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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호수라면

일흔여덟 번째 시

by 깊고넓은샘


언어가 호수라면



언어가 크나큰 호수라면,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 거대함이 있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곳은

삼차원 좌표로 지정할 수 있다지만,


세상의 모든 운동은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지만,


수는 연속적이지만,

언어는 분절적이다


어린 날의 달콤한 기대와 희망에

현실의 씁쓸함이 스며들면

그냥, 달콤 쌉싸름한 맛이 된다


새벽녘 자작나무숲의 아련함을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듯이


인생의 비루함과 나른함,

그 안에서 발견하는 찰나의 희망을

시인의 언어는 온전히 담을 수 없다


렌즈 커버를 덮고,

두 눈으로 즐기자

폐 속 가득히 공기를 마시자


언어가 채우지 못한 빈틈은

그 드넓은 여백은, 그냥

각자의 상상력에 맡기도록 하자


어쩌면

이게 더 맞는 건지도 모른다


비어있는 퍼즐 조각만큼

매혹적인 건 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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