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존재에 걸맞은 이름은 혼이다
사건명 : 예쁜니엄마이끼 개명허가 신청
이끼변호사 등장
세상에 단 하나의 직업 이끼변호사
낮은 곳 숨소리를 변론으로 담아내니
마크로 백미리 렌즈 푸른 법전 펼쳐지네
예쁜니의 탄생
남의 나라 껍데기 말 미련 없이 벗어던져
허가받은 예쁜 이름 제 빛깔로 살아나니
억눌린 초록 생령들 제 이름에 춤을 추네
1. 독백: 어느 날 갑자기 변호사가 되었다
이끼 변호사? 스스로 내뱉고도 ‘픽’ 웃음이 나온다. 세상천지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 변호사 변에도 닿을 생각조차 없고, 그럴 능력조차 없는데, 지난 며칠간 나의 화두는 온통 이끼 변호사였다. 꿈이었을까? 아니면 양치식물 원고에 이끼를 밀어 넣으려는 억지스러운 상상이 만든 해프닝일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분명한 ‘이끼 변호사’다. 한라산 고지대에서 마주한 그 경이로운 생명에게 굳게 약속했기 때문이다. 도감 외에는 흔적조차 찾기 힘든 그 귀한 이끼를 발견했을 때의 전율이 아직도 생생한데, 어렵게 찾아낸 이름이 고작 ‘배루카엄마이끼’라니. 자애로운 ‘엄마’와 정체불명의 ‘배루카’가 주는 이질감은 분노가 되어 나를 깨웠다. ‘배루카’는 결국 일본을 거쳐 온 소리의 찌꺼기였다.
나는 버들참빗을 논하며 이름의 고귀함을 성토했고, 그 과정에서 배루카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그러나 대안 없는 비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 며칠을 끙끙대며 고민한 끝에 나는 결심했다. 이끼의 억울함을 씻어줄 변론을 준비하기로.
2. 변호사 준비사항: 예상 질문과 반격의 논리
명명자 측의 예리한 공격을 예상하며 반론을 찾으며 머리를 싸맸다.
공격 1: “‘배루카’는 학명의 우리식 발음이다. 우두풀(Woodsia) 같은 사례도 있지 않은가?”
반격: “우두풀의 ‘우두’는 학자의 이름(고유명사)이지만, ‘배루카’는 형태를 뜻하는 일반 명사다. 이를 일본식 발음 그대로 차용한 것은 우리 언어의 자존심을 버린 일이다.”
공격 2: "정명 뒤에 괄호로 "큰이빨엄마이끼"라 넣었고, “‘이빨’은 문학에서도 흔히 쓰는 표현이다. 문순태의 ‘피아골’에서도 젊은 여성을 묘사할 때 쓰지 않았나?”
반격: “문학적 장치와 공식 명칭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피아골의 ‘이빨’이 인물의 원시적 생명력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장치라면, 한라산의 이끼는 아기를 품은 평화로운 어미의 모습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했다. 엄마, 큰엄마, 털엄마로 이어지는 다정한 이름들 속에 ‘이빨’이라는 비수를 꽂는 것은 비단결 같은 가족사진 위에 거친 낙서를 하는 꼴이다.”
비판의 끝에는 책임이 따른다. 배루카를 이길 무기, 이끼의 결각과 운명처럼 연결될 이름. 화두처럼 붙들고 늘어진 끝에 ‘유레카’를 외쳤다. ‘예쁜니엄마이끼’.
3. 최종 변론: 존재에 걸맞은 이름을 얻는 선언
“재판장님! ‘배루카’는 우리 국민 그 누구의 가슴에도 닿지 못하는 죽은 언어입니다. 뜻도 모를 소리를 이름이라 붙인 것은 식물을 사랑의 대상이 아닌, 차가운 연구의 대상으로만 보았다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언어적 직무유기’입니다!”
“또한 ‘이빨’이라는 단어를 보십시오. 짐승을 뜻하거나 사람을 낮잡아 부를 때 쓰는 이 거친 단어를 어찌 숭고한 엄마의 이름 옆에 두십니까?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싸우는 소설 속 인물과 한라산의 평화로운 이끼를 같은 잣대로 보는 것은 문학에 대한 오해이자 식물에 대한 실례입니다.”
“판결을 위한 제언을 드립니다. 이름은 존재의 혼입니다. 잘못된 이름으로 놀림당하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듯, 이끼의 하소연을 들어주십시오. 만약 선생님이 숲에서 ‘예쁜니엄마이끼’라고 말한다면,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날 것입니다. 이 따뜻하고 직관적인 이름 "예쁜니엄마이끼"를 허락해 주십시오!”
4. 양치식물 독자에 대한 제언: 왜 이끼 이야기를 하는가
"지난 글에서 저는 '배루카'라는 이름의 폭력성을 버들참빗을 통해 고발했습니다. 우리 땅에서 자라는 생명에게 타국의 발음을 억지로 씌운 그 무신경함에 대해 매서운 채찍을 들었지요. 아마 독자 여러분은 나의 그 격렬한 비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의문을 가졌을지 모릅니다. '왜 양치식물 이야기의 지면을 이토록 많이 할애하여 이끼에 대해 말하는가?'
비판은 쉽습니다. 그러나 대안이 없는 비판은 허공을 맴도는 메아리에 불과하지요. 저는 이끼 변호사로서, 단순히 명명자의 잘못을 꾸짖는 데 머물지 않기로 했습니다. 억울한 이름을 가진 이끼에게 그 존재에 걸맞은 '진짜 이름'을 찾아주는 것, 그것이 비판을 시작한 자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양치식물의 곁에서 함께 숨 쉬는 이 작은 존재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 또한, 제가 쓰는 양치식물 이야기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고사리와 이끼를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학명을 외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작은 생명들을 어떻게 우리 삶 속으로 들여오고 즐길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일본의 학자가 말했듯,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내 방식대로 바꿔 불러보는 것도 재미있는 숲 속 공부입니다. 그것은 식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의 이름이 평생 이해할 수 없는 외래어나 비하 섞인 단어로 불린다면 어떻겠습니까? 이제 버들참빗을 넘어, 한라산 높은 곳에서 만난 억울한 영혼을 달래주려는 이끼 변호사의 투혼이 담긴 '예쁜니엄마이끼 개명허가신청'의 재판장으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5. 詩: 이끼 변호사의 선언 — 예쁜니엄마이끼에게
한라산 높은 곳, 구름의 끝자락에서
아기를 품듯 잎을 오므린 너를 보았다
귀한 인연이라 반가워 셔터를 눌렀으나
집에 돌아와 마주한 네 이름은 차가운 형벌이었다
배루카, 입에 붙지 않는 타국의 옹알이
큰이빨, 엄마의 품에 어울리지 않는 짐승의 단어
누가 너의 고운 결각을 그리 험하게 불렀느냐
이름을 찾을수록 내 속은 검게 타들어 갔다
통영의 재활길을 달리며 나는 결심했지
정체 모를 이름에 갇힌 너를 위해
기꺼이 법정에 서는 변호사가 되기로
녹음기 속에 울분 섞인 변론을 채우며
너의 억울한 사연을 재판장에게 호소할 것이다
재판장님, 보십시오.
어찌 아기를 닮은 저 예쁜 이를 가진 엄마에게
배루카란 이해할 수 없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까
배루카는 우리 산천을 짓밟은 일본의 껍데기 말인 것을
재판장님, 보십시오.
어찌 아기를 안은 저 지극한 어미의 살결에
날 선 이빨이라는 비수를 꽂을 수 있습니까
말은 혼이고 상식이며, 부르는 이의 마음인 것을
끙끙대며 앓던 밤을 지나고 눈을 떴다
라틴어의 돌기를 다정함으로 번역해
짐승의 이빨 대신 아이의 하얀 미소를 닮은
‘예쁜니’라는 새 옷을 너에게 입힐 준비를 한다
이제 너는 ‘예쁜니엄마이끼’
내가 너의 변호사가 되어 승소할 것을 약속한다
언어의 격을 맞추고, 학명을 정서로 번역하니
아이들도 단번에 이해하는 예쁜 이름이 되었다
더 이상 이름 때문에 숨죽여 울지 마라
한라산 바위틈, 네가 가진 그 환한 미소가
이제는 가장 너다운 이름으로 불릴 날을 기다리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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