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화 꽃

by MAMA

4시 37분.


"아버지! 집에 가자."


아버지는 절룩절룩거리면서 걸었다. 애써 괜찮다고 부축도 마다하셨다.


"아버지! 여기 좀 서 있어요. 저쪽에 가서 차 갖고 올게요."


병원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해서 차를 가지러 가다 말고는 뒤를 돌아 보았다. 시원한 바람결에 햇볕을 등지고 서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오늘 습도가 48%라고 했던가. 바람이 이리도 좋은 날, 볕도 적당하고 손가락 사이에 슴슴히 흐르는 바람의 간지럽힘이 머리카락 사이사이까지로 스며드는 그런 날. 허름한 검은 운동화에 낡은 트레이닝 바지, 구부정하게 맥없이 서 계신 모습이 꼭 추수때의 누런 벼 같았다. 황혼 녘에 추수를 기다리는 무르 익은 벼들이 청량한 가을 바람에 솨솨 물결져 넘실댐이 아니라 '고개숙인 벼'. 알알이 무거워진 몸에 고개 숙인 벼. 버거워 보였다.


한달 전 즈음인가.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시다가 차를 피하면서 넘어지셨다. 넘어지면서 무릎도 깨지고 왼쪽 종아리 안쪽의 연한 살이 움푹 패였다. 아버지는 별거 아니겠지 싶어 상처를 지혈하고 빨간약을 바르시고는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셨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도 새 살이 올라오지는 않고 진물만 계속 흘러 동네 병원을 찾아 전전긍긍했고 별다른 수가 없는 날이 하염없이 흘렀다. 어버이날이었다. 부모님을 뵈러 갔는데 아버지 종아리에서 떠나지 않고 있던 반창고가 자꾸 눈에 거슬렸다.


"아빠! 거기 상처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도 안 나았어요?'

"사실, 이게 오래 됐는데 잘 낫지 않아.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도 그냥 소독만 해주고 항생제만 주고 말아."

"안되겠다. 내가 사실 엄마 아빠 걱정할까봐 말씀 안드렸었는데 진이가 뜨거운 물에 데여서 잠깐 다녔던 병원이 있는데 외과전문병원이야. 거기 가보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바로 그 다음 날, 아버지는 내가 소개해드린 외과전문병원에 가셨다. 상처가 깊었고, 그 동안 상처부위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곪은 부분을 다 긁어냈다고 했다. 두 세 차례 같은 과정을 되풀이했고, 2주를 매일 소독을 하러 다니셨다. 그러나 연세가 있으신 탓인지 새 살이 올라오지 않았고, 오백원 동전만한 상처에 허벅지 살을 떼어 붙이는 피부이식 수술을 하기로 했다. 그냥 두면 세포가 죽은 상처 부위가 더 커져 썩어들어갈 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수술을 결정했다.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엄청 속 썩인다. 그치?"

"아빠! 그래도 이렇게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에요. 요즘 이런 치료를 할 수 있는 마땅한 병원이 근처에 없어."


오후 반차를 썼다. 무얼 쑤셔 넣었는지 소스도 찍지 않고 먹었던 돈가스가 목에 걸려 있는 듯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은 그냥 지나칠 것을 밥 때 놓친다고 아우성인 엄마의 잔소리에 급히 먹었던 것을 후회했다. 마음이 급한 것인지 발이 급한 것인지 연신 울려대는 T-MAP의 알람소리에 악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며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달렸다. 도착하니 때마침 수술을 마치고 나오신 초췌한 아버지는 다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계셨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도우미로 일하고 계신 엄마는 오후 일을 하기 위해 나랑 교대를 했다.


"아빠! 괜찮아?"

" 응. 괜찮아."


수술을 마치고 나온 직후, 혈압이 높았다.여든 넘은 노인이 국소마취라고 하지만 수술 침대에 누워 제 살을 도려내는 소리를 다 듣고 있기 꽤 힘들었을 것 같았다. 한 두시간이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데 높아진 혈압이 제대로 돌아오질 않았다. 원래 아버지는 그 흔한 혈압약도 고지혈증약도 안 드신다. 주말마다 60년지기 고등학교 친구들과 산에 다니시고 도서관에 다니시면서 일년에 300여권정도의 책을 읽으신다. 건강관리의 끝판왕이라고 하실 수 있는 아버지가 누워계신 모습을 보니 슬퍼졌다. 정말 슬펐다. 슬픔이라는 단어가 요즘의 나와 어울리지 않았던 터였다. 눈을 떠서 감을 때까지 하루 종일 치열하고 바빴다. 여유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고, 그런 하루여야 보람이 있는 것 같은 자가당착에 빠진 매일의 내 감정은 그저 건조함뿐이었다. 기쁨도 즐거움도 잠시 잠깐 하루의 대부분은 바쁜 건조함. 그런데 정말 슬 펐 다.


올해 초, 꿈을 꾸었었다. 반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도 생생히 그 꿈을 기억한다. 아버지가 내게 예쁜 찻잔에 차를 주셨다. 그 맑은 차 위에 하얀 꽃이 둥둥 떠 있었다. 아빠에게 그 꽃이 무어냐고 물으니 '매화꽃'이라고 했다. 그러고나서 잠에서 깼다. 그 뒤로 아버지를 뵐 때마다 생생한 그 꿈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아버지와 나 사이의 쾌쾌묵은 감정들이 이제야 눈 녹듯 녹아내리듯 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아버지와 나 사이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를 향한 날카로운 몹쓸 감정들이 사라졌다. 이제와 보니 욕심 많은 난 나의 욕심을 뒷받침해줄 줄 모르는 부모님에 대해 늘 불만이었었다. 철이 없었지....반백살의 나이가 가까워지니 이 삶을 버텨내는 것 조차 대통령 표창을 받아도 시원찮은 대담무쌍한 일이란 것을 깨달으니 부모님의 80년의 시간은 위엄 그 자체였다.


난 그 시간을 아직 반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하여 그 삶을 다 안다고도 할 수 없다. 그건 기만이다.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에 그저 서글픈 '마음은 청춘인 인생들'에 대한 답을 아버지도 나도 모른다. 그냥 답이 없는 이 삶이라는 우주의 긴 파도에 외롭지 말라 신께서 가족이라는 엮임줄로 메워 준 고마움도 모른체 나를 향해 늘 짝사랑뿐인 노인을 홀대한 죄를 매화꽃을 떠올릴때마다 느껴야하는 죄송함과 먹먹함으로 대신하며 살게 된 이 딸을 아버지는 어찌 지금껏 무한히 이해하며 사셨을까.


"정말 아이들 잘 키웠다."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서 회복하시는 몇 시간동안 아이들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셨다. 고개 숙인 벼의 버거움에 황혼의 햇볕자락이 하얀 머리카락을 나부끼며 거무튀튀해진 검버섯핀 얼굴에 아버지의 힘듦이 느껴졌다. 작은 상처지만 아버지가 아버지의 80년의 고개를 넘은 위엄으로 잘 이겨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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