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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의 브런치 Nov 15. 2024

당신의 기억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토니

당신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은 온전한가요?

그를, 그녀를 제대로 알고 계신가요?


당신도 토니처럼 기억을 제멋대로 왜곡시킨 건 아닐까요?


알프레드 아들러는 말했어요.

기억에는 은밀한 목적이 있다고.


그 목적이 관계 속에서는  나 살고 보자! 일 수도 있다는 것.


작가 줄리언 반스는 토니라는 우리와 닮아있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왜곡한 기억이 나와 관계된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 살 수밖에 없기에 내가 내린 단편적인 판단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고, 그것이 축적되면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불행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설령 불가능하더라도 타인에 대해 함부로 평가 내리고 기억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소설입니다.



은퇴한 노신사 토니는 어느 날 첫사랑의 어머니로부터 얼마의 현금과 옛 친구의 일기장을 유산으로 상속받는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됩니다.

(기막힌 반전이 존재하는 소설이기에 이번 편은 스포를 최소로 할 예정입니다.)



기억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주관적 편집이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특정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그 사건의 객관적 사실보다 그들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이 해석은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나 신념에 맞춰 선택적으로 작용합니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의 현재 상황과 목표에 맞는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하며, 이러한 기억은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토니는 말합니다.

나에겐 일종의 자기 보존 본능이 있다.

당시에 일어난 일에 대해 내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헤어진 후에야, 베로니카는 나와 잤다'라는 말은 재고의 여지없이 '나는 베로니카와 잔 다음, 차버렸다'로 바꿀 수 있다.


토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그 기억을 왜곡한 것이죠.




기억은 의도된 적응 과정이다.


가장 괴상한 부분은 이렇게 조작한 나의 역사를 마음 편히 입에 올렸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나 스스로에게 끝도 없이 그렇게 말해왔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베로니카와 사귄 것을 패배라 보았고, 기록에서 삭제해 버렸다.


우리는 토니의 이런 기억 왜곡을 비판할 수 있을까요?


토니뿐 아니라 우리는 모두 자기 보존 본능이 있죠.

인간은 자신이 나약하고 열등하다는 느낌을 오래 견디지 못합니다. 저뿐 아니라 보편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 언제나 우선인 일이겠죠.


그래서 우리의 기억은 사실의 기록이 아닙니다.

오히려 주관적인 문학에 가깝죠.


베로니카와 사귀던 시절 베로니카의 집에 초대받아 며칠의 시간을 보낸 토니가 기억하는 그녀의 가족들에 대한 인상은 얼마나 사실에 닿아 있을까요?


베로니카와 헤어진 후 자신의 친구 에이드리언에게서 받은 편지에는 베로니카와 자신이 연인이 되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토니는 에이드리언에게 답장을 하죠. 이 모든 기억들은 얼마나 정확할까요?


토니는 베로니카뿐 아니라 에이드리언에게도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느낀 것은 아닐까요?


그런 열등감과 분노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기억의 왜곡, 또 그들에 대한 토니의 반응은 그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우리는 이 세상을 혼자 살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관계'라는 것을 맺고 있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어요.


언제나 내가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기억이 이토록 나 자신을 보호하거나 목표를 위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 더 성숙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의 다른 기억으로 크고 작은 분쟁은 늘 우리 주위에 존재합니다. 기억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기 전 한번 더 곱씹어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혹여 자신의 기억이 사실인양 끈질기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무엇을 기억하는지를 통해 무엇을 목표하는 사람인지 알아차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목표와 긍정적인 태도는 어떤 기억을 축적시킬까요?


기억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왜 긍정적인 사람에게 좋은 기억이 많은지, 목표를 가진 사람에게 그에 부합한 것들이 많이 축적되는지 알겠더군요. 옳고 좋은 태도나 목표를 갖게 되면 현재의 경험은 내가 의도한 대로 해석되고 그 기억이 우리 안에 축적될 것입니다.


책의 한 문장처럼, 저는 살아갈 날이 줄어들수록 헛되이 살고 싶지 않아요.

작가님들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남은 생을 사람들과 삐걱거리거나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진 않아요.

인생의 엉킨 실타래가 있다면 풀고 싶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도 싶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열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작가 줄리언 반스의 다른 책에서 몇 줄 남깁니다.


우리는 서로의 기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지만, 우리가 잊은 것에 대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건 아닐까? 설령 그것이 기술적으로 더 어렵거나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해도?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마지막으로,

바로 지금이 당신의 기억을 뒤돌아 볼 시간입니다.

내가 가진 기억의 목적은 무엇인지, 그래서 내가 가진 문제는 무엇인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더 잘 알아챌 수 있는 단서는 없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꼭 가져보세요. 부끄러울지라도 분명 다른 내일이 옵니다.


(소설은 당신의 삶을 바꿔줄 수 있는 열쇠입니다.

한 발 나아가는 소설 읽기를 원하시면 지금!

제 손을 잡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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