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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낀 자 01화

승진대상이래요.

또요...

by 오 코치
승진대상이래요.
또요...


또요.jpg ©Williams Oscar A.Z. All rights reserved.



“일 년 동안 거절했어요. 그런데 제 상사가 너무 해보라고 하셔서 최근에 알겠다고 하고 맡았어요.”


그러고는 사 부장은 푸욱 한숨을 내쉰다.


실무가 재미있고, 보람도 있고, 인정도 잘 받는 중이라 만족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했다. 본인만 잘 해내면 결과물과 성과도 정직하게 나왔으니 더욱 그랬다. 게다가 또래 직급의 동료들보다 나이도 조금 어렸다. 승진에 대한 열망보다는 매일 만족스러운 지금의 상황이 좋다고 했다.


말을 조리 있게, 간결하고 명료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질문 또한 얻고자 하는 답의 방향을 잘 정리해서 물었다. “잘” 들어야 하는 코치의 입장에서는 매우 고마운 고객이다. 회사의 업무도 이렇게 하리라 미루어 짐작된다.


그러니 사 부장의 뛰어남을 지켜본 상사로서는 승진을 시켜 관리자로 일을 맡기고 싶지 않을 리 없다. 나 같아도 어르고 달래고 구워삶아서 승진을 시켰을 거라고 여러 번 생각했다.


(뭐, 그건 그 상사의 입장이고…)


“네에. 사 부장님. 그 한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신 건가요?”


“아. 제 한숨. 에휴.”


또 한숨이다. 어지간히도 싫은가 보다.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본인이 해야 할 일을 잘하는 팀원이 몇 있고, 그냥 중간 어디쯤 되는 팀원이 몇, 그리고 손이 많이 가고 불평 많고 설명을 해줘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팀원이 몇 있다고 하며 이런저런 일화들을 얘기했다.


“네에.”


(오늘은 서론이 기네.)


오늘 사 부장은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그냥 말을 위한 말을 하고 있었다. 본인도 말이 길어지는 것을 느꼈는지 잠시 멈췄다.


(하, 감사해라.)


내가 가만히 있다는 건 시간을 배려하고 있다는 것을 사 부장은 안다. 정리 중인지 큰 눈을 꿈벅꿈벅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요, 코치님… 다음 주에 승진 대상자 워크숍이 있어요. 다들 제가 누군지 알아요. 부장 단지 얼마 안 됐는데, 바로 이사 승진 대상자라는 것도요.”


오, 워크숍. 좋은 시간 보내고 친분도 쌓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도 찜해보고. 좋은 기회… 가 아니라, 뒤통수가 뜨끈해지고 옆에서 흘겨보는 눈총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게다가 사 부장 자신이 공평한 기회로 승진 대상자가 아니라며 동동거렸다.


본인이 여자이기 때문에 성별 쿼터를 채우기 위해 굳이 이름이 올려졌다는 것이다. 몇 년째 승진 대상에서 미끄러지거나 탈락된 나이와 연차가 꽉 찬 ‘남성’ 후보들을 제치고 올라갔으니 말이다. 그뿐이랴, 그 직급의 동양 여성은 사 부장 하나였다. 그들 속에서 그녀는 마이너 중의 마이너, 말 그대로 아싸였고 왕따였다. 일 잘하고 만족하며 평화롭게 지내던 자신을 굳이 승진시킨 상사 탓이었다. 게다가 급속 승진 대상이라니.


상황으로는 기죽을 만하다.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가 네트워킹하고, 미팅하고, 마찰을 줄여 협업을 이끌어내고, 관리해야 할 다양한 팀원의 숫자도 더 늘어날 미래가 코앞이니, 오만 가지 감정과 생각이 난리가 나는 것도 당연했다.


“사 부장님, 여러 생각이 드시겠네요. 심난하시기도 하고요. 그런데요… 왜 근자감이 느껴지는 걸까요? 혹시 제 착각이라면 알려주세요. 이거 뭐죠?”


“어? 엇?”


언제나 그렇듯, 고맙게도 그녀는 본인이 알아차려 버린 답을 빠르게, 명료하게 말했다.


*** 본인 생각의 발목을 잡고 있던 진짜 이유;
마이너 조건으로 승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짜증 났어요. 아닌 거 알면서도 남의 시선이 뭐라고…


*** 감정과 팩트 분리;
저도 제 일 능력이 좋은 건 알고 있는데요. 겸손하고 나대지 말라는 부모님 말씀의 영향도 있어요. 겸손하지 않은 게 아니라, 조건이 되고 기회가 되어서 조금 빨리 승진 기회가 온 건데 말이에요.


*** 전진 과정에서 영향을 끼치는 장애물 인지;
관리자가 되면 변심했다느니, 본인들 이해 안 해준다느니… 이래도 욕, 저래도 욕 듣죠. 제가 틀리거나 잘못한 게 있으면 인정하겠는데, 아닌 상황에서 그런 말이 들려오면 괴로웠어요.


*** 통제 불가 & 통제 가능 내용을 분리해 실행 정리;
모두를 찾아다니며 설명할 수도 없잖아요. 그건 통제 불가. 저는 잘하고 실력 쌓는 데 집중할래요. 오늘 만족하고 즐거울래요.


팀원 관리, 높은 직급 관리자들과의 소통, 변수가 많고 예측하기 어려운 프로젝트 운영… 어두운 터널 속에서 터널 끝 불빛을 향해 손으로 발로 더듬으며 나오는 중이다. 넘어지기도 하고, 상처도 나고, 축축한 돌바닥에 주저앉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다. 터널 안에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 적어도 내가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터널이 그렇게 길지도, 칠흑같이 어둡지도 않다.


그냥 굴다리 정도랄까? ^ ^


문제를 인지하고, 원하는 방향의 답을 향하고, 장애물을 처리하고, 실행에 옮기고, 얻을 것은 확실히 얻으며 성장하는 그녀의 자동 사고 시스템을 보며 나는 두 손 높이 들어 Horay를 외친다.


덕분에 오늘 세션의 배터리 소진율은 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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