 삼고 후일을 웃으며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고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고 집안일을 보살피고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한다 말씀하셨다.



이러한 여성상을 구약시대에 말씀하셨다. 안팎으로 수고롭게 일하고 밭을 사고 포도원을 심을 정도로 경제력을 구사할 줄 알아 밤새 등불을 끄지 아니하는 부지런하고 지혜로운 여성상. 자신도 아름답게 꾸미며 자녀들에게 지혜롭고 인해하며 남편을 높일 수 있는 집의 안과 밖의 대소사의 결정권을 쥐고 서포트하는 당당하고 덕 있는 역할.


낮은 출산율이니 남편과 동등하게 집안일과 육아를 나누지 못해 높아지는 이혼율이니 하며 불안한 사회로 몰아가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잘못된 자기 비하가 아닐까.


하나님께서 우리 여인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우리의 역할에 자신감을 갖고 당당히 덕 있는 사람으로 서라는 것이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잠언 31장 30-31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연약한 여성성으로 아름다운 외모만으로 사랑받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칭찬을 받을 것이라 말씀하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현숙한 여인은 여성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구약시대에 조차 뛰어난 기질을 발휘하여 집을 일구고 자녀들을 가르치고 남편의 위상을 세우고 종들을 돌보고 이웃에게 베푼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현숙한 여인이 얼마나 훌륭한 지 전 시대를 걸쳐 바라는 한 인간에 대한 지향향을 말씀해 주고 계심에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른다.


여성의 성역할이니 동등한 권리니 하면서 여성이 남성의 그늘아래 남성의 도움 아래 존재한다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갖은 통계로 여성을 더 낮추거나 비하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사랑하는 여성이 얼마나 덕망 높은 존재인지 그런 여성을 누구보다도 뛰어난 역할을 하는 자로 만드셨음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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