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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Dec 20. 2024

쉬어가기) 이런저런 마음

12월도 이제는 열흘쯤 남았다. 낮에는 한해를 마감하는 달력을 보면서 괜스레 지나간 달을 들췄더랬다. 지난봄이 떠오르고, 여름... 그리고 어떻게 갔는지 모를 가을을 지났더니 어느새 겨울에 와 있다.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여전하다 싶었는데 마음도 이제 늙어가는 걸까. 해마다 이맘때면 들던 이런저런 상념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늘 쫓기듯 허겁지겁 살았지만, 12월이면 있는 거 없는 거 다 가져와 명상에 잠기고 그랬던 것 같은데.


하긴, 45년 만의 비상계엄을 겪은 직후니 한해를 조용히 마무리하긴 애당초 글렀는지도 모르지. 포털이나 유튜브를 보면 연일 난상토론이 이어지는데 경건한 한 해는 개뿔-  인디언들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침묵하는 달', '무소유의 달'이라 불렀다던데, 지금의 우리는 '가장 말이 많은 달'을 지나는 중이니 아이러니긴 하다.


*


종이딱지, 고무딱지, 구슬... 요즘은 문득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이야 남부 쪽은 눈이 별로 안 온다지만, 어릴 때만 해도 눈이 자주 왔었더랬다. 자다가 한밤중에 오줌 누러 밖에 나갔는데 소복하게 쌓인 눈으로 환했던 밤, 그 분위기가 어찌나 몽환적인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이유도 없이 마음이 서걱인다.


밤새 쌓인 숫눈을 보려고 날이 밝자마자 밖으로 나갔던 거 하며, 그 위에 햇살이 비칠 때 반짝하고 아주 연한 무지개를 그리던 일...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느라 그림을 그리고 반짝이를 붙이던 시절, 꽁꽁 얼었던 얼음이 봄이 올 때면 투명하게 빛나던 그때가 왜 그리도 그리운지. 여차저차 나는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냉방인 집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베란다에서 물끄러미 풍경을 보는 사람이 되었다.



*


시간은 여전히 흐를 것이고 흰머리에 주름이 늘어 영락없는 노인이 될 어느 날을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색과 풍경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여전히 그 어린 시절을 품고 그리워만 할 것인지, 아니면 지나온 모든 시간을 오롯이 글로 써나갈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또 마음이 서늘해진다.


차라리 언제 죽을지 모르고 온갖 패악질을 부리는 일부 정치인을 보면서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침묵하지 않는 그들의 12월이 오히려 위안이 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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