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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풍국 블리야 Jun 09. 2024

또 봅시다 하며 떠난 노무현 대통령

13. 20시간의 타임라인

VIP 임석이 확정된 후 장소가 정해지고 벤처코리아 시상식까지 남은 기간은 2주. 추가되는 건 청와대 보고자료와 의전계획뿐만이 아니다. 기존계획은 전면 보강되어야 한다. 현장에 들어갈 장비는 사양을 높여 교체하고 만약을 대비해 백업 장비와 예비전력을 확보해야 한다. 제작물은 특수 방염처리를 하고 행사 시나리오는 초단위까지 정밀하게 다듬어야 다. 참석자와 현장에 투입될 스텝들의 개인정보가 포함된 명단을 취합해 비표 업무도 해야 하는데 비표 제작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곧바로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게다가 장소가 바뀌었기 때문에 참석자들에게 바뀐 행사일자와 장소를 재공지하고, 무대 디자인, 행사장 배치계획, 제작물 설치계획, 현장 인력계획도 전면 수정해야 한다.


비표: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가 참석하는 행사에 사용되는 명찰 또는 식별


코엑스 전시장에는 하중을 견디게 하기 위한 기둥들이 있다. 전시 행사에서 기둥은 큰 지장이 없지만 시상식은 다르다. 무대팀에서 무대 위치를 잡은 행사장 레이아웃을 가져왔다. 통상적으로 무대가 들어가는 위치에 넣은 레이아웃은 군데군데 있는 기둥 4개가 행사장 시야를 가린다.


"실장님, 기둥 때문에 행사장이 여러 위치에서 가려요. 이 레이아웃대로 가면 무대 앞에 바로 기둥이 놓여요."

"무대 크기도 생각해야 하고 기둥은 어쩔 수가 없어요."

"어쩔 수가 없어도 무대가 최대한 노출되게 해야 하고 VIP 경호도 생각해야 해요. 음... 방향을 바꿔보죠."

"방향을요?"

"자 보세요. 위아래에 있는 기둥의 위치와 기둥 바깥쪽 공간을 보세요. 현재 위쪽에 있는 기둥들 뒷공간이 아래쪽보다 더 좁죠? 스테이지를 위에 있는 두 기둥사이로 넣고 무대 양쪽 윙을 기둥 앞으로 빼보세요. 그럼 기둥 두 개가 가려지죠. 영상은 뒤에서 나갈 거니까 스크린과의 거리는 충분히 나와요. 영상이 기둥에 리지 않게 실장님이 스크린 위치랑 윙 각도는 맞춰보세요. 이렇게 하면 행사장을 더 넓게 쓸 수 있어요."


고정관념을 깨고 무대가 세워지는 곳을 반대방향으로 바꿨다. 무대 뒤로 기둥 두 개를 숨기고 그래도 보이는 나머지 두 개 기둥을 피해 좌석을 방사형으로 배치하니 사각지역을 최소화할 수 있다.



행사장 레이아웃을 받은 코엑스로부터 전화가 온다.


"팀장님! 보내주신 배치도 봤는데, 이거 쉽지 않습니다. 이렇게 배치하려면 간격, 각도를 고려해서 세팅해야 하는데, 계획한 시간에 힘들 것 같은데요?"

"차장님! 오디토리움처럼 극장식이면 무대를 보기가 편하지만 인도양홀은 평평한 맨바닥기둥이 있어요. 영상장비가 들어간다 하더라도 천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무대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볼 수 있하려면  방사형으로 가야 해요."

"야간작업인 데다 시간이 빠듯해서 될지 모르겠어요."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드는 차장님이십니다! 이 장소 찾아낼 때도 그랬잖아요. 차장님 아니었으면 못해냈을 일이었어요. 이 행사는 모든 게 모험이에요. 좋은 사례가 될 겁니다."

"에휴, 못 말리는 팀장님! 알겠어요. 인력 최대한 배치해 볼게요."


방사형 좌석배치를 받은 코엑스는 난감해했지만 이내 열의에 불타올랐다. 무슨 일이든 처음은 두려움과 걱정이 뒤따르지만 가능성이 보이고 도전정신이 생기면 어느 때보다 큰 열정이 생겨난다.


설치부터 행사까지 20시간의 타임라인. 직전행사 철거가 끝나고 우리가 행사장을 완전히 점유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단지 16시간. 이 시간 동안 우린 설치를 끝내고 안전점검, 시스템 리허설, 사회자 리허설, 공연팀 리허설, 수상자 리허설까지 마치고 천명이 넘는 참석자들에게 모두 비표를 배포해 자리에 착석시켜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연되는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


직원들 뿐만 아니라 코엑스, 협력사와도 수차례 시뮬레이션을 했다. 청와대와 마지막까지 협의한 사항들을 반영해 현장운영계획에 담았다. 철저한 보안 속에 숨 막히게 준비한 2주가 지났다.


설치날이 되어 직전행사가 끝나가는 시점, 나는 코엑스에 도착했다. 행사 담당자와 먼저 비워줘야 할 곳을 확인하고 철거가 시작되자 경호실 탐지견들이 도착했다. 탐지견이 행사장에 나타나고 위험물을 수색하는 순간이 오면 긴장감이 바짝 든다. 로딩덕에 안전검색을 할 장비가 설치되고 협력사들이 계획한 일정에 따라 속속 도착해 반입을 준비한다. 무대 위치를 잡고 무대 쪽부터 바닥에 파이텍스가 깔리자 코엑스 현장팀에서 의자세팅을 준비한다. 무대와의 간격, 첫 열의 의자 간 간격을 잘 잡아야 방사형이 깔끔하게 나온다. 너무 퍼지지 않게 너무  않게 여러 줄의 의자를 깔아놓고 간격과 각도 조정을 수차례 한 뒤 본격적으로 의자가 깔리기 시작한다.


밤을 꼬박 새워 설치를 마치고 스텝들이 모두 행사장을 비우자 현장을 봉쇄한 경호실이 2차 안전점검을 시작한다. 그 시각 나는 전시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사무국에서 현장을 바라보며 서있다. 함께 있는 경호관들, 코엑스 담당 차장 모두 무대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나란히 뻗어있는 의자들, 환상적으로 세팅이 된 행사장을 보며 뿌듯함에 가슴이 벅차온다. 기어코 만들어냈다. 이제 리허설을 잘 마치고 참석자들을 제한된 시간에 모두 착석시킬 일만 남았다.


리허설을 앞두고 현장 경호팀이 도착했다. 청와대 배지를 달고 깔끔하게 머리를 빗어 넘긴 건장한 체격의 경호관들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자 이젠 누가 봐도 대통령 행사임을 알 수 있다. 로비에 안전검색대와 비표데스크가 설치되고 행사장 입구까지 가이드봉이 둘러진다. 리허설을 위해 먼저 도착한 연출팀, 사회자, 공연팀, 수상자들이 비표를 받고 행사장으로 들어간다.


리허설이 한창 진행 중인 가운데 VIP께서 어떤 동선으로 도착하실지 전달받은 나는 핵심 인력 몇 명에게 내용을 공지한 후 어떻게 사인을 주고받을지 다시 한번 확인한다. 마지막까지 보안은 철저해야 한다. 수상자 리허설까지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고 장내 정리가 시작된다.



핸드폰과 무전이 먹통이 됐다. VIP께서 도착하신다는 신호다. 이어 경호관이 VIP의 위치를 내게 알려온다. 로비에서 몇몇 기업들의 혁신 기술을 둘러보신 후 행사장 입장을 앞둔 시점, 연출팀과 사회자에게 사인이 들어간다. 사회자의 힘찬 오프닝에 이어 VIP 입장 멘트가 나가자 음악이 깔리고 환한 웃음을 머금은 노무현 대통령이 행사장에 입장하신다. 컨벤션기획사로서 나는 이 순간에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준비해 온 모든 게 현실이 되는 시간, 축제의 시작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로 행사는 시작된다. 이어 준비된 식순이 이어지고 대통령께서 무대에 올라 수상자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훈장을 달아주고 축하를 해주신다.



친수 시상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이 벤처산업 탄생 10주년과 미래 10년의 성장을 다지는 비전 선포식에 임하신 후 벤처기업인들에게 격려사를 해주신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 개발이 이뤄져도 진취적이고 모험적인 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는 중소•벤처기업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벤처생태계 조성에 역점을 두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벤처기업을 우리 경제의 중심에 세우고 세계 시장을 향해 힘차게 도전합시다. 이를 위해 정부도 최선을 다해 지원해 나가겠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40여분의 임석 시간을 마친 대통령은 앞열에 위치한 참석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행사장을 떠나신다. 영송 준비를 하기 위해 출입구 쪽에 먼저 위치해 있던 나를 발견한 노무현 대통령은 내 가슴에 스텝 비표가 달린 걸 보고서는,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년에 또 봅시다."


하며 가볍게 목례를 해주고 행사장을 떠나셨다.


VIP께서 떠나신 후 통신이 풀렸다. 이제부터는 남은 행사를 마무리해야 한다. 무전으로 사인을 주고받으 나머지 수상자들에 대한 시상이 이어진다.


얼마 후 청와대로부터 전화가 쏟아진다.


"팀장님! 완벽했습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남은 행사 마무리 잘~하세요."


"팀장님! VIP께서 아주 흡족해하십니다. 내년 행사도 기대하시는 것 같아요."

"안 그래도 가실 때 내년에 또 보자고는 하셨어요."

"하하 그러셨습니까? 모든 상황이 쉽지 않았는데 잘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또 뵙겠네요."


시상식이 모두 끝나고 처음으로 대통령을 모신 협회는 날짜와 행사장이 바뀌어서 준비에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행사가 잘 끝나자 박수를 치며 서로 수고했다는 말을 나눈다. 갑의 품격을 갖춘 사업팀장과 실장이 한걸음에 와 애정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함께 모든 수고를 같이한 사업팀장은 감격에 벅찬 표정으로 깔끔하게 악수를 청해 온다.


"팀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평소에도 친근한 말투로 삼촌같이 대해주는 실장은,


"블리야 팀장님, 아유~ 이뻐죽겠어~~"

"ㅎㅎ 수고 많으셨어요 실장님. VIP께서 가시면서 내년에 또 보자고 하시는데요?"

"정말? 큰일 났네 이거 허허.."




이후 대통령 행사가 연이어 들어왔다.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하게 된 행사뿐만 아니라, 행사 총괄자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자 청와대에서 부른 행사까지 나는 많은 대통령 행사를 했다.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에 컨벤션기획사로서의 나를 정점에 오르게 한 연이은 VIP 행사.  경력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빼놓을 수도 잊을 수도 없는 분이다.


건설의 날 60주년 행사에 오신 노무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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