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도 이제는 열흘쯤 남았다. 낮에는 한해를 마감하는 달력을 보면서 괜스레 지나간 달을 들췄더랬다. 지난봄이 떠오르고, 여름... 그리고 어떻게 갔는지 모를 가을을 지났더니 어느새 겨울에 와 있다.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여전하다 싶었는데 마음도 이제 늙어가는 걸까. 해마다 이맘때면 들던 이런저런 상념도 예전만 못한 것 같다. 늘 쫓기듯 허겁지겁 살았지만, 12월이면 있는 거 없는 거 다 가져와 명상에 잠기고 그랬던 것 같은데.
하긴, 45년 만의 비상계엄을 겪은 직후니 한해를 조용히 마무리하긴 애당초 글렀는지도 모르지. 포털이나 유튜브를 보면 연일 난상토론이 이어지는데 경건한 한 해는 개뿔- 인디언들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침묵하는 달', '무소유의 달'이라 불렀다던데, 지금의 우리는 '가장 말이 많은 달'을 지나는 중이니 아이러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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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딱지, 고무딱지, 구슬... 요즘은 문득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지금이야 남부 쪽은 눈이 별로 안 온다지만, 어릴 때만 해도 눈이 자주 왔었더랬다. 자다가 한밤중에 오줌 누러 밖에 나갔는데 소복하게 쌓인 눈으로 환했던 밤, 그 분위기가 어찌나 몽환적인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이유도 없이 마음이 서걱인다.
밤새 쌓인 숫눈을 보려고 날이 밝자마자 밖으로 나갔던 거 하며, 그 위에 햇살이 비칠 때 반짝하고 아주 연한 무지개를 그리던 일...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드느라 그림을 그리고 반짝이를 붙이던 시절, 꽁꽁 얼었던 얼음이 봄이 올 때면 투명하게 빛나던 그때가 왜 그리도 그리운지. 여차저차 나는 이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냉방인 집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베란다에서 물끄러미 풍경을 보는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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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여전히 흐를 것이고 흰머리에 주름이 늘어 영락없는 노인이 될 어느 날을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좋아하는 색과 풍경들,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여전히 그 어린 시절을 품고 그리워만 할 것인지, 아니면 지나온 모든 시간을 오롯이 글로 써나갈 수 있을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또 마음이 서늘해진다.
차라리 언제 죽을지 모르고 온갖 패악질을 부리는 일부 정치인을 보면서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음에도 침묵하지 않는 그들의 12월이 오히려 위안이 되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