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시간
"민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물론 직원 입장에서는 확인해야만 한다는 것도 알고 나만 검사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정말이지 어려 보이고 싶지 않다.
올해 초 여름 즈음에 편의점에 하이볼을 타 먹을 위스키를 사러 갔다가 민증을 보여달라는 직원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보니 카드 한 장만 달랑 들고 간 걸 깨달았다. 다시 집에 다녀오기 귀찮아서 우물쭈물 대고 있는데 편의점 직원이 나를 의심하는 듯이 째려보길래 기분이 나빠서 홱 돌아서 그냥 나와버렸다. 사실 민증이야 조금 귀찮지만 집에 가서 가져오면 되고 민증을 검사하는 것도 직원의 의무인 건 알지만 그렇게 쳐다볼 이유는 없지 않은가.
결국 민증을 가지러 편의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서는 거울 속의 내 얼굴을 쳐다봤다. 그렇게 어려 보이나? 민증 안 가지고 왔다고 째려볼 정도로? 안경을 써서 더 어려 보이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고 있자니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민증을 가지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아까 갔던 편의점 말고 다른 편의점에 갔다. 역시나 그 편의점에서도 '나이가..' 라며 민증을 보여달라는 투로 말씀하시길래 당당하게 민증을 보여주고 후련하게 술을 사서 나왔다.
집에 돌아오니 화분을 돌보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에게 궁시렁궁시렁 이런 일이 있었다고 투덜대다가 문득 내가 엄마 나이쯤 되면 민증 검사 당하는 일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안 그래도 어린데 더 어리게 봐서 기분이 나쁘지만 내가 서른 즈음이 되면 동안이라고 칭찬받는 일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목 끝까지 차올랐던 억울함과 화가 한 순간에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어릴 때 보았던 동화가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던가, 이제는 놀이터가 작은 미니어처처럼 느껴진다던가. 지금은 지긋지긋한 민증 검사도 내가 동안이라는 증표처럼 느껴질 때가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