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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만 Dec 06. 2024

문학상) 꽃은 뱀을 몰고 온다/ 김미나

꽃은 뱀을 몰고 온다고 하였다

그때 나무는 아득히 묻힌 땅 속의 긴 폭풍을 가지고 왔다

소용돌이치면서 피어나는 것은


꽃이 아니라 꽃살문에 비치는 햇볕


흙 속에 허물을 길게 벗어두고 튀어 오르는 뱀을,

우리는 구불거리는 나무라고 불렀는데

가지 끝에 매달린 그늘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데


나무는 두근거리는 비을을 안은 채

대가리로 공기와 흙을 밀어낸다, 그때

꽃은 독을 질질 흘리고

입에선 한 점 봄이 질질 새어나오고


툭 불거진 뱀을 보고

그만 발자국은 꽃잎을 밟고 혼비백산,

산안개 자욱했던 봄도

발이 달려 있는지

발톱만큼, 개미걸음만큼

꽃이 비늘을 몰고 오듯이

걷고 있었다

꽃을 먹는 것들이 사는 마을

지붕 너머 쓰러진 사람들 두고

불쑥 떠오른 구름인 줄 알고

딴청 피우듯이 새소리를 찔러 넣고 다녔다          



2019 제18회 김포문학상 수상작     




아래는 심사자인 안도현 시인의 심사평입니다.


김미나(경기 구리)의 「꽃은 뱀을 몰고 온다」는 전통적인 서정이라고 부를 만한 세계를 자신만의 기법으로 차분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후반부로 가면서 원래 제시했던 꽃과 뱀과 나무의 이미지를 변주하는 능력도 만만치 않다. 삶의 구체성에 더 렌즈를 들이대보라는 말을 하면 욕심일까.




이 시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만 해도 시의 세계에 막 발을 들였을 때라 해석에만 집중했는데요. 가령, 동면에서 깨어난 뱀과 꽃이라든가, 혹은 나무와 뱀의 이미지가 갖는 원형적인 상관관계를 살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좀 지나자, 내가 이 시를 좋아한 이유를 알게 됐는데 그건 바로 몇몇 표현법에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대가리로 공기와 흙을 밀어낸다’라거나, ‘꽃은 독을 질질 흘리고/ 입에선 한 점 봄이 질질 새어나오고’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새소리를 찔러 넣고 다녔다’라는 표현들이었죠.


머리가 아니라 ‘대가리’라고 쓴 것을 보고 나도 다음에 이렇게 써봐야겠다 싶었거든요. 그만큼 어감이 주는 효과가 상당했습니다. 그냥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질질 새어나온다는 것도 그렇고요. 그러다 보니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찔러 넣고 다녔다는 표현에서 뿅 갈 수밖에요.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표현은 화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에로틱한 장면을 연상시키죠. 대가리에서 좆대가리를, 질질 흘린다는 표현에서 질질 싸는 쾌감을, 찔러 넣고에서 삽입의 아찔함 같은. 마치 서정주 시인의 작품 <대낮>의 '붉은 꽃밭'에서 여성의 성기를 떠올리고, '능구렁이 같은 등어릿길'에서 남성의 성기를 떠올리다 보면 코피 두 손에 받으면서도 죽음과도 같은 관능을 쫓는 시인의 젊은 모습이 그려지는 것처럼, 그리하여 마침내 '밤처럼 고요한 끓는 대낮'에 온몸이 달아 오르는 것처럼...


안도현 시인은 심사평 말미에서 삶의 구체성에 더 렌즈를 들이대보라 말했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만약 이 시에 삶의 구체성을 더 가미하면 작정하고 끼어드는 모양새가 되어 작품은 더 만들어질지 몰라도 시적인 맛이랄까요. 그런 느낌은 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칫하면 자신만의 기법이 사라지고 전통적인 서정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고요.


다만, 마지막 연 ‘꽃이 비늘을 몰고 오듯이/ 걷고 있었다’ 이후에 연을 띄우는 것도 생각해 봄 직하네요. 연을 띄우지 않아선지 내용이 급작스럽게 마무리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22행으로 이뤄진 시에서 ‘~다’로 끝나는 행이 4번만 있다는 점에서 어미의 변화도 시를 감상하는데 효과적이었던 것 같네요. 대개 문장으로 보자면 시가 1행~3행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인데 이 시는 한 문장의 호흡이 꽤 깁니다. 3~5연에서 연을 나눈 건 그 호흡이 길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주제가 자유인 문학상은 전에도 말했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서정성과 현대성의 딱 중간쯤으로 쓰면 좋습니다. 이때 명심해야 할 것은 현대시적으로 보이려고 어렵게 쓰면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독자들이 알아야 합니다. 다만, 와- 표현 좋네. 이런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 세우기처럼 알고 나면 별것 아닌데도 누구나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그런 표현이면 좋습니다.




기왕 말이 나왔으니, 이쯤에서 다시 한번 정리하고 넘어갑시다.     


신춘문예 – 서정성 40%, 알 듯 모를 듯한 멋진 표현 40%, 이해 안 가는 현대시적 표현 20%


문학상 – 주제가 있는 경우 : 쓰고자 하는 소재에 집중해서 서정적으로 쓰는 게 유리.

주제가 없는 자유 주제일 경우 : 조금 과장해서 알 듯 모를 듯한 멋진 표현 100% 


문예지 – 알 듯 모를 듯한 표현 3~40%, 쉽게 이해 안 가는(낯설게 하기) 표현 6~70%


퍼센트로 표시한 게 좀 우습긴 해도 대개 이런 특성을 가졌구나, 알고 쓰는 거랑, 모르고 쓰는 거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세상 천지에 아무도 없습니다. 꾸준히 쓰다 보면 실력은 늘기 마련이니 지치지 마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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