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by MAMA

바람이 분다. 미세먼지가 없는 쾌청한 초여름의 날. 6월에 큰 녀석이 태어났다. 오늘은 큰 아이의 열 다섯번째 생일이다. 무얼 선물로 줄까 했더니 먹성 좋은 녀석은 연어 회 필렛 큰 거 통째로 먹고 싶다고 했다. 거기에 치즈피자면 족하다고. 초등학생이었을땐, 불과 2년전인데 뭐가 그리 갖고 싶은 게 많은지 생일을 생각하면서 설렘으로 기다리고 기대했다. 그런데 이제 별 기대없이 생일을 맞이하니 괜히 내 마음이 서운해졌다. 큰 녀석은 새 집으로 이사와서까지 갖고 있던 키티 메이크업 박스가 있었다. 큰 녀석이 두 살 즘 선물 받은 건데 메이크업 재료들은 다 쓴 지 오래전이지만 아끼고 아끼는 보물들을 숨겨놓는 가방으로 써서 애지중지하며 방 한 귀퉁이에 보관했었는데 그만 먼지다듬이의 습격을 받아 깔끔쟁이가 더이상 소장하지 못하고 버릴 수 밖에 없었다.


작년 12월, 시애틀에서 친하게 지냈던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신앙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다. 썰렁한 개그를 좋아하고 작은 키에 하얀 피부, 알러지가 꽤 있어서 늘 약을 달고 살았지만 상당히 유쾌한 사람이었다. 집안도 부유하여 시애틀 일대에서 그의 부모님의 사업장을 모르는 이가 없었고, 그는 회사 생활을 하다가 부모님의 사업을 도와주기 위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었다. 12년 전, 남편이 음대를 다닐 때, 늦은 나이에 노총각 딱지를 뗐다. 그는 LA에 사는 여인과 long distance 연애를 했다. 서너 번 만났을뿐이었지만, 그는 결혼을 결심했고, 얼마 후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남편이 같은 학교 팀 학생들과 결혼식에서 웨딩밴드를 해주었다.

결혼식 후, 2년 정도 지날때까지 그 둘은 신혼생활을 즐겼다. 아이를 일찍 가지려고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아 많이 고민하고 가슴앓이를 하는 듯 했지만 늘 기도했다. 둘의 모습은 참으로 잘 만난 선남선녀였다. 그의 그녀는 한의학 공부를 했었다. 결혼 후, LA에서 SEATTLE로 이사와서 우리 부부와 친하게 어울렸다. 내가 첫 아이 낳고 산후에 몹쓸 병이 들어 고생할 때 일주일에 한 두번 와서 침을 놔주었고, 큰 아이에게 늘 예쁜 선물을 한아름씩 해주었다. 수줍게 큰 아이에게 내밀었던 키티 메이크업 박스는 그 후로 오랫동안 큰 아이에게 행복을 주었다.


미국을 떠날 때, 그의 집에 마지막으로 머물렀었다. 집을 정리하고 출국 날짜까지 삼일 정도 남은 시간 아이 둘과 마땅히 거할 곳이 없었는데 흔쾌히 방을 내주었다. 떠나는 아침, 서투른 요리 솜씨로 아침 먹고 가라고 계란 후라이를 해주던 그녀가 생각이 난다. 우리 가족을 위해 언제나 응원의 기도로 때로는 헌신과 수고로 늘 함께 했던 그 부부. 시애틀을 떠난 후 10년이 지났고 그들에게 세 아들이 생겼다. 부부의 또랑또랑한 짙고 맑은 눈망울을 닮은 세 아들. 작년 가을 즈음, 친구에게 그가 백혈병으로 몇 년 째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곤 깜짝 놀랐지만, 사는게 바빠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져 연락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잘 이겨내겠거니 별일 있겠나 싶었다. 그러고 나서 몇 달 후, 그는 떠났다는 것이다. 그가 떠났다는 소식을 6개월이 지나서야 듣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그리 떠날 것이라 쉬이 상상치 못했다.


정말 할 말을 잃었다. 슬픔이 밀려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을 수 있고, 그 사망을 피할 길이 없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만 믿을 수 없었다. 이제 오십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제 첫 아이가 열살 정도 되었을텐데 아들 셋을 남기고 떠난 그와 남겨진 그녀의 고통스러웠던 슬픔과 절망의 시간들을 생각하니 마음을 무거운 돌로 누르는 듯 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녀의 카톡에 노래가 흘렀다.

Thy will be done.



옆에 함께 있었다면, 그들이 터널을 지날 때 손이라도 잡아주었을텐데 탄식만이 나와 아침에도 점심에도 먹은 미역국이 얹혀버리는 것 같았다. 이제 겨우 대여섯살 밖에 되지 않아보이는 막둥이는 그의 투병이 시작될 때 뱃속에 있었다. 그녀가 남편을 간호하며 세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 했을지 생각하니 깊은 슬픔이 나의 마음을 협곡 깊숙한 곳까지 끌고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의 카톡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무어라 할 말을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딸~~"


남편의 회사에서 한우 소고기를 선물로 주었다. 연휴라고 식구들과 먹으라고 이사님이 주셨다고 했다. 남편의 실직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남편은 좋은 회사와 상사 팀원들을 만났고, 오늘도 무사히 집에 와서 아이들과 둘러 앉아 맛있는 식사를 같이 했다.


우리의 별거 아닌 일상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랐던 소원이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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