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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Sep 25. 2024

나에게 공황장애가 왔다

23. 내 이름이 싫은 나

"지금 나 가르치려고 하는 거야?

내! 가! 선생님이었어 블리야. 

가르치는 건 어른이 어린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거야.

어디서 건방지게 어른을 가르치려 들어!"


손님의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해 주문을 잘못 처리하고 손님을 오해하는 상황이 생겨 수정을 해주면 사모님 입에서는 어김없이 이 말이 튀어나왔다.


언제부턴 가게에 가면 답답함이 느껴졌다. 숨이 안 쉬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밖으로 나가 잠깐 찬바람을 맞으며 심호흡을 크게 하고 들어가곤 했다. 내가 주로 일하는 계산대와 식재료 코너 사이에는 커다란 그릴이 있었다. 한 번씩 그릴 주변에서 가스 냄새가 심하게 느껴졌다. 주방장과 직원들에게 얘기해서 혹시 가스가 새는 건 아닌지 점검을 한 것도 수차례, 내가 민감한 건지 유독 나에게만 가스 냄새가 났다.




사정이 생겨 일을 못하게 된 로컬 아이를 대신해 오프닝부터 클로징까지 하루 종일 일을 하게 된 날이었다. 점심 장사 후 정리를 마치고 주방 직원들과 돌아가며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어둑어둑 날이 궂어지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기상변화로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멀리서 우산을 들고 걸어오는 사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사모님은 4시에 도착했고 나는 팁을 정산하기 위해 팁 통을 집어 들었다. 


"하지 마."

"네?"

"하지 말라고."

"팁 정산이요? 지금 4시예요."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젊은 사람이 무슨 돈 욕심이 그렇게 많아?"

"사모님!"

"다 갖고 싶어? 어? 다 갖고 싶어서 그래? 그래 다 가져 다 가져!"


팁 통을 쏟아부은 사모님이 쏟아진 동전과 지폐들을 내 앞으로 밀어낸다.


"다~~~~ 가져. 어? 다 가져."


날이 궂어지자 저녁 손님이 얼마 안 올걸 예상한 사모님은 점심팁을 저녁까지 갖고 있다 본인 몫을 챙기려 한 것이. 정당하게 받아야 할 팁이 탐욕스러운 팁이 되었다.


혼자 오전 쉬프트를 하던 어느 날. 그날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바쁜 날이었다. 현금 결제도 유독 많았다. 금고문을 열고 5불짜리 지폐를 꺼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서 동전으로 잔돈을 거슬러 주며 장사를 했다. 그날 사모님은 내가 퇴근할 시간인 6시가 다 되어 가게로 왔다. 이미 손님들로 가득 찬 가게와 높은 매출에 화색이 돈 사모님에게 잔돈이 부족하다는 걸 알리나는 옷을 갈아입고 퇴근을 했다.


다음날은 딸이 오프닝을 하는 날이었다. 오후 쉬프트였던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한 탓에 한 대 얻어맞은 듯 머리가 묵직하게 아파왔고 몸은 찌뿌둥했다. 평소 마시던 아메리카노에 에스프레소 샷까지 추가한 진한 커피를 사들고 가게로 갔다. 딸이 손을 흔들며 반갑게 맞아준다.


"블리야~~ 어제 엄청 바빴던데. 피곤하지 않았어요?"

"피곤했지요~ 피곤한 날은 왜 잠이 더 안 오는지 모르겠어요."

"맞아요 맞아요. 저도 그래요. 커피 한잔 사줄까요?"

"ㅎㅎ 이미 사 왔습니다."


스케줄상에는 6시부터인데 4시경 사모님이 가게로 나왔다. 그리고는 구석 테이블에 앉아 딸과 한참을 이야기한다. 딸의 표정에 웃음기가 없는 걸로 보아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이야기가 끝나자 사모님이 나를 부르며 밖에서 얘기 좀 하자고 한다. 나는 사모님을 따라 몰 로비로 나가 의자에 앉았다.


"내가 이런 얘기는 정말 안 하고 싶었는데, 한두 번이어야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감이 전혀 잡히지 않는다.


"그동안 돈이 계속 비었는데, 어떻게 생각해?"

"무슨 말씀이세요?"

"틸에 돈이 계속 모자랐는데 스케줄을 보니까 모두 블리야가 일한 날이야."

"그런데요?"

"내가 웬만하면 말 안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어제는 너무 큰돈이 비어서 얘기를 꼭 들어야겠어."

"무슨 얘기를 듣고 싶으신 건지 모르겠어요. 그럼 제가 돈을 가져갔다는 말씀이세요?"


머릿속이 갑자기 까매진다. 사모님 기준에서 도대체 모자란다고 말할 수 있는 돈은 얼마이며 큰돈이라 하면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도둑이 되어 사람들이 드나드는 몰 로비에 앞치마를 두른 채 앉아 심문을 받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 중에 단골손님들이 보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려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그냥 지나간다.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 있다.


"어제 사모님 잔돈 바꾼다고 틸에서 돈 꺼내셨죠? 그거 바꾸셨어요?"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돈을 꺼내."

"제가 인수인계할 때 5불짜리 떨어졌다는 거 말씀드렸고 사모님이 금고에도 남은 게 없다고 은행 가서 바꿔와야 한다고 틸에서 돈 꺼내셨어요."

"블리야 제정신이야? 내가 한 일도 내가 기억을 못 할 것 같아?"

"확실해요. 분명히 20불짜리 여러 장 꺼내서 주머니에 넣으셨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사모님은 앞치마 주머니를 뒤집어 까보이며 흥분해 목소리를 높인다.


"봐! 어디 있어! 이거 내가 어제 입던 앞치마야. 돈이 어디 있어?"

"저 분명히 봤어요. 어느 주머니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분명히 주머니에 넣는 거 봤어요."


그날 저녁 내내 사모님은 내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내가 미쳤어? 그런 것도 기억 못 하게?"


"나 늙었다고 무시해?"


"내가 치맨 줄 알아?"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치매야? 내가 치매야?"


"사람이 정직하게 살아도 모자랄 판에 누구를 치매 환자로 만들어!"


"이러니 블리야 부모가 박복한 거야! 이러니까 블리야는 내 자식들하고는 차원이 다른 거야!"


어지럽고 토가 나올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도 분이 풀리지 않은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책상에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쓰고 있었다. 이제 이런 일로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 얼마 후 사모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집에 와서 어제 입었던 바지 주머니를 보니 돈이 있네~ 블리야 덕분에 돈 찾았어~ 고마워~~'


미안하단 말 대신 고맙다고 하는 사모님의 문자에 소름이 돋은 나는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사모님 앞에서는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다. 필요한 말만 하고 되도록이면 말을 섞지 않으려고 항상 거리를 유지한다. 사모님이 또다시 말로 나를 어떻게 엮을지 어떻게 내 정신을 짓밟을지 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온다.


장사가 잘되고 손님이 많아도 사모님은 늘 그랬다. 전생에 못한 말을 나한테 다 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연일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들을 쏟아낸다. 어느 날은 조카 얘기가 나왔다. 한국에 있는 조카가 유부남과 바람이 나서 망신살이 꼈다는 얘기다. 일면식도 없는 사모님 가족의 사생활은 알고 싶지 않던 나는 내 할 일을 하며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손님이 있든 없든 나를 쫓아다니며 뒤통수에 대고 끊임없이 얘기를 하던 사모님은 또다시 나를 그 이야기 속 상황으로 집어넣는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는 줄 알아? 인생 망치는 거야. 망치려면 자기 인생이나 망치지 왜 남의 가정까지 망쳐. 인생 똑바로 살아 블리야 남의 인생 망치지 말고! 남의 가정 망치고 남의 여편네 가슴에 대못 박고 그럼 어떻게 되는지 알아?"


공부를 그렇게 잘해 아무나 못 들어가는 현대에 입사했다며 귀에 닳도록 동생 자랑을 해대던 사모님이 그 동생의 딸을 두고 내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한테 물을 이야기도 아니었다.


"죽어야 돼. 확 죽어야 돼. 그런 천벌을 받을 사람들은 확 죽어버려야 돼. 알겠어 블리야? 확 죽어버려야 한다고! 내가 그래서 블리야 도와주는 거야. 나중에 나한테 엄청 고마워할 거야. 내가 지금 이런 얘기해 주고 이렇게 해 주는 거."


조카에 대고 천벌을 받을 거라며 죽어버려야 된다고 하는 사모님.  귀에 대고 나한테 죽어버려야 한다는 사모님. 내가 뭘 고마워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모님의 목소리를 듣는 게 힘들어졌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왜 당신에게 고마워할 거라고 한 건지는 그날 밤 알게 됐다. 사모님은 일이 끝나고 모두 퇴근을 하는데 나를 붙잡았다. 본인이 정산을 마칠 때까지 나를 붙잡아두고 바람난 조카딸 얘기를 또다시 시작한다. 난 이미 버스를 놓쳤다.


"내가 왜 블리야 붙잡았는지 알아? 결혼한 유부남들이랑 같이 다니다 혹시 눈이라도 맞을까 봐 그래. 내가 블리야 잘못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거니까 나한테 고맙게 생각해. 이런 거 아무나 해 줄 수 있는 거 아니야. 눈이 멀어서 정신 못 차릴 때는 모르지. 그때는 그게 세상의 전부 같겠지. 나중에 정신 돌아오고 나면 내가 이렇게 막아준 거 고마워할 날이 올 거야. 나이는 괜히 먹는 줄 알아? 이런 게 다 살면서 생기는 지혜고 그래서 어른 말을 들어야 하는 거야."


집에 있다가도

잠을 자려다가도

사모님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귀에 어른거리면 몸서리가 쳐졌다.

내 이름이 너무 싫어졌다.

그 이름으로 불리는 내가 너무 싫었다.




사모님과 함께 클로징을 하는 날이다. 오후 1시에 출근해 점심 장사를 마치고 한가한 시간이 왔다. 오프닝을 한 로컬 아이가 한쪽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곧 사모님이 올 시간이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온 포크를 정리하는데 가스 냄새가 난다.

숨이 차오른다.

가슴이 답답해 온다.

심호흡을 크게 해 보지만 나아지지가 않는다.

심장이 크게 부풀어 오르더니 한없이 쪼그라든다.

쪼그라든 심장에서부터 흉통이 느껴진다.

통증이 심장을 짓누르듯 거세게 조여 온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온 힘을 다해 숨을 쉬어보려 해도 삼켜지지도 뱉어지지도 않는다.

죽을 것만 같다.

이대로 죽을 것만 같다.

밖으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찬 바람을 맞아야 한다.

가슴을 부여잡고 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옮겨보는데 눈앞이 깜깜해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중심을 잡을 수가 없다.

나는 이렇게 쓰러진다.

놀라 달려온 주방 직원이 휘청거리는 나를 붙잡는다.

직원의 팔을 붙잡고 한참을 서 있는다.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

숨이 여전히.. 쉬어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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