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우리 직원 열 명의 점심식사는 약 1.5km 떨어진 한식 뷔페에서 책임진다. 점심 메뉴에 대한 설렘은 무료한 직장 생활의 아주 작은 조각의 대화거리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어느 접점도 없는 사람들이 모여 고군분투하며 회사의 영리를 채워 넣는 시간은 어찌 보면 억울하기도 하고 회사 사장 주머니만 배 불려준다 생각이 들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지만 주제파악을 하고 나면 이만한 곳이 없다 하며 월급에 만족하는 자기 위로를 한다. 그나마 가타부타한 여러 잡스러운 생각들을 잠시나마 떠나게 해주는 곳이 점심식사 테이블이다. 그 한식 뷔페는 사람이 꽤 많다. 주변 경쟁 업체들이 꽤 있지만 유난히도 그 한식 뷔페에 꾸준히 사람이 늘고 있다. 제철에 나오는 싱싱한 나물들과 과일, 맛깔스러운 반찬과 기가 막히게 딱 맞는 국 또는 찌개의 간을 보면 왜 사람들이 많은 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가성비. 요즘 6500원짜리 밥이 어디 있는지. 밥과 국 반찬들까지 이만한 10첩 반상을 그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건 그저 감사할 일이다. 얼마 전, 뷔페는 새 단장을 했다. 식탁과 의자를 새 걸로 바꾸었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주차장에 큰돈을 들여 포장도 새로 했다.
경기도 변두리 어느 시골길에 있는 자그마한 한식 뷔페도 이렇게 재투자란 것을 할 줄 안다. 업체 운영상 증축을 한다거나 이전을 선뜻하지는 못해도 끈적해지고 낡은 식탁과 의자를 바꾼다던가 식당 앞 주차장을 손 본다는 것은 그래도 CEO의 마음이 고객의 불편한 사항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식당은 날로 날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회사 영업 사원이 하는 말을 빌자면 다른 여러 한식 뷔페에서 먹어 봐도 이만한 곳이 없다고 했다. 김밥 한 줄에 4000원이 넘는 시대에 6500원 10첩 반상이라니 거기에 계란이랑 라면도 원하는 대로 끓여 먹을 수 있는 사장님의 다 퍼주는 푸짐하고 푸근한 인심에 가끔 줄 서서 기다림도 감사할 따름이다.
재투자는 공장 노동자들에게 점심을 먹이는 한식뷔페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무엇에든지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기에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물질을 반드시 수반해서 투자해야 한다. 성장은 쉽게 오지 않는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귀동냥으로 들었는데 회사가 10명이 되기까지 10명에서 30명이 되기까지 각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디 예를 들면 그뿐이랴. 여름이 되는 시기라 그런지 날이 좋아 그런 거겠지만 아침과 저녁 뛰는 사람이 꽤 많다. 건강을 위해서 1kg을 줄여야 할 때와 3kg을 줄여야 할 때 노력이 같을 수 있을까. 무게로 따지면 1kg 은 햄 한 덩어리지만 3kg는 비유하자면 수박 한 덩이다. 3등이 1등이 되기 위해 재처야 하는 상대는 1등이 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2등이다. 죽을힘을 다해야 넘어야 하는 목표 점에 다다를까 말 까다. 세상일이 쉽지 않다는 건 다 인정하는데 왜 신앙은 거저먹는 듯 공짜로 받은 사은품으로 여기는 것인지 각성해야 한다.
주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임에는 틀림없다. 거기에는 우리의 공로가 들어가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죄인으로서 공로 따위의 먼지 한 줌도 얹어서는 안 된다. 더러워진 공로로 우리는 다시 깨끗하게 될 수 없다. 거룩함으로 여김 받을 수 없다. 은혜를 받은 이들의 태도는 겸손이어야 한다. 그리고 주체자의 눈을 두려워해야 하며 늘 성실하게 감사해야 한다. 또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이 은혜를 받아 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세상일에도 무언가 위를 바라보는 단계에 도달하고자 할 때, 매출을 더 내야 하는 기업이든 성적을 올려야 하는 학생이든 구독자 수를 늘리고자 하는 유투버든 생산량을 늘리고자 하는 농부 든 지간에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거늘 신앙의 성장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나는 항상 고민을 했다. 아니, 고심을 했다.
"나의 신앙은 어디에 있는가?"
라는 질문을 매 순간 했다. 신앙을 근본적으로 통찰하고자 했던 톨스토이의 책의 제목이기도 한 깊은 내면의 물음과 나는 싸웠다. 기쁨이 없는 날에는 왜 기쁨이 없는지 왜 공허한지 성령충만하지 못한 나 자신의 신앙을 늘 점검했다. 성령 충만함을 입어 뛸 뜻이 기뻐야 하는데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주가 항상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자꾸 의심하며 넘어지는 연약한 나 자신과 조우할 때마다 다시 주께 엎드려 묻고 또 물었다. 남들이 보기에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지만 내 안에는 치열한 매일의 신앙의 성장통을 겪었다. 아침저녁으로 주께 엎드려 기도할 때도 어떤 날은 졸면서 어떤 날은 환희로 때로는 슬픔과 절망으로 하루의 마무리를 주와 함께 하길 원했다.
나는 더 많은 시간을 주께 드리고자 했다. 출근하기 전까지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고 빨래에 청소까지 하고 나가야 하기에 새벽녘에 일어나자마자 삼십 분 정도는 성경을 폈고 그 시간이 꿀같이 달았다. 차를 타고 가면서 늘 말씀을 들었고, 고되고 힘들고 좋지 않은 생각이 들 때는 찬송을 크게 불렀다. 하나님을 더 알기 위해 그리고 신앙의 전수를 위해 내 자녀들을 잘 가르쳐주기 위해 사이버 신학대학까지 졸업했다. 주님의 자녀로 뛰어나고 탁월한 분별력을 갖기 위해 정치, 경제, 역사, 과학등의 서적을 읽고 있다. 내 신앙은 더 깊어지고 더 확장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은혜로 받은 구원이라고 값 없이 여겨서는 안 된다. 본인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교회에서 봉사를 해도 기쁨이 없어요'라고 '왜 제 마음에는 기쁨이 없는 건가요'라고 묻는 성도를 본 적이 있다. 그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십 년 넘게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늘 지각이 일상이었고, 예배 끝나고 운동을 가야 한다면서 운동복 차림으로 주일학교 예배를 준비했고, 심지어 예배를 위한 찬양도 기도도 준비하지 않은 채 아이들 앞에 섰다. 교회의 예산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교회 창고에 넘쳐나는 쓸데없는 소모품으로 낭비했었고, 그런 불성실의 지속을 본인도 모른 체 봉사라는 틀에 갇혀 발전도 없는 시간 낭비를 하고 있었다. 전혀, 본인은 신앙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서 기적적으로 바뀌길 기대하고 있었다. 그와 같은 이가 어디 한둘이겠는가. 신앙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누구도 판단할 수 없는 것이기에 쉽사리 고여있는 물이 되는 경향이 아주 흔하다. 그러나 그 신앙이 고인 물인지 흐르는 물인지 계속 역동성을 갖고 바다로 전진하고 있는 물인지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신앙도 반드시 투자를 계속해야 성장할 수 있다.
시간을 반드시 따로 내어서 성경말씀을 읽어야 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장 17절)고 괜히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기도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만한다. 주께 자꾸 묻고 대화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기도라는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음을 기쁨으로 확인해야 한다.
물질적인 투자를 아끼지 말아라. 자신의 신앙 성장을 위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하고자 하는 물질적인 투자. 역동적으로 변화되는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기 위해 서적을 사고, 정갈한 그리스도인으로 먹고 마시고 입고 이웃을 돕기 위한 노력을 위한 물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에베소서 4장 1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