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수수께끼의 나이

Part 4. 시간

by 조미래

같이 알바하던 언니가 연말 즈음에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스물, 스물 하나, 스물둘까지는 그럭저럭 나이 먹는 느낌 없이 괜찮은데 스물셋, 스물넷, 스물다섯, 이렇게 나이에 시옷 받침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기분이 묘해진다고.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는데 내 나이에 시옷 받침이 들어가니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애매한 기분을.


한 떨기 스물셋 좀 아가씨 태가 나네

다 큰 척해도 적당히 믿어줘요

얄미운 스물셋 아직 한참 멀었다 얘

덜 자란 척해도 대충 속아줘요


스물셋이 되는 사람들은 새해에 모두 한 번쯤은 듣는다는 아이유의 스물셋. 가사 속에 내가 느끼는 기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리게 보면 나도 이제 어엿한 성인이라며 화가 나고, 또 차츰 어른으로 봐주기 시작하면 괜히 기분이 별로다. 이게 무슨 심보인지. 다 큰 것 같으면서 다 큰 것 같지 않은 그런 나이랄까.


나는 올해를 마지막으로 대학생활을 마친다. 유별나게 고요하고 조용했던 내 대학생활. 사실 나에게 대학이 목적이었던 적은 없다. 고3 수험생들이 목숨을 걸고 수능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수능준비의 시옷자도 하지 않았으니까. 대학은 나에게 그저 경험의 수단일 뿐이었다. 대학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바를 모두 이뤄야지, 대외활동을 열심히 해서 스펙을 쌓아야지, 명문대를 가야지, 이런 생각은 없었다. 단지 궁금했다. 대학이 도대체 뭐길래 다들 그렇게 눈에 핏줄이 터져라 열심히 공부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지.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해 본 결과 상투적 이게도 어른들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것 같다는 답이 나왔다.


어른들의 말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되는 나이. 어렴풋이 그 무게를 느끼게 되는 나이. 나의 스물셋은 그런 나이인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꼰대라고 치부했을 말들에 '그렇게 터무니없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나이.


사실 택도 없이 어린 나이다. 어른으로 보기엔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그럼에도 이런 애매한 기분 속에서 헤엄치는 이유는 글쎄, '시옷'의 저주일까. 나이를 발음할 때 된 발음이 나기 시작하는 스물셋. 된 발음만큼 억세고 거친 세상을 살아갈 도약을 위한 나이가 아닐까.


keyword
이전 14화생일이 기다려졌으면 좋겠다.