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 Diary

11화 눈이 부신 날

by MAMA

2026-02-10

5.38km

38:27

7;08"

304kcal


“문주임! 3층도 바빠요?”

“올해 시작된 이후로 계속 경주마가 된 기분입니다.”

“앞으로 3년동안 이럴 거라고 하는데...”


오랜만에 3층 자재실에 오신 작은 사장님의 행복한 푸념이었다. IMF 이후 설날 물류 물량이 최악이라고 하는 소식도 접하고, 점심시간 한식뷔페에 온 어떤 직원들이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했지만 하나님의 축복으로 우리 회사는 발주량이 폭주하고 있다. 덕분에 돈벼락과 일벼락의 합작으로 2층 자재실, 구매실, 영업부, 3층 독거노인도 경주마처럼 일하고 있다. 월급사장이라고 하지만 작은 사장의 푸념은 환호의 비명처럼 들렸다.


오늘도 앉을 틈이 없이 퇴근 직전까지 밀린 일들을 해내느라고 손도 마음도 바빴다. 하루의 일의 분량을 해결하지 못하면 내일 그만큼 일이 쌓여 더 힘들기 때문에 어떻게든 목적으로 삼은 하루의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집념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장님들이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3층은 어떤가하는 의심어린 질문은 못내 속이 상하기도 서운하기도 하지만 그 딴 것으로 내 성실을 판단하지 못하리라는 자신감이 있다. 이제 일한 지 15개월차 발주건 2천건을 넘어서고 있다. 수주관리대장에 기록된 처리한 발주건들이 2천건이지만 그 외에도 있어 홀로 처리한 발주건들은 아마 2천5백건가량 될 것 같다. 그 외에도 자재실 재고관리와 밑작업까지 합치면 지금 내가 이러한 내 인생사 친근하지 못했던 쇳덩어리들과의 친분은 어처구니를 포함하여 놀랍기 그지 없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지 한 달된 갓난아기와 퇴근 후 씨름하는 작은 사장의 얼굴은 거의 잿빛이지만,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각오로 매일 버텨내고 있고, 나 또한 한 번 사는 인생 뒤도 없고 후회도 없고 원망도 없다는 각오로 앞만 보기로 해서 일요일도 쉬지 못하고 전도사로 부름받아 버팀이 일상이 되었다. 비타민도 소용이 없고, 홍삼도 소용이 없고, 오로나민씨도 소용이 없어 먹는 순간 그 효과는 날아가버리고 온데 간데 없지만 기분이 별로 나쁘지는 않다.


40대.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발바닥이 없어질 정도로 날갯짓하느라 바쁘다.

그래도 달렸다. 집에 와 녹초가 되어버렸지만, 아이들에게 냉장고 잔반처리보다는 건강을 위한 섬유질 섭취라는 명분을 내세워 시금치와 상추를 잔뜩 넣은 시퍼런 비빔밥을 해주고 턱 발달을 위해 잘 씹으라고 강요하면서 저녁식사를 대충 해치워버리고는 헬스장으로 터벅터벅 걸었다. 가뜩이나 건조해서 지문이 약해지고 일하느라 아주 지워져버린 내 손의 지도는 여간해서는 열림장치에 먹히질 않아 뒷 사람이 대신 문을 열어주었다. 여하튼 습관처럼 러닝머신에 올라갔다. 달렸다. 숨도 막히질 않게 3km, 4km, 더 달릴 수 있었다. 이미 8천보를 넘어버린 하루의 일과 탓에 5km 가까이 다다르자 무릎에서 불이 났다. 땀이 흥건해졌다. 목덜미를 흐르는 땀이 옷을 적셨다. 무릎에서 불이 나질 않았다면 더 달릴 모양이었다. 해갈되지 않은 달리고 싶은 욕구에 1km를 더 걸었다.

뿌연 하늘. 내일 미세먼지가 잔뜩 낄 거라고 했지만 나의 40대 오늘은 눈이 부셨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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